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용산구 빌라 밀집지역의 모습./뉴스1 /사진=(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대기업 시공사들의 재개발 응원 현수막이 동네 골목마다 걸리기 시작하면 빌라값은 믿기 힘들 만큼 치솟는다. 최근 서울 도심의 한 재개발 예정구역에서 전용면적 70㎡ 빌라가 16억 원에 거래되자 주변 호가가 줄줄이 20억 원까지 올랐다. 고금리와 대출 규제, 분담금 상승 여파로 강남 재건축 아파트 실거래가가 몇 주 만에 수억 원씩 떨어진 것과 대비된다.

재개발 투자는 청약, 경매와 함께 부동산 거래로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대표적 로또다. 로또는 당첨 확률이 낮다. 재개발도 청약, 경매와 마찬가지로 돈 버는 사람이 소수다. 정부는 재개발 투기를 막기 위해 매수인이 거주자나 주택임대사업자일 때만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빌라 거래를 허가했다. 그런데도 빌라 매수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한국부동산원 조사 결과 지난달 빌라 가격 상승률은 1.03%로 아파트 상승률보다 높았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물가상승률의 세 배가 넘는 10.35%에 달했다.



저층 단독주택과 다세대·다가구 주택, 상가건물을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는 민간 재개발은 땅이 좁은 서울에서 주택 공급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용산 미군기지 터, 그린벨트를 활용한 공공 개발은 주민 반대와 정치 대립에 막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공공성이다. 재개발은 재건축과 달리 사업구역 안에 도로와 주민센터, 학교 등 공공시설이 포함된다. 그래서 공공임대주택 기부채납 등 공공기여 의무가 생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수도권 재개발 아파트의 공공임대 비율을 세대 수 또는 연면적의 5~20%로 규정했다. 법적 상한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축물 연면적 비율)을 넘겨 가구 수를 늘리면 초과 용적률의 50~75%를 공공임대로 공급해야 한다. 최근 공사비 폭등으로 분담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조합원과 예비 조합원들은 해당 규정을 바꿔 공공임대 비율을 낮추고 일반분양 수익을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조합의 공공임대를 인수해야 하는 서울시도 정부를 상대로 재개발 아파트의 공공임대 비율을 낮춰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학계는 비율 조정에 신중하다. 한 국토교통부 장관 출신의 교수는 "지방정부가 조합에서 인수하는 공공임대 가격을 높이는 것이 비율 조정보다 나은 대안"이라고 했다. 분양가 30억 원이 넘는 재건축 일반분양은 어차피 청약할 수 있는 계층이 제한된다.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공공임대 비율을 흔드는 것보다 지방정부 재원을 더 투입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8·13 대책'에서 공공임대 인수가격을 현행 기본형 건축비의 80%에서 100%로 올리도록 했다. 올해 9월 고시 기준 전용 84㎡ 아파트의 기본형 건축비는 약 2억6000만 원이다. 토지 감정가 등을 가정해도 공공임대 한 채당 인수가격은 3억~4억 원대로 실제 분양가보다 훨씬 낮다. 서울시의 올해 총예산은 약 51조 원으로 지난해보다 7% 늘었지만 공공임대 부문 예산은 지난해 1조1091억 원에서 올해 1조622억 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용적률 혜택을 받은 조합의 일반분양 이익이 지나치게 늘어나는 것보다, 지방정부 예산을 늘려 공공임대 비율을 유지하는 쪽이 정책의 취지를 살려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재개발이 성공하려면 원주민은 땅을 팔고 외지인은 많아져야 한다.' 부동산 업계에서 재개발의 공식처럼 통용되는 이야기다. 주거환경 개선에서 출발한 정비사업이 시대가 변해 '재테크'의 성격을 띠게 된 지금, 자금력 있는 조합원들의 추가 투자만 기다리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재개발 지연을 둘러싼 현재의 난국을 풀 해법은 조합의 이주비 대출 규제를 완화해 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공공임대도 확보해 토지주와 무주택자를 함께 보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