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을 해설하는 그의 목소리가 쉬었다. 세월 탓이다. 그럼에도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도성탐방 참가자의 눈높이에 알맞은 해설이 이어진다. 그의 일에서는 매너리즘을 느낄 새가 없다.


지난 10월 말 기자가 한양도성을 취재하며 만난 허창무 한양도성해설가(72)의 첫인상이다.

최근 10여년간 허씨의 직함은 여러번 바뀌었다. 그는 한양도성해설가이기 전 서울대공원 등에서 생태숲해설가로 활동했고 은평생태보전지구 관리인으로도 지냈다.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주택저당채권유동화주식회사(한국주택금융공사 전신)에서 이사를 지냈으며 40대 후반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바뀐 직함처럼 할 말도 많을 것 같은 그를 6일 다시 정식으로 만났다.


허창무 한양도성해설가. /사진=서대웅 기자

◆돈 만지는 시인, 시인인 금융인

1972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허씨는 첫 직장으로 한국투자금융(KEB하나은행 전신)에 취직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엔 매일 자정이 돼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당시 버스는 11시 반쯤이면 끊겼어요. 집까지 한시간 반가량 되는 거리를 걸어야 했지만 그때만큼 좋은 추억도 없습니다”(웃음).


바쁜 일상이에서도 그는 꾸준히 공부했다. 그 결과 <케인즈 경제학의 이해>, <케인스 평전>을 번역하기도 했다. 포털사이트에서 허씨를 검색하면 ‘금융인’으로 소개되지만 그는 문인이기도 하다. 1993년 월간 <현대시>에서 시로 등단한 이후다. 늦깎이 시인이다. 같은해 허씨는 시집 <어떤 봄날 산에 올라>를, 3년 뒤 <선인장>을 출간했다.


금융인의 삶에서 펜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때 선친께서는 어린이잡지 <소년세계>를 구해주셨지요. 동시를 읽으며 성장했어요. 대학시절엔 독립투사 장준하 선생이 발행하던 <사상계>를 읽었습니다. 독재사회였던 당대를 바라보는 데 큰 역할을 했죠. 사회생활을 시작한 1970년대 들어서는 신생잡지였던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을 읽기 시작했고요.”

그가 글을 쓰는 본연의 이유는 “세상에 대한 나의 외침” 때문이다. 몇명이 읽느냐는 중요치 않다. 끓어오르는 내 속의 무언가를 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행위로써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영어단어 중 ‘엠파시’(Empathy)와 ‘심파시’(Sympathy)가 있습니다. 둘다 ‘공감’으로 번역되죠. 그러나 뉘앙스는 달라요. 심파시는 내가 다른 이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거예요. 동정일 뿐이죠. 엠파시를 느끼려면 다른 사람과 완전히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엠파시를 느끼려고 해요. 잘 안되지만 시를 쓰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는 것일까. 그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 거침없이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좌파’같기도 하다.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지를 떠나 세상에 대한 관심이 느껴진다. 최동호 문학평론가는 그의 시를 ‘깨어있는 삶을 위한 시’라고 평한 바 있다. 그런데 그의 시는 순수하다.

“사회참여적인 시를 써보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제일 감동적인 글은 나를 표현하는 글이에요. 박노해의 노동시가 감동적인 이유는 그가 직접 체험한 바를 옮겼기 때문이에요. 사회시는 현장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책상에 앉아 돈 만지던 내가 그런 글을 쓸 수 있겠어요? 그게 안 되니까 서정시를 쓰는 거죠.”

◆‘2막인생’을 만든 우연들… “우연도 좋아해야 찾아옵니다”

사회에서 은퇴한 후 ‘2막인생’에 대해 허씨는 “우연의 연속”이라고 설명했다. 2002년 초 <한겨레>에서 진행한 ‘숲 생태 강좌’를 우연히 들었고 한국숲해설가협회를 통해 생태숲해설가가 됐다. 허씨는 “식물학·곤충학·생태학 등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며 숲 없이 사람도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며 “사회생활을 할 때보다 더 재미있게 일상을 보냈다”고 말했다.

“모든 게 우연입니다. <한겨레>를 보게 된 것도 우연이었죠. 1988년 한겨레 창간 당시 이사로 선임된 김태홍 선배에게 연락이 왔어요. 한겨레 주주가 되라고 하더군요. 김 선배는 5·18 당시에도 고생을 많이 해서 제가 도운 인연이 있었어요. 선배의 부탁에 군말 없이 주주가 됐죠. 사실 그때는 한겨레가 이렇게까지 잘 될 줄은 몰랐습니다. (웃음)”

허창무 한양도성해설가가 지난 10월26일 낙산성곽에서 한양도성 해설을 하고 있다. /사진=서대웅 기자

우연의 연결고리가 지금의 2막을 만들었지만 허씨는 “우연도 좋아하니까 찾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관심이 있는 분야를 꾸준히 공부했기 때문에 여러 기회가 찾아왔다는 얘기다. 한양도성해설가가 된 것도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은 결과였다.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역사 공부를 계속했고 이후 박물관 해설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꿈에 대해 “어느 정도 소망을 이뤘다”고 평했다. 금융인 시절 성실히 일했지만 은퇴 후에야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대단한 문인은 아니지만 글을 쓰고 있다는 것, 평소 독서하고 생각한다는 것, 도성해설가로 여러 사람을 만나며 그들과 소통하는 것. 요즘은 정말 일상이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10년 정도만 더 일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서울시 중구청 소속 한양도성해설가. ‘금융인’에 비해 다소 소박한 직함 같지만 그의 2막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최동호 문학평론가는 허씨의 시집 <어떤 봄날 산에 올라> 발문에서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세월이 지나면서 정열적으로 또다시 삶에 몰두하는 진지한 자세가 자연을 돌아보는 단아한 시정으로 농축돼 있다”고 적었다. 인터뷰를 마친 오후 5시. 허씨는 다시 도서관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