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으로부터 안전할까. 정부는 신규발전소가 추가된 데다 지난해보다 덜 더울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에 따라 정전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지난 2011년에도 정부는 '문제 없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그리고 그해 9월15일 정부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예고 없이 찾아온 전력대란으로 전국이 어둠에 휩싸였고 국민과 기업들은 재산 및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올여름엔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전력난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이라고 보장하기엔 이르다. 이에 <머니위크>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전력대란 공포에 대해 짚어봤다. 원전의 안전성과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고 신재생에너지산업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전력낭비의 현장을 고발하고 우리나라 전력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양수발전소를 찾아봤다. 아울러 전기료를 아끼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지난 7일 개문 냉방 영업 중인 명동의 한 매장 앞을 쇼핑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류승희 기자


 

"이랏샤이마세." 한낮 기온이 34도를 웃돌던 지난 7일 오후 4시. '쇼핑 1번지' 명동의 한 화장품 매장 앞에는 여성 도우미들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번갈아가며 "어서오세요"를 외치고 있었다. 이들이 가리킨 곳은 문이 활짝 열린 매장 안. 도우미 중 한명은 "더우시죠? 시원하게 구경 한번 하고 가세요"라며 목청을 높였다.
 
◆ 정부 '26℃ 규정'도 현장에선 '마이동풍'

올해 처음으로 '문 열고 냉방' 영업에 대한 단속이 시작된 이 날. 단속반이 지나간 이후 명동지역 상당수 상점들은 버젓이 문을 열어 놓은 채 에어컨을 가동했다. 특히 가장 번화한 명동 중앙길 주변에 있는 에뛰드하우스, 더페이스샵, 마몽드, LUSH 등 화장품·바디용품 매장이나 미쏘, ABC 마트 등 의류·신발 매장과 같은 고객 회전율이 빠른 점포는 대부분 출입문이 열려 있었다.

한 화장품 매장 직원은 "아까 2시쯤 구청 직원들이 나와 단속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직접 보진 못했다"며 "단속을 하더라도 그때 뿐이지 (명동상권은) 경쟁이 심해 다시 문을 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마다 정부는 '땡큐26도'(Thank You 26℃)라는 구호를 내걸고 실내온도 26도 이상 유지, 시원한 옷차림, 선풍기와 함께 에어컨 작동 등을 권장하는 한편 개문냉방 영업금지를 각 매장에 요구하고 있지만 현장 풍경은 '마이동풍' 그 자체다.



명동 중심가에 위치한 화장품 매장들. 문을 열어 놓은 채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다. /사진=류승희 기자


 

◆ 단속해도 그때뿐… "차라리 과태료 물겠다"

심지어 이날은 중구청과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관리공단 단속반이 나와 명동 상점을 대상으로 개문냉방 단속을 시행했다. 명동 영업점 12곳이 적발돼 1차 경고장을 받은 뒤였지만 일대 상점들은 이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개문냉방 영업을 계속했다.

한 바디용품 판매점의 열린 문 사이로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직원에게 평소에도 문을 열고 영업하냐고 묻자 "방침상 문을 닫고 영업해야 하지만 그러면 손님이 몰리지 않고 적정 실내온도를 유지하면 고객들이 매장이 덥다며 나가버리니 매출상 손해가 크다"고 얼굴을 찌푸렸다.

또 다른 매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점원들이 긴 소매 옷을 입을 정도로 냉기가 느껴졌다.

긴팔 티셔츠 위에 반팔 티를 덧입고 있던 신발가게 점원은 "매장이 시원해야 주변을 기웃거리던 손님들이 더워서라도 들어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직원들은 하루 종일 매장 안에만 있다 보니 약간 서늘한 감이 있어서 안에 얇은 옷을 따로 챙겨 입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매장은 권장온도 26도를 크게 벗어난 19도에 맞춰진 채 20도 안팎의 낮은 온도가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명동지역을 개괄적으로 둘러본 결과 대부분의 매장이 '단속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크게 개의치 않고 개문냉방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한 화장품가게 직원은 "평일에는 조마조마하지만 주말에는 단속이 안 나와 마음 편히 문을 열고 장사한다"며 "위(점주)에서는 문을 닫고 영업해 100만원을 못 버는 것보다는 운이 나빠 걸리더라도 과태료 50만원을 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류매장 직원은 "주변 매장에서는 단속반이 왔을 때 급히 둘러댈 말이나 행동 등을 따로 정해 알려주기도 한다더라"며 "바로 에어컨을 끄거나 손님 핑계를 대는 등 당황했을 때 바로 나올 수 있도록 미리 숙지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쇼핑객들이 문이 활짝 열린 명동의 한 신발 브랜드 매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류승희 기자


 

◆ 에어컨 고장 난 것처럼 '꼼수영업'… 법 준수 모범 매장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속을 피하기 위한 '꼼수영업' 행위도 생겼다. 자동문 전원을 꺼놓거나 문이 안 닫히도록 직원 한명이 문 옆에서 자동문 열림 버튼을 계속해서 누르며 보초를 서는 것이다. 고객에게 나눠줄 사은품 가방을 자동문 입구에 배치해 문이 항상 열리도록 머리를 쓴 화장품매장도 있었다.

작은 규모의 한 의류매장은 매장 입구를 비닐막으로 막은 채 에어컨을 틀어 놨다. 비닐막 냉방은 지난해 계도기간까지는 용인이 됐지만 이후 비닐막을 설치하더라도 문을 완전히 막아야 한다는 지침이 내려온 바 있다.

이 매장 직원은 "비닐막을 설치해 두면 괜찮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추가 질문을 하는 기자에게 "안 된다는 고지를 들은 바 없다"고 손사래 쳤다.

물론 모든 매장이 이런 것은 아니다. 규정을 잘 지키는 곳도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의 경우 매장 입구에 '우리 매장은 문 열고 냉방영업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스티커를 부착한 뒤 문 열림 버튼을 눌러야만 손님이 들어갈 수 있게 했다.

SPA 브랜드인 자라매장은 출입문을 2중으로 만들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구조를 취했다. 바깥쪽 문은 손님이 열고 닫을 수 있게 하되, 안쪽은 자동으로 닫히게 만들어 놓았다.

이 매장 관계자는 "문을 열고 닫고에 따라서 매출이 크게 늘거나 줄어드는 차이를 아직 잘 모르겠다"며 "손님들이 가끔 피팅룸이 덥다는 지적을 하는데 직원들끼리 어떻게 효율적으로 바꿔나갈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냉방기를 켠 채 문을 열면 전기사용량이 3.4배 더 소모된다. 외부공기가 계속 유입돼 냉방기가 끊임없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합동단속반은 주요상권의 '개문냉방'에 대해 다음달 29일까지 단속할 방침이다.

중구청의 한 관계자는 "절반 정도는 정부 지침을 잘 따라 주고 있다. 일부 꼼수영업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지만 지자체마다 단속인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상인들 스스로 인식 전환과 함께 관련규정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