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X가 우크라이나 군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를 제한한 이후 세계 각국은 독자 위성망 확보를 더 서두르고 있다. 유럽연합과 캐나다, 핀란드 등 여러 나라가 저궤도 위성망 구축 계획을 확대하고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전장의 드론을 멈춰 세운 건 적의 방공망만이 아니었다. 지난달 중순 우크라이나군은 드론의 비행 속도가 시속 160㎞를 넘으면 위성통신이 끊기는 제한에 부딪혔다. 스페이스X의 군용 서비스 '스타실드'에 속도 제한이 걸린 탓이다. 러시아 드론 요격에 차질이 생겼고 일부 작전은 취소됐다. 열흘쯤 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시속 400㎞가 넘는 속도에서도 연결이 유지된다며 정상화를 알렸다. 그러나 통신이 돌아왔다고 의존의 위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누가 제한을 지시했는지를 놓고 설명은 엇갈린다. 로이터는 지시가 백악관 내부에서 나왔다고 보도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가 개입했다고 전했다. 책임 소재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핵심 군사 활동이 자국 밖에서 통제하는 서비스에 발목을 잡혔다는 점이다.

이 사건은 통신망의 성능만큼 통제권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스페이스X 등이 운용하는 저궤도 통신위성은 정지궤도 위성보다 지상과 가까워 통신 지연이 짧다. 다만 지구 주위를 빠르게 돌기 때문에 끊김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많은 위성을 하나의 망으로 연결해야 한다. 지상망이 무너진 전장에서 이런 위성망은 지휘와 정보 공유의 토대가 된다. 그러나 특정 사업자에 의존하면서 대체 수단을 갖추지 못하면 서비스 조건 변경이 곧 전력 공백으로 번진다.

각국이 독자 위성망에 투자하는 배경에도 이런 우려가 있다. 유럽연합(EU)은 약 175억 달러(약 23조4000억원)를 투입해 위성 348기 규모의 독자 위성망 '아이리스 스퀘어드'(IRIS²)를 구축할 계획이다. 캐나다 텔레샛도 위성 288기로 구성된 저궤도 통신망 '라이트스피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자체 위성 인터넷 '라스베트'를 개발 중이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도 지난달 핀란드 기업 아이스아이·노키아와 독자 위성통신 역량 확보를 위한 협력 의향서를 체결했다. 이번 사태 이전부터 이어진 독자망 경쟁에 통제권 확보의 절박함이 더해지고 있다.

독자망이 모든 분야의 자급자족을 뜻하지는 않는다. 텔레샛은 위성 발사에 경쟁사인 스페이스X의 팰컨9을 활용한다. 서비스에서는 경쟁하되 발사 역량은 빌리는 셈이다. 위성 제작부터 발사, 지상국, 단말기까지 단기간에 모두 갖추기는 어렵다. 핵심 기능의 통제권은 확보하되 외부 역량을 활용할 분야는 구분해야 한다. 통신 주권 전략은 무엇을 직접 보유하고 어떤 기능을 협력으로 보완할지 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독자적인 저궤도 통신위성망이 없는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2035년까지 한국형 저궤도 위성통신망을 구축한다는 목표로 128기·256기·512기 세 가지 규모를 검토하고 있다. 2030년 1분기에는 6G 기반 통신위성 2기를 발사할 계획이다. 그러나 기술 검증용 위성 두 기와 상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군집위성망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위성 양산과 망 운용은 물론 수명이 다한 위성을 꾸준히 교체할 산업 기반도 갖춰야 한다. 첫 위성을 띄우는 성과만큼 망 전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능력이 중요하다.

우선 서둘러야 할 것은 주파수와 궤도 이용을 위한 국제 절차다. 위성을 쏘아 올렸다고 곧바로 통신망을 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규정에 따른 절차를 밟고 다른 위성망과의 간섭도 조정해야 한다. 관련 규정이 적용되는 비정지궤도 위성망은 정해진 기한 안에 주파수 이용과 단계별 배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주파수 확보와 위성 배치 계획을 함께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국제 절차를 기술 개발 이후로 미뤄서는 안 된다.

'선점 경쟁'이라는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는 서비스 대상과 필요한 통신 용량부터 정하고, 이에 맞춰 위성 규모와 배치·발사 일정을 제시해야 한다. 군 작전 지원과 재난 대응, 민간 통신 서비스는 필요한 성능과 우선순위가 다르다. 이를 구체화해야 예산과 산업 역량을 어디에 집중할지도 정할 수 있다. 규모를 확정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서도 안 되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은 계획을 무더기로 등록한다고 통신 주권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발사 역량도 걸림돌이다. 국산 발사체의 수송 능력과 발사 빈도를 높이고 재사용 기술도 개발해야 한다. 다만 당장의 위성망 구축에는 해외 발사 서비스를 병행해야 한다. 오태석 우주항공청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누리호와 차세대 발사체만으로는 저궤도 위성통신망 구축에 필요한 위성을 모두 발사하기 어렵다며 해외 발사체 활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독자망 완성 전의 공백도 메워야 한다. 군과 공공기관은 해외 위성 서비스를 도입할 때 가격과 속도만 비교해서는 안 된다. 전시 사용 조건과 서비스 제한 권한, 장애 대응 책임을 계약 단계부터 따져야 한다. 계약상 권리를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위기에도 필수 통신을 유지할 수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위성망과 지상망을 연계해 하나가 끊기면 다른 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주 통신망 주권은 궤도에 올린 위성 수로만 평가할 수 없다. 위기 때 누가 연결을 통제하고, 끊기면 어떤 대안이 있느냐가 핵심이다. 독자 기술을 쌓고 국제 협력의 선택지를 넓혀야 외부의 결정이나 공격으로 국가 핵심 기능이 멈추는 일을 막을 수 있다. 통신 주권의 실체는 위기에도 연결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