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탓에 남북 관계가 심상찮다. 한국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굳이 되살리지 않더라도 극단적인 선택은 우리 민족의 미래에 불행만 부를 뿐이다. 분단 이후 계속된 갈등을 지양하고 안정과 평화, 그리고 통일을 기원하게 되는 6월. 호국과 평화통일을 염원하게 되는 현장, 화천 파로호로 가보자.

강원도 화천 파로호는 우리의 기억 속에 남북 분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호수로 각인돼 있다. 한국전쟁이 터진 지 1년이 가까워지는 1951년 5월, 4월 공세와 5월 공세 모두 실패한 중공군은 북으로 퇴각하기 시작했고, 국군은 대대적인 반격을 했다. 이 전투에서 국군은 중공군 수만명을 생포ㆍ사살하는 일방적인 대전과를 올렸다. 마지막까지 소탕작전을 벌인 국군 6사단 5연대는 5월28일 하루만에 3만8000여명의 중공군을 포로로 잡기도 했다.

'파로호 전투'라 불리는 이 전투가 끝난 뒤 호수 일대는 중공군 시체로 뒤덮여 국군이 불도저로 시체를 밀어내면서 전진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제2의 살수대첩이라고도 부른다. 나중에 이승만 대통령은 이곳을 찾아와서 중공군을 많이 잡은 호수라는 뜻으로 파로호(破虜湖)라 명명하고, 친필 휘호까지 썼다.

전쟁의 상처 푸른 물에 씻겼나

파로호 주변은 안보전시관에 주차하고 둘러보면 좋다. 전시관 바깥엔 8인치 견인포, 지휘용 장갑차 등 전투장비가 전시돼 있고, 안쪽엔 파로호 전투에 대해 소상히 알려주는 기록물 등이 보인다. 전시관에서 길을 건너면 당시 조국을 위해 산화한 군인장병들을 기리는 전적기념탑이 반긴다. 여기엔 이 전투에 참가했다 목숨을 잃은 학도의용군이 남겼다는 마지막 말이 새겨져 있다. '길손이여 자유민에게 전해 다오. 우리는 겨레의 명령에 복종하여 이곳에 누웠노라고.'

고갯마루에 우뚝 선 전적기념탑 왼쪽으로 나있는 호숫길을 따라 50m쯤 들어가면 '월하 시조비'가 반긴다. 시조계의 거목인 월하(月河) 이태극(李泰極, 1913~2003) 시조시인은 바로 이곳 화천 동촌리 태생이다. 월하는 1960년 조종현과 함께 시조 전문지 <시조문학>을 창간함으로써 한국 시조가 일대 중흥을 이루는 계기가 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 시조비엔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정갈한 문체로 노래한 '산딸기'란 시조가 새겨져 있다.
 
삼동(三冬)을 견뎌 넘고 삼춘(三春)을 숨어 살아 / 되약볕 이 산 허리 외롬 품고 자란 딸기 / 알알이 부푼 정열이사 마냥 누려 지이다.

최근 시조시인의 고향인 동촌리에 태극문학관(033-440-2228, www.itaegeuk.com)이 문을 열어 그간 시조비 하나만 보고 스쳐가야 했던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게 됐다. 시조비가 있는 안보전시관 앞에서 승용차로 20분쯤 걸린다.

평화통일을 기원하게 되는 평화의 댐

평화의 댐으로 이어지는 460번 지방도는 험하다. ㄹ자로 굽어진 길은 이곳이 강원도 첩첩산골임을 증명한다. 운전이 서투르거나 색다르게 평화의 댐으로 가려면 구만리 파로호선착장에서 카페리호를 이용하면 된다. 이곳에선 유람 카페리 '물빛누리돴'가 지난 4월부터 운항하고 있다. 이 배엔 승용차 6대를 실을 수 있다. 구만리 선착장에서 평화의 댐까지 1시간20분 걸린다. 요금(편도)은 성인 8000원, 승용차는 4만원(1500cc 이상)이다. 주말에만 1일 2회(10:30, 14:30) 운항한다.

