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가옥 한옥. 과연 한옥에서 살아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한옥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또는 박물관을 통해 보고 느낀 것이 전부일 것이다. 얇은 창호지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외풍과 건물 밖에 화장실이 있는 불편하고 촌스러운 집이라고….

하지만 이는 한옥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해서 생긴 선입견이다. 분명 옛 한옥은 오래돼 볼품없는 형태도 존재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자연과 어울리며 때로는 이용할 줄 알았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미(美)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들어 한옥이 재조명 받고 있다. 도심에 빼곡히 들어선 철근과 콘크리트 등으로 지어진 황폐한 건축물들 사이에서 우리의 숨통을 틔워주는 한옥이 점차 늘고 있다. 물론 온전한 옛 한옥은 아니지만 빽빽한 서울의 콘크리트 빌딩 숲 속에서 둥근 기와를 얹은 멋스럽고 단아한 한옥은 한점 여유로 다가온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 한옥은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단독주택. 외부는 양식 건물 이지만 내부는 한옥 전통의 미와 구조로 이뤄져 있다. /사진제공= 예지인종합건설

◆ 현대 건축이 ‘古’를 입었다

‘한옥이지만 한옥이 아닌 듯, 혹은 일반 건축물이지만 한옥 같은 건축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 처럼 들리겠지만 정답은 '최신식 한옥'이다. 옛 한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외국인관광객들이 북적이는 서울의 인사동이나 북촌·서촌마을 같은 형식화된 한옥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우리의 실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건축물이다. 주거용 건축물, 공공기관 건축물, 상업용 건축물 등 그 용도도 다양하다.

한옥은 아직 우리의 눈에 많이 띄지 않아 인지하지 못할 뿐 우리 인근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서울 혜화동 성균관대 인근에 위치한 한옥. 겉보기에는 누가 봐도 탄성이 나올 만큼 단아하고 격조 있는 한옥이지만 실상은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주민센터다.

이곳은 지난 2006년 11월 전국 첫 한옥 주민센터로 들어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사용해 주민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했었다. 이에 종로구청이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한옥의 전통은 살리고 시설은 최신식으로 꾸미는 리모델링 공사를 실시해 지금의 현대식 한옥 주민센터로 탈바꿈했다.

청사는 담장을 낮추고 화려한 조경 대신 우리 전통 한옥에 어울리는 마당을 들여놓은 게 특징이다. 다소 근대적인 모습이었던 내부도 사랑방과 대청 등 전통 양식으로 복원했다. 기둥과 서까래, 사주문, 담장, 나무 한그루까지 한옥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아 손님을 맞는다.

이외에도 서울 숭인동 인근에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단순한 한옥으로 착각할 만한 곳이 있다. 바로 ‘한옥도서관’이다. 이곳은 외부에서 보면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단순한 한옥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에 들어가면 책이 꽉 찬 도서관이다. 한옥의 온돌방 형태를 그대로 살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구조인데 앉거나 누워서 책을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진정한 '자유 열람식' 도서관이다.

혜화동 주민센터 /사진제공=혜화동 주민센터


◆ 현대 건축이 ‘古’를 품었다

외부는 양식 건물이지만 내부는 한옥으로 꾸며진 건물도 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지상 2층짜리 단독주택이 그 주인공. 외관만 보면 단순히 디자인에 신경 쓴 현대식 주택으로 보이지만 내부는 한국 전통의 미와 구조를 담은 한옥이다. 한마디로 콘크리트 건물 속에 한옥이 들어앉은 모양새다.

이 주택은 한옥 건축물 전문 시공업체인 예지인종합건설의 디자인과 설계를 바탕으로 건축주의 취향과 라이프 사이클까지 고려한 현대적인 구조에 전통 양식을 접목한 아이디어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거실. 세로로 길게 구성된 이곳은 양쪽이 전면 유리로 설계돼 한옥의 가장 큰 장점인 공간감과 여백의 미를 한껏 살렸다. 마치 한옥의 대청마루에 앉아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또한 창문과 문은 전통 한옥의 띠살과 용자살을 연상시켜 한옥의 수려함을 더한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 도담도담 한옥도서관 /사진=뉴스1 민경석 기자

◆ 되살아나는 한국의 ‘古’

이처럼 한옥의 아늑함에 양식의 실용성이 더해지며 국내 건축물의 패러다임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1980년 도시화 바람을 타고 편안함을 찾아 아파트와 주택으로 떠났던 사람들이 몇년 전부터 다시금 한옥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한옥이 살고 싶고 갖고 싶은 집으로 부상하면서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한옥마을 개발 붐도 일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한옥은 전국적으로 지난 2008년 5만5000가구에서 2012년 말 8만9000가구로 늘었고 최근에는 10만 가구까지 급증했다. 이처럼 한옥이 고급주택이자 세련된 웰빙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은 불과 5~6년 안팎. 서울 북촌과 서촌 붐을 시작으로 전북 전주 교동 한옥마을, 경북 안동 하회마을 등 한옥마을의 인기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대규모 한옥단지 조성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전통 한옥보다는 생활 편의성을 크게 높인 현대식 한옥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최근 들어 한옥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한옥을 은퇴한 부부의 전유물처럼 여졌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20~30대에게도 트렌디한 한옥은 ‘살고 싶은 집’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 현재는 한옥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서울 도심과 일부 지자체를 통해 확장을 시작한 우리의 한옥. 조상들의 지혜와 자연의 미를 담은 한옥이 전국에 점점 늘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