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조 대법원장과 관련한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사진=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27일 의원총회를 열어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다음 달 5일 본회의에서 관련 안건을 처리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동안 대법원장 탄핵을 거론해 온 민주당이 중도층의 역풍 등을 우려해 국정조사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탄핵에서 국정조사로 수단을 바꿨다고 사법부 독립 침해에 대한 우려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상 초유의 일이자 사법부 압박의 우회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물론 사법부도 국민의 감시와 견제에서 예외일 수 없다. 정치 개입이나 권한 남용의 구체적 의혹이 있다면 사실관계를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업무추진비와 격려금 집행 역시 적정하게 이뤄졌는지 검증할 수 있다. 조 대법원장도 사법부 독립만을 앞세워 설명과 소통의 책임을 피해서는 안 된다. 다만 국정조사는 확인된 사실과 합리적 의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먼저 사퇴나 탄핵을 요구한 뒤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찾는 식이라면 조사 자체의 정당성이 흔들린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항소심 무죄 판결에 대한 여당의 반발이 국정조사 추진과 맞물린 점도 우려스럽다. 판결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지만, 개별 재판의 결론을 곧바로 대법원장 책임으로 연결하려면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민주당이 이날 김건희 여사의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촉구하며 의원들의 비상대기까지 결정한 것 역시 사법적 판단에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법원에 법과 원칙을 요구하려면 정치권부터 그 판단의 독립성을 존중해야 한다.

대법관 재제청 문제를 둘러싼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갈등이 여권이 사법부 압박에 나선 근본 배경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어느 한쪽에만 책임을 돌릴 사안이 아니다. 헌법은 대법관 인선에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 대통령의 임명이라는 절차를 두고 있다. 어느 한 기관의 뜻만으로 인선을 좌우하지 못하도록 한 취지를 존중해야 한다. 대통령은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대법원장은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하면서 이견을 조정할 책임이 있다. 서로 자신의 권한만 앞세운 채 대립을 장기화해 사법 공백을 풀지 못한 책임에서 양쪽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대법관 공백은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이기느냐가 아니라 대법원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느냐다. 대통령의 입장만 대변하며 대법원장을 국정조사로 몰아세워서는 갈등을 풀기는커녕 더 키울 수 있다.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면 조사 대상과 근거, 범위를 명확히 제시하고 사법행정 검증과 재판 개입의 경계를 지켜야 한다. 정치적 부담 때문에 탄핵을 미뤄놓고 국정조사로 같은 효과를 내려 한다면 국민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국정감사가 끝나면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본격화한다. 주거와 일자리, 서민 생활을 뒷받침할 정책과 예산을 챙기는 일이 집권당의 우선 책무다. 민주당은 사법부와의 대결에 정치력을 소진하지 말고 대통령과 대법원장 사이의 갈등을 풀며 민생을 돌보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