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6월 현대·기아차에 공구를 납품하는 중소 제조업체 '신우'는 제품의 부식률을 줄이고 강도 높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스위스에서 원재료를 수입해야 했다. 금융권에서 부채과다로 대출이 막히게 된 신우는 고육지책으로 크라우드펀딩 오퍼튠에 자금모집을 요청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투자자들이 신우의 재무현황과 생산라인 가동상황 등 객관적인 정보를 오퍼튠 사이트를 통해 확인한 후 69명이 투자해 5일만에 1억원을 모집했다.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알려진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이란 개인이나 기업이 아이디어 프로젝트가 있으면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 등을 활용해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투자받는 방식을 말한다. 일종의 공유경제로 이해하면 된다.
크라우드펀딩은 200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지금은 쇼셜네트워크(SNS)의 발달로 성장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SNS의 경우 정보 확산력이 커 단기간 내에 필요자금을 조달, 아이디어를 실현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경제 전망도 긍정적이다. 크라우드펀딩 전문 연구기관 '매솔루션'(Massolution)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크라우드펀딩 규모는 27억달러로 추정되며 올해는 51억달러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2009~2012년 세계 크라우드펀딩시장은 연평균 70% 이상의 고성장을 나타냈다.
크라우드펀딩이 해외시장에서 각광받으면서 국내 역시 점차적으로 참여기업이 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의 <주간 하나금융포커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크라우드펀딩시장은 15~16개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가 운영 중이며 펀딩규모는 84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에 따라 금융권 내부에서는 은행들도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모델 개발을 위해 크라우드펀딩 중개회사와 제휴 등의 참여 방안을 검토하라는 것. 하지만 아직까지 투자자 보호 미비와 정보 비대칭성 등의 부작용이 우려돼 은행들은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크라우드펀딩이 뭐지?
크라우드펀딩은 크게 대출형과 후원형, 지분투자형, 기부형 등 크게 네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분야는 대출형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크라우드펀딩으로 조달된 총 528억원 중 290억원(93%)이 대출형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형은 연평균 수익률이 15~20% 수준에 이른다. 은행 예·적금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투자자는 매월 원금과 이자를 거둘 수 있어 목적성 자금이나 종잣돈 마련에 유용하다. 또 매월 거둬들이는 원금과 이자를 재투자해 높은 복리수익률을 누릴 수 있다.
머니옥션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대출자가 제시한 금리와 대출사연, 신용정보, 상환계획 등을 판단해 개인에게 돈을 빌려준다"면서 "매일 70건 이상의 새로운 투자상품이 등록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후원형은 모금자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대중이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영화계에서는 '제작두레'라고도 불린다. 대기업의 자본 없이 영화를 만들 수 없는 한국영화 산업구조의 변화를 꾀하기 위한 돌파구이자 두레를 통해 모두가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관객들이 제작비를 모아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대표적인 것이 300만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 <26년>과 독립영화임에도 4만 관객을 돌파한 <지슬> 등이다.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 <26년>은 각종 외압설에 휘말리며 수차례 제작이 무산됐지만 결국 국민의 도움을 받아 영화로 완성됐다. 1만5000여명의 국민이 참여, 총제작비 46억원 중 7억원을 국민의 후원으로 채웠다.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천안함 프로젝트>도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된 영화다. 개봉 이틀 후 극장에서 상영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좌초의 위기에 놓였지만 멀티플렉스극장이 아닌 예술영화전용관만으로 1만 관객 돌파를 이뤄냈다.
지분투자형은 신생기업 및 소자본 창업자를 대상으로 엔젤투자형식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투자금액에 비례한 지분을 취할 수 있다. 기부형은 후원 형식의 소셜 펀딩과 유사하지만 보상을 조건으로 하지 않고 순수 기부의 목적으로 지원하는 유형이다. 이 두 유형은 국내에서는 활발하지 않은 방식이다.
◆은행들, 제도개선 필요 '한목소리'
이처럼 자금력이 부족한 벤처기업들이 크라우드펀딩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다는 장점 탓에 금융권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일 만하다. 하지만 국내 시중은행들은 아직까지 검토만 할 뿐 직접적으로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 곳이 없는 실정이다.
이유는 펀딩을 통해 조성된 후원금이 당초 목적한 곳에 제대로 집행되지 않거나 후원금을 수령한 후 펀딩 주체가 프로젝트를 실행하지 않을 경우 제재수단이 없기 때문. 이에 섣부르게 진출할 경우 오히려 고객들의 원성을 사거나 이미지만 실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은행들은 우선적으로 정부가 문화시장 특성에 맞게 크라우드펀딩 제도를 개선하고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지난 5월 정부가 '벤처·창업 자금생태계 선순환 방안'과 함께 크라우드펀딩의 법제화를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소액규모인 후원형과 기부형,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에 대해서는 규제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올해 초 전략기획부에서 신사업 아이디어 발굴을 위해 크라우드펀딩 도입에 대해 의견을 나눴지만 무산됐다"면서 "국내에서 시도하는 크라우드펀딩은 대부분 투기성향이 강하고 이자도 10~20%대로 높아 시중은행들이 참여하기에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무엇보다 투자자보호에 대한 안전장치가 미흡해 현실적으로 진출하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크라우드펀딩시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면서 "무엇보다 크라우드펀딩은 금융의 성격보다는 기부와 투자 성격이 강해 부담스러운 감이 있다. 지금은 (도입하는게) 시기상조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