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기도 수원에서 제조업을 하는 김모씨(52)는 올해 초 A은행에 대출연장을 신청하러 갔다가 불쾌한 경험을 당했다. 은행 직원이 재계약 연장조건으로 대출금리를 작년과 비슷하게 책정한 것.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은행 대출금리가 하락했지만 김씨는 전혀 혜택을 못본 셈이다. 그는 은행 직원에게 금리가 왜 작년과 비슷하냐고 물었지만 속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뒤늦게 확인한 결과 은행이 일방적으로 부여한 가산금리가 원인으로 꼽혔다. 김씨는 "황당한 생각이 들어 문제제기를 하려고 했는데 A은행 지점장이 찾아와 필요하면 대출한도를 더 올려줄테니 제발 서류에 서명해달라고 요청했다"면서 "은행에 잘 못 보이면 나중에 불이익을 당할 거 같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필서명을 했다"고 토로했다.
#2. 직장인 유모씨(28)는 변액연금보험 때문에 적지 않은 손해를 봤다. 유씨가 변액연금보험에 가입한 것은 지난 1월 초. 그는 당시 설계사로부터 변액연금보험이 은행 적금보다 이자가 높고 언제라도 해지가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하지만 뒤늦게 지인으로부터 중도해지할 경우 원금의 절반가량을 위약금으로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단순히 적금으로 생각해 급여의 60%인 80만원을 불입했는데 결국 두달 만에 위약금을 모두 물고 해지했다.
금융권에 불만을 호소하는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남양유업이 대리점에게 제품을 강매한 것과 관련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금융권도 '갑을' 논란이 확산되는 추세다. 급전이 필요한 중소기업 사장들에게 가산금리를 더 책정해 부당한 대출금리를 책정하는가 하면, 개인고객들에게는 불완전 판매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대출연장이라는 족쇄를 악용, 민원조차 하지 못하게 막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금감원에 접수된 금융민원 실적은 9만5000건에 달했다. 이는 전년(8만5000건)에 비해 12% 늘어난 수치다. 금융권 전체를 보면 보험이 4만8000건으로 민원건수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은행과 비은행(4만3000건), 금융투자(3만5000건) 등이 뒤를 이었다.
민원사례도 다양하다. 은행과 비은행의 경우 경기둔화에 따른 채무상환능력 저하 및 부실채권 증가 등으로 불법·부당한 채권추심에 시달리는 민원이 급증했다. 또 김씨처럼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일부 금융회사가 대출연장 시 부당한 가산금리를 적용하거나 계약당시의 설명과 다른 금리를 적용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사전고지 없이 금리를 인상했다는 내용도 전체 금융민원 건수를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보험사의 경우 상품설명 불충분(불완전 판매), 보험요율 부당적용, 보험계약 중도해지 시 보험료 환급 기피 등 보험모집과 관련한 민원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민원사례를 보면 유씨처럼 보험설계사들이 보험상품을 팔 때 복잡한 약관을 악용해 속임수로 가입시키거나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민원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보험고객으로서는 보험지식이 없는데다 나중에 보험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소송한다고 해도 이길 확률이 낮아 보험사에 항의하다 못해 금감원이나 소비자단체를 찾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밖에 카드사는 가맹점수수료 인하 등 수익성 악화를 보전하기 위해 부가서비스를 축소한 사례와 연회비 부당청구, 사용한도 축소 등에 대한 민원이 많았다.
◆'乙 보호' 특명… 금융당국, 민원 줄이기 나서
이처럼 금융민원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금융당국도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저축은행 부실사태 이후 금융권의 신뢰도가 크게 추락하면서 금융당국이 우선적으로 민원 줄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또 박근혜 정부의 공약 중 하나인 경제민주화도 금융민원 감축 바람에 불을 붙였다.
우선 금감원은 민간인 출신 오순명씨를 금융소비자보호처장에 임명하고 소비자보호심의위원회 권한을 대폭 강화키로 했다. 또 중소기업 대출 등과 관련한 '꺾기' 관행을 줄이기 위해 '꺾기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기로 했다. 꺾기란 은행이 대출을 조건으로 자사의 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불건전 영업행위다.
은행의 펀드·방카슈랑스·퇴직연금의 불완전 판매와 금리·수수료 부당 수취 현황도 대대적으로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저축은행의 부당 고금리 대출, 대출모집수수료 불법 수취, 부당 이자 선취, 불법 채권추심 행위도 대표적인 '갑'의 횡포여서 금융감독당국이 집중적으로 점검한다.
신용협동조합이나 새마을금고·카드사·캐피탈사의 고금리 대출, 가맹점 수수료율, 카드 부가혜택 축소 등에 대해서도 감시가 강화된다. 금융지식이 없는 고객에게 부실한 설명으로 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행위, 보험금 지급 거부, 보험수수료 적정성 등도 전면 검사를 받는다.
금융감독당국은 금융사가 '갑'의 지위를 내세워 고객을 괴롭힌 행위가 적발되면 위반 건수와 피해액수, 재발 여부에 따라 가중 처벌할 방침이다.
금융위원회 역시 금융민원 줄이기에 동참했다. 금융위는 이르면 하반기에 금융소비자보호기획단을 설치해 전 금융사의 소비자 권익 침해사례를 원점부터 전면 재조사할 예정이다. 기존의 조사를 보강하는 차원이 아니라 모든 금융사의 관행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것. 이 조사는 올해 말까지 금융감독원 등 가용인력을 총동원해 이뤄지며 문제가 발견되는 즉시 해당 금융사에 강력한 시정조치와 더불어 개선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아울러 금융권 전체 민원 중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보험사에 대한 관리·감독도 강화키로 했다. 2년 내 보험민원을 50%로 감축한다는 목표를 수립했고, 25회차 계약 유지율을 오는 2014년 말까지 현행 60% 수준에서 80%로 높이기로 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