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를 만드는 과정은 오랜 기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금광 노동자를 위해 천막 원단을 재활용해 만든 실용적인 아이템이라는 자못 친환경적인 스토리텔링에 취해 있었다면 이제 현실과의 간극이 얼마나 큰 지 알아볼 차례다.
청바지의 원단을 우리는 데님(De Nim)이라 부른다. 뭔가 특별해 보이는 말이지만 사실 면이다. 청바지가 본격적으로 양산되기 시작하던 당시 가장 뛰어난 품질의 청바지용 원단이 프랑스 남부 님(Nim) 지방에서 제작되었던 탓에 지금껏 청바지 원단하면 데님이 된 것이다. 한 벌의 청바지에 들어가는 면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보통 500리터 이상의 물이 필요하다. 청바지의 경우 가공과정에서도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해 완제품이 나오기까지 많게는 20,0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물 문제보다 건강과 지구 환경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각종 화학물질이다. 면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이미 1kg 이상의 화학비료와 농약이 사용되며, 원단으로 가공하는 과정에서도 표백 형광물질이 사용된다. 원단에 입혀진 표백제는 세탁을 해도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청바지 원단을 염색하는 염료는 인디고(indigo)다. 인도에서 기원한 이 천연염료가 지금껏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청바지에 사용되는 염료는 1897년 독일의 화학자 아돌프 폰 배이어(Adolf von Baeyer)에 의해 양산되기 시작한 합성 인디고다.
청바지와 일반 의류 아이템의 가장 큰 차이는 '워싱'이다. 합성 인디고의 개발로 대량의 원단을 원하는 퀄리티와 감도로 제작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청바지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후 가공이 필요했다. 청바지의 역사는 그래서 워싱 기술의 진보와 궤를 같이한다. 워싱과정에서 발생되는 오염은 상식을 초월한다. 황산성분 발암물질인 아크릴이 대량으로 사용되며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짙은 농도로 사용한 후 대부분 물에 씻어 흘려 보낸다. 또한 데님 워싱 과정은 무척 위험하고 열악한 작업이다. 영화 반두비에서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인 주인공 카림이 근무하던 공장이 바로 워싱 공장이었다. 워싱으로 인한 재앙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멕시코의 테후아칸 밸리다. 물 좋기로 소문난데다 온천까지 많았던 이 동네는 북미 지역 청바지 워싱 물량이 몰리면서 순식간에 재앙의 계곡이 되고 말았다. 계곡물은 청색으로 변했고 생태계는 파괴됐다.
그렇다면 더 이상 청바지를 입지 말아야 하는 걸까? 흔하지는 않지만 오가닉 코튼으로 만든 데님에 감자 전분 등을 이용한 친환경 워싱과정을 거친 대안적인 제품들이 있다. 국내에서도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스웨덴의 누디진, 네덜란드의 큐이치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 발 더 나아가 헴프, 쐐기풀, 대나무 등의 소재로 원단을 만들고 쪽이나 천연 인디고로 천연염색을 한 친환경 제품들도 속속 선보여지고 있다. 다만 아직 디자인과 브랜딩에서 2% 부족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오래 입기, 고쳐 입기다. 구제청바지를 수선해서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좀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누디진처럼 소비자가 입으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자기만의 워싱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이다.
'청바지와 나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개인의 건강 차원에서도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좋지 않다. 그리고 좀 더 은유적으로 보자면, 청바지와 그대 사이에는 위에서 보았듯이 수많은 스토리와 사회적 의미가 놓여져 있다. 아무 것도 없다고 외면하기엔 청바지라는 상품이 만들어내는 임팩트가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