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소아응급실 압수수색 규탄 및 진료권 보호 촉구 대한소아응급의학회 긴급기자회견에서 류정민 대한소아응급의학회 회장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뉴시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과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3일 만나 응급실 압수수색을 최소화하는 '필수의료 분야 수사 지침'을 마련하기로 했다. 지난 7월 15일 한 종합병원 응급센터에서 치료받던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생후 4개월 영아가 숨지면서 부모가 의료진 과실을 주장하자 경찰이 9월 30일 현장을 압수수색한 지 34일 만이다. 응급의료 현장의 압수수색에 항의해 해당 응급센터 센터장 등 교수 7명이 사직 의사를 밝히면서 파문이 확산했다.

이번 응급실 압수수색 사태가 의료진의 집단 사직 위기로 번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의료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생명을 다투는 환자들의 치료가 이뤄지는 응급실에서 강제수사를 벌이는 것이 불가피했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수사기관이 의료현장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의료 특성을 무시한 사법 잣대와 강제 수사는 자칫 의료진을 위축시켜 응급 의료 체계를 붕괴시킬 우려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부장관과 경찰 수장이 응급실 압수수색을 최소화하는 '필수의료 분야 수사 지침'을 마련하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아도 의료진의 사법 리스크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이번 지침이 진료에 집중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의료진의 진료권과 환자와 가족의 권리, 그리고 공권력의 수사권이 서로 합리적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지침의 골자는 경찰의 의료현장 출입 전 의료기관과의 사전 협의와 비진료 공간 우선 집행, 그리고 수사 과정에서 긴급한 진료 영향 최소화, 의료 장비와 전산시스템에 미치는 영향 감소 등이다. 하지만 '압수수색을 형사소송법에 따라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거나 관계가 있는 경우에 한정한다'는 원론적인 내용이 지침에 담기면서 의료계에선 '일반적인 수사 원칙을 재확인한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추상적인 지침으로는 응급의료 현장에서 강제수사가 벌어질 가능성이 여전히 남는다는 의료계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의료계와 환자단체와도 소통하면서 지침 제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지침을 만들 수 있다.

응급의료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해 살인 등 중대 강력범죄나 명백한 증거인멸 우려가 우려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강제수사를 제한하는 등의 응급의료 보호 장치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 의료계가 요구하는 '수사 과정에서의 전문가 사전 의견 반영 절차'와 '무분별한 영장 집행을 방지할 구체적인 통제 장치'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의료계도 환자나 가족, 사법기관의 합리적인 요청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자세와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를 일회성 수사 지침 마련으로 끝내서도 안 된다. 고의·중과실 없는 필수의료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면제 법제화를 공론화하고, 민사 배상 부담을 완화해 법과 의료 현실 사이의 괴리를 없애는 방안 마련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응급의료·필수의료 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모색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