북한의 핵무력이 갈수록 고도화되며 북한의 핵위협을 확실하게 막을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날 동해 방향으로 진행된 중거리전략미사일 발사훈련을 직접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뉴스 1


중국이 1964년 핵실험에 성공하자 히말라야 산맥을 두고 국경을 마주한 인도도 본격적으로 핵개발에 매진해 1974년 핵실험에 성공한다. 그러자 이웃국으로서 1947년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뒤 인도와 적대적 관계였던 파키스탄은 심각한 안보 도전에 직면했다. 미국의 강력한 반대와 압박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했고, 1998년 핵실험에 성공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그해 경쟁적으로 핵보유국이라고 선언했다. 스톡홀롬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26년 공개 자료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탄두 보유량을 190발과 170발이라고 밝혔다.

두 나라의 핵개발 역사는 매우 강렬한 파장을 남겼다. 인도의 경우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서의 '사실상 핵보유국'의 첫 등장이었다. 파키스탄은 '이웃 적대국'의 핵무장 앞에서 생존을 위한 '자위적 선택'이란 점이 특징이었다. 두 나라는 한때 국제사회의 제재에 힘들어했지만 결국 '사실상 핵보유국'이면서 정상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미국이 전략적으로 두 나라의 핵보유를 '용인'했기 때문이다. 특히 2001년 9.11 테러의 충격으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이 변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에서 차지하는 두 나라의 전략적 가치가 치솟았다. 두 나라는 '용인' 이후 비확산 노력에 동참하고 법치주의 구현에도 나름 힘쓰는 등 미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위해 노력했다. 이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은 간명하다. 핵무기의 위협에 노출된 상황에서 자국민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는 결국 '핵 억제력'이라는 사실이다. 이른바 국제 비확산 원칙도 국제정치의 변화 속에서 예외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북한은 지난 30년간 미국의 압박과 제재를 받았지만 끝내 핵무력을 완성해 버렸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한 배경에 대해 미국에 대한 '최소억지' 수준의 핵전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체제 생존을 위한 자위적 수단이라는 얘기다.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한 이후 6차례 핵실험을 강행했고, 2013년 핵보유국 지위를 법제화했으며, 2017년에는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올해 3월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핵무력 지휘체계를 헌법에 명시했다.

중국은 과거 비확산 문제로 다뤘던 북한 핵을 세력균형 이슈로 전환하면서 사실상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했다. 미국과의 패권경쟁을 의식한 행보다. 미국도 갈수록 북한 핵무기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과 좋은 관계'라면서 북한이 '57개(또는 112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숫자까지 말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혼재한다. SIPRI의 올해 자료에는 60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나와있다. 안규백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 6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을 80개에서 120개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핵탄두 50발 이상이면 이른바 '최소 억지'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문제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핵탄두 수량을 늘릴 뿐 아니라 핵무기를 만들 핵물질 생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나가는 데 있다. 김정은은 지난 6월 열린 제9차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위력한 국방자산들을 더욱 늘여나가기 위한 사업을 계속 멈춤없이, 철두철미 우리 식으로, 세계를 압도할 수 있는 수준을 목표하여 강력히 실행"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적대국' 한국을 향한 노골적인 핵위협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제 실재하는 북한의 핵위협 아래 놓인 한국인들은 생존이란 실존적 고민을 하게 됐다. 한반도내 '핵 불균형'은 시급한 안보 과제다. 대응책의 출발점은 희망이 아니라 현실이어야 한다. '비핵화'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목표지만 이를 실현할 때까지 한국인의 생존을 무엇으로 지킬 것인지에 답하지 못한다면 공허할 뿐이다. 북한의 핵위협을 확실하게 억제할 수단을 확보하는 '핵균형'이 절박한 이유다.

그러려면 '핵우산'으로 불리는 미국 주도의 확장억제를 실행 체계로 진전시켜야 한다. 핵위기를 상정한 공동기획, 연습, 전략자산 운용을 구체화하고 한국의 실질적인 참여를 강화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이 해소되지 않을 때의 선택지를 열어 둬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와 유럽식 '핵공유'의 효용성을 적극 검토해야 할 때다. 이와 병행해 핵잠재력 확보라는 현실적 과제도 추진해야 한다. 독자 핵개발 논의도 이제는 '금단의 영역'으로 남겨서는 안된다. 독자 핵무장은 국제 제재와 한미 동맹의 균열, 주변국의 연쇄 핵무장 가능성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부른다. 그래서 전략적 판단이 중요하다.

한국이 인도와 파키스탄과 같은 길을 갈 수는 없겠지만 NPT체제 내에서 '탈퇴 권리'를 규정한 제10조의 의미를 점검하고, 미중 패권 경쟁 구도를 활용하면 '예외지대'를 추구할 잠재적 공간을 열어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이 위협받는 위기 앞에서 어떤 경우에도 '핵균형'을 유지하겠다는 결의를 잊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