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방침을 밝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약 800조 원을 들여 각각 2기씩 총 4기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등 서남권에 투자할 것이라고 한다. 작년 12월 이 대통령이 주요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 남쪽 지방으로 눈길을 돌려달라"고 당부한 후 불과 반 년 여 만에 대규모 투자가 발표된 것이다.
이날 보고대회는 이 대통령과 산업통상부장관 등 정부 측 인사들이 먼저 3대 첨단산업 발전 전략과 정부의 지원 방안을 설명한 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단상에 올라 구체적인 투자 방침을 밝히는 순서로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이번 투자계획이 "기업인들의 결단에 의한 것"이란 점을 강조했지만,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기업 팔 비틀기' 논란을 의식한 듯 발표 형식까지 신경을 쓴 모양새였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여러 지역 중 전력과 용수, 인력확보 그리고 인프라 등 많은 인센티브 지원이 기대되는 광주를 후보지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은 호남 반도체, AI데이터센터에 425조 원을 비롯해 충청, 영남 등을 포함한 전국에 2655조 원의 투자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다만 이 회장은 HBM 팹 공장은 충청, 로봇 관련 투자는 경북 구미, 차세대 배터리는 울산 등 지역별 중점을 둘 산업을 밝히면서도 '언제 어떻게'라는 구체적 일정은 거론하지 않았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공급확장 프로젝트에 1100조 원을 계획하고 있다. 용인 클러스트를 12년 앞당기고 서남권에 약 400조 원을 투자해 새로운 클러스터를 조성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와 별도로 SK텔레콤 주도의 1000조 원 AI데이터센터 투자계획도 공개했다. 최 회장은 "참고로 용인 클러스터 조성에 저희가 9년이 걸렸다"며 부지와 용수, 인력 등 제반 여건 조성 여부가 향후 투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내비쳤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 2위 기업이 10년 이상 뒤를 내다보고 국내에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밝히는 것 자체는 의미있는 일이다. 다만 이번에 확정된 입지와 관련해 각 지역의 인프라와 산업 생태계, 인재확보 가능성 등을 놓고 기업이 최적의 조건을 따져 선택하는 과정을 제대로 거쳤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절차적 불투명성은 향후 정치적 논란과 지역 주민, 환경단체들의 반발을 불러 사업 추진속도를 낮추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 관계자들은 호남의 '반도체 제2 클러스터' 추진이 기존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추진에 차질이 없을 것이며, 오히려 속도를 더 높일 것이라고 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중장기적 투자역량과 사업 추진력을 분산해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일부 국내외 투자자 등의 우려도 큰 게 사실이다. 정부는 우선 용인 클러스터 건설의 속도를 떨어뜨리고 있는 지역사회의 민원, 규제 등 걸림돌부터 서둘러 제거해야 한다. 장차 반도체 사이클 급변동 등 대외적으로 심각한 변수가 발생할 경우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투자계획을 조정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