파로호 상류에 있는 평화의 댐은 1986년 북한이 착공한 금강산댐(임남댐)이 유사시 수공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에 대응하기 위해 1989년 건립한 댐이다. 당시 북한의 수공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에 빠져 온 국민이 성금을 모았으나 이 댐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당시 집권층이 북한의 수공을 정략적으로 과장해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큰 홍수가 났을 때 이 댐이 수량 조절 기능을 하면서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평화의 댐 위쪽엔 '세계평화의 종'이 걸려 있다. 지난해 건립된 이 종의 무게는 1만관(37.5t), 폭 3m, 높이 5m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도 가장 큰 범종이라고 한다. 범종 장인인 중요무형문화재 원광식 씨가 1년 넘게 정성들여 제작한 범종답게 종소리가 깊고 웅혼해 멀리 북한쪽에서도 들린다고.

이 범종엔 평화의 염원이 담겨있다. 사용된 재료가 그렇다. 그냥 구리가 아니고 6ㆍ25전쟁 당시 남ㆍ북한군, 유엔군, 중공군 등이 사용한 탄피를 DMZ 일원에서 수거해 사용했고, 또 중국ㆍ태국ㆍ필리핀ㆍ에티오피아ㆍ요르단ㆍ이스라엘 등 전 세계 분쟁지의 탄피도 기증받았다. 전 세계 분쟁지역의 탄피들을 녹여 한반도 분단 극복을 염원하는 평화의 종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종 꼭대기 부분의 장식인 용뉴엔 전통적인 용이 아니라,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4마리가 장식돼 있다. 이중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비둘기의 한쪽 날개가 없다. 통일되는 그 날 붙이기 위해 따로 떼어 종각 앞에 보관 중이다.

가곡 '비목'의 발상지

여기서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우리나라 3대 애창곡으로 불리는 가곡 '비목(碑木)'의 발상지임을 알리는 비목공원이 반긴다. 노래부터 한곡 들어보자.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이 노래의 탄생은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수색중대 소대장인 육군 소위 한명희는 백암산 비무장지대를 순찰을 돌다 이름 모를 용사의 돌무덤을 발견한다. 그는 거기서 영감을 받아 시를 쓰게 된다. 이 시는 나중에 작곡가 장일남을 만나면서 '비목'이란 이름의 가곡으로 빛을 본다. 그 소대장은 한국민족음악가연합 이사장을 지낸 음악평론가 한명희. 작곡가 장일남은 2006년에 타계했다.

평화의 댐 아래쪽엔 지난해 같이 건립된 '종공원'이 있다. 평화와 상생을 바라는 뜻에서 건립한 종공원엔 세계 30여나라로부터 기증 받은 60여개의 종이 전시돼 있다. 공원엔 미하일 고르바초프, 투투주교, 북아일랜드의 코리건, 달라이라마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 12명이 보내온 등의 메시지와 핸드프린트가 각인된 명판도 눈길을 끈다. 그리고 평화의 종을 만들고 남은 탄피 20여톤, 6ㆍ25전쟁 당시 사용한 무기, 어린이들이 쓴 평화의 편지 등도 전시됐다.

평화의 댐 구조물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 마루엔 나무로 만든 종도 걸려 있다. 나무로 만들었으니 당연히 울리지 않는다. 남북통일이 되면 울리는 쇠로 만들어 통일이 됐다는 기쁘고 즐거운 소리를 들려줄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 민족은 언제쯤이나 남북 갈등을 끝내고 아름다운 종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여행정보

●교통 서울→서울춘천고속도로→춘천분기점→중앙고속도로→춘천 나들목→46번 국도→간척 사거리(좌회전)→파로호안보전시관→460번 지방도→평화의 댐 <수도권 기준 3시간 소요>

●숙식 파로호안보전시관 부근의 구만리선착장엔 호수횟집(033-442-3232), 뱃터횟집(033-442-2236), 파로호횟집(033-442-3123) 등 민물고기 전문 식당이 있다. 화천댐 하류의 구만교 부근에도 대붕회가든(033-442-5706), 평화가든(033-442-2660), 화천댐가든(033-442-6850), 비목쉼터(033-442-0322) 등의 민물고기 전문 횟집이 많다. 잡고기돚메기매운탕 소(2~3인분) 3만원. 언덕위에 하얀집(033-442-0024), 어룡동민박(033-442-4409) 등의 숙박시설도 있다.

●참조 화천군청 대표전화 033-442-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