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주로 화가의 뒤에서 존재하던 컬렉터가 옥션 등 공개적인 마켓을 통해 수면위로 떠오르는 요즘, 슈퍼컬렉터들의 손에서 운명이 결정되기도 하는 세계 미술시장의 정보는 전파를 타고 빠르게 일상 깊숙이 전달된다. 오늘날과 같은 거대시장이 형성되는 동안 딜러와 컬렉터는 역사를 타고 다양한 역할을 통해 명작의 탄생을 지원하고 지켜냈다.
르네상스에 이어 18세기까지 메디치가, 볼라르, 칸바일러 등 서양미술의 역사를 일신한 위대한 딜러와 컬렉터들이 존재했던 것과 같이 한국미술 유통의 역사에도 명작의 존재를 가능케 했던 딜러와 컬렉터가 있었다.
특히 질곡한 기로에서 운명적인 컬렉터를 만나 보호받거나 탄생할 수 있었던 역사 속 명작의 에피소드는 명작에 진정한 주인이 있다는 말을 증명하는 듯하다.
◆미술품 수집과 향유의 문화가 꽃핀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경우 진정한 의미로서의 미술품 향유 문화가 피어난 때는 조선시대로 볼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불교와 사찰 중심의 종교적인 성격이 강했던 미술품들은 억불숭유 정책이 지배하는 시대로 접어들며 회화 쪽에서 크게 발전하게 된다.
물론 당시 컬렉터의 이름으로 미술품을 향유할 수 있던 계층은 왕과 사대부들에 한정됐다. 특히 '조선의 메디치'로 견줄 만한 가문은 조선 최고의 세도가문으로 맹위를 떨친 안동김씨 가문이었다.
한양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서울 근교에서 권력과 부를 가진 이들이 당시 문화적 분위기를 이끌었는데, '학예 일치'가 팽배했던 시절 '장동김문'(壯洞 金門)으로 불리던 안동김씨 가문은 미술품을 가까이 즐기며 예술을 후원했다.
중국을 모사하던 관념 산수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실경을 직접 화폭에 옮겼던 진경산수의 새로운 길이 열리는 데도 안동김씨 가문의 영향이 컸다. 왕실과 사대부층만의의 별난 취미였던 미술품 수집이 열기를 띨 무렵, 조선시대 대표적인 컬렉터로 꼽을 만한 인물은 안평대군이다. 풍류의 왕자로 불렸을 정도로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안평대군이 총애하던 화가는 안견(安堅)이었다.
안평대군은 그를 후원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안목을 높이며 작품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진정한 컬렉터의 모습으로 안견과 교우했다. 안견은 당시 파격적인 직급인 정4품을 수여받았고 구하기 어려웠던 재료와 책, 그림 등을 안평대군의 후원으로 접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평대군이 박팽년, 최항, 신숙주와 오르내린 도원의 꿈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았더라면 시대의 역작 <몽유도원도>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세계를 과감하게 나눈 파격적인 구도에 당시 화풍이 총망라된 <몽유도원도>는 한 예술가의 작품이 꽃을 피울 수 있게 지지해준 컬렉터 안평대군에 의해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신의 꿈이 현실로 그려진 <몽유도원도>가 완성되자 안평대군은 학자와 선비를 불러 작품을 감상했고, 20여명의 문객이 찬사를 적어 역작의 의미가 현재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시인 사천 이병연 역시 18세기에 빼놓으면 안되는 컬렉터다. 이병연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화가 정선과 오랜 친구로서 가까이 교우하며 정선이 예술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활로를 마련했다.
중국 산수를 모사하던 화풍이 지배적이던 당시, 두사람은 전위적인 예술인 '진경'을 필두로 진경문화에 끼친 영향 또한 매우 컸다. 이병연은 시를 지으며 정선에게 그림을 청하기도 했고, 많은 선비들에게 정선을 소개하며 작품 거래를 도왔다. 정선은 이병연이 작품을 보는 안목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왔고, 함께 여행을 하며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려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곤 했다.
그러던 중 정선은 1751년 죽마고우였던 친구 이병연이 사경을 헤매자 친구가 완쾌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인왕제색도>를 그리게 된다. 시대의 역작 <인왕제색도>는 자신을 후원하며 예술의 혼을 피우게 해준 컬렉터가 쾌유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감사의 의미가 담긴 작품으로, 이병연은 <인왕제색도>를 탄생시킨 또 다른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다.
조선시대의 왕과 선비의 컬렉션은 작품의 투자 의미보다는 감상과 향유의 목적이 컸으며, 서화 컬렉션에는 과시적인 성향이 강했다. 당시 그림은 서민들이 엄두도 낼 수 없는 가격에 거래됐기 때문에 고고한 선비들은 작품의 투자가치에는 관심이 없었고 예술을 향유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조선후기. 이러한 컬렉션 문화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 바로 상업경제에 밝은 중인들이었다. 역관 출신의 중인들은 미술품을 사고팔며 이득을 남길 수 있는 투자가치에 눈을 뜨게 된다.
양반과 서민계층 사이에 존재했던 중인들은 전문적인 기술로 재력을 갖추며 신흥컬렉터 계층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미술품을 수집하고 감상하며 미술품 수집과 후원의 문화를 확대해 나갔다.
<몽유도원도>, <인왕제색도> 등 시대를 풍미한 역작의 뒤에는 화가와 막역하게 교우하며 영감의 원천이 되어준 컬렉터들이 존재했다. 비록 화가와 컬렉터는 시간의 궤도 밖으로 떠나갔지만,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작품은 이들이 함께 피워낸 막역한 우정을 화폭으로 증명하며 여전히 역사와 시대를 이끌고 있다.
예술과 상생하는 컬렉터는 때때로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키는 주체가 된다. 컬렉터를 미술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미술사가라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