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장군의 목숨은 덧없이 사라질 수 있지만 의지는 필부에게서도 뺏을 수 없다.”

공자님 말씀이다. 말씀은 <논어> ‘자한’ 편에 등장한다. 원문을 적자면 이렇다.

자왈 삼군가탈수야, 필부불가탈지야.
子曰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이른바 단장취의(斷章取義·, 남의 글이나 말 가운데 그 본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 의도에 맞춰 특정 부분만을 인용해 자신의 주장을 펴는 방식을 일컫는다) 하자면 ‘의지’를 빼고 ‘재주’로 문장을 채워도 뜻이 형통하리라. 해서 필부불가탈술야(匹夫不可奪術也)로 살짝 바꾼다. 이는 ‘재주는 필부에게서도 뺏을 수 없다’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개인의 의지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재주는 어떠한 폭력이나 국가 권력으로도 뺏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해서 말하는 것인데 지닌 바 한 가지라도 개인의 ‘재주’가 뛰어나면 ‘술술술 풀린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자장’ 편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재주는 ‘반드시 볼 만한 경지가 있게 마련이다(必有可觀者焉)’가 그것이다. 일테면 배병삼 영산대 교수가 주석한 <한글세대가 본 논어2>의 윤오영 선생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이 내 보기엔 바로 그러한 경우에 속한다. 다음은 수필의 일부 내용이다.

시내에 나가면 다듬잇방망이 한 벌을 사달라던 부인의 부탁을 내내 잊었던 주인공이 동대문 옆에서 방망이 깎는 노인을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방망이 깎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주인공은 차시간에 쫓겨 노인에게 대충 만들어달라고 자꾸 재촉한다. 그러나 노인은 이모저모 살피고 방망이를 양손에 들고서 무게를 재고, 또 깎아내기를 반복한다.

내내 그 노인의 ‘짓거리’가 마뜩치 않았던 주인공은, 그러나 집에서 그 방망이를 만져본 부인이 감탄하면서, 어디서 이렇게 무겁지도 않고 또 가볍지도 않은 ‘안성맞춤’의 방망이를 만났느냐는 칭찬 앞에 자신의 경박을 성찰한다.
(윤오영, ‘방망이 깎던 노인’, 범우사 참고)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방망이 깎는 노인’의 재주가 보통이 아니고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서 노인의 재주가 ‘볼 만한 경지’에 이른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수필에서 이미 보았듯 ‘무겁지도 않고 또 가볍지도 않은’ 안성맞춤의 재주 때문에 노인은 돈벌이와 생계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을, 즉 술술술 풀어가는 것을 우리는 독자로서 지켜볼 수 있다.

SBS 방송 중에, <생활의 달인>이란 인기 코너가 있다. 수십년을 한 분야에 종사하며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자신의 재주를 ‘달인’의 경지에 오르게 만든 장본인들과 TV로 만날 때마다 나는 흥미진진하고 재주의 신비로움에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만약에 말이다. ‘방망이 깎는 노인’이 지금 어디선가 살아만 계신다면…. TV 방송에서 ‘방망이 깎는 모습’을 꼭 지켜보고 싶다. 하지만 어쩌랴. 보고 싶어도 이제는 볼 수 없으니….

아무튼 사람의 의지와 재주는 최고 권력자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자기 것으로 빼앗아 갈 수 없으니 무엇보다도 ‘의지가 있고, 재주가 있다면’은 내 인생과 비즈니스의 주인공으로 술술술 풀리는 것은 장담하건대 틀림없으리라.

소설 <삼국지>에 영웅으로 등장하는 유비는 ‘원래 돗자리를 짜고 신발을 팔던 하찮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중국의 고전 및 전통문화연구 분야의 대표적인 저술가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작가 밍더(明德)는 <왼손에는 사기, 오른손에는 삼국지를 들어라>는 책에서 이렇게 풀어 설명한다. 다음이 그 내용이다.
 
유비는 원래 돗자리를 짜고 신발을 팔던 하찮은 인물이었다. 논밭도 거의 없는 소농이었다. 집안은 당연히 가난했다. 항상 삼촌 유원기(劉元起)의 도움을 받아 살지 않으면 안 됐다. 그러나 그는 군문에 들어간 28세 때부터는 지도자가 될 자질을 보였다. 그래서 고작 수백 명의 병사들을 거느리는 별 볼 일 없는 소규모 부대의 지휘관에서 현위(縣尉)와 현령(縣令)을 거쳐 주목(州牧), 한중왕에 이른 다음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유비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무예와 관한 한 관우와 장비에 훨씬 못 미쳤다. 글을 읽는 재주를 따지자면 제갈량이나 방통(龐統)보다 훨씬 못했다. 혹자들은 그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로 인덕(仁德)을 꼽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가장 확실한 설명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삼국 시대의 역사를 두루 살펴보면 역시 후광을 빌리는 능력이 탁월했던 것이 성공의 요인이 아니었나 여겨진다.

유비는 실제로 선조의 이름을 팔아 자신을 빛내는 데는 천재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중산정왕 유승의 후예이자 경제의 고손자’라는 사실을 늘 입에 달고 다닐 정도였다. 말하자면 의도적으로 자신의 몸값을 높였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관우, 장비와 도원결의(桃園結義)를 한 후에는 자신과 같은 친족인 유주태수 유언과 만나 그를 숙부를 대우하기까지 했다.

밍더는 유비의 성공을 인덕(仁德)으로 과장되게 포장하려 들지 않는다. 성공의 요인을으로‘후광을 빌리는 능력’을 묘사한다. 설명한다. 게다가 ‘중산정왕 유승의 후예이자 경제의 고손자’라는 몸값(?)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틀린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군문에 들어간 28세 때’에 크게 눈을 떠서 주목한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 유비가 ‘먹고 살 수 있었던 비결’에는 ‘돗자리를 짜는' 재주가 생존을 하는 데 있어서 한몫 단단히 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된다. ‘방망이 깎는’ 재주가 있든지 아니면 ‘돗자리 짜는’ 재주가 있든지 ‘서른 전후’에는 자신의 성공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지닌 바 재주가 하나쯤 있어야지 운(運)이 따른다고 나는 힘주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안 탓할게 못 된다. 왜냐하면 누구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유비처럼 ‘왕의 후예’가 되고 ‘장군의 아들’이 얼마든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와 영화 <장군의 아들>의 주인공 김두한의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선조의 후광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재주가 뛰어났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요컨대 ‘~의 후손이나 아들’이란 후광의 이미지 동기부여가 자신의 현실(돗자리를 짜고 신발을 파는, 혹은 거지와 구두닦이)을 기꺼이 감내하고 또한 하찮은 재주일지라도 자신을 성공할 때 까지 버틸 수 있도록 만든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재주(術)’는 아주 중요하다. 지닌바 재주가 나의 생계를 해결해주고 향후에 성공의 기회로 나를 안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랴. 재주를 하찮게 생각하지 말자. 또한 나 자신을 하찮은 후손으로 절대 학대하지 말자. 유비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