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금융협회 사회공헌재단 출범이 가시화되고 있다. 여신협회는 소멸시효가 만료된 선불카드 미사용잔액과 신용카드 포인트 등을 재원으로 하는 ‘신용카드 사회공헌재단’ 설립허가서를 지난달 금융당국에 제출했다. 금융위원회는 검토를 거쳐 이달 중으로 재단설립을 정식 허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협회가 재단 출연금을 놓고 카드사와 협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본격적인 재단 운영은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신용카드 사회공헌위원회’를 설립했지만 출연과 운영 등의 문제로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전례가 있어 같은 문제점에 봉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소멸 포인트, 연간 1000억원
여신협회의 사회공헌재단 설립은 지난해 3월 여신전문금융업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본격 추진됐다. 개정 여전법 제67조에 따르면 여신협회가 사회공헌재단을 설립하면 카드사는 재단에 선불카드 미사용잔액과 신용카드 소멸 포인트를 기부할 수 있다.
이번 재단 설립은 고객이 포인트와 선불카드 잔액을 유효기간 내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카드사가 낙전수입으로 이를 회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시민사회의 분위기가 반영됐다. 실제로 그동안 사용되지 못한 채 소멸된 신용카드 포인트는 연간 1000억원이 넘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업계 8개 카드사의 소멸된 포인트는 2013년 1156억원, 2014년 1139억원, 2015년 1162억원이다. 따라서 연간 1000억원이 넘는 소멸 포인트를 카드사가 가져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여신협회가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재단설립허가서는 ‘지정기부금단체’ 형태로 사회공헌재단을 설립한다는 게 주 내용이다. 지정기부금단체는 사회복지·문화·예술·종교 등 공익성을 띤 단체로 사회복지법인이나 문화예술단체가 이에 해당한다. 여신협회 사회공헌재단은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서민금융 지원 ▲영세가맹점 지원 ▲국민의 올바른 금융생활을 위한 공익적 활동 및 학술지원 ▲사회복지사업 등 사회공헌사업 등에 주력할 방침이다.
협회는 이를 위해 신용카드 사회공헌위원회의 기금잔액(20여억원)과 신용회복위원회에 투자했던 원금 회수분 등 총 67억원을 넘겨받아 재단 설립재원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여신협회는 카드사와 이달 말까지 소멸포인트 및 선불카드 잔액에 대한 출연규모·방법을 협의해 늦어도 1분기 내 출연을 완료할 계획이다.
◆출연금 규모·방식 협의 어려워
하지만 현재 재단기금 출연을 놓고 협회와 카드사 간 의견 차가 커 본격적으로 재단을 운영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소멸된 카드포인트 및 선불카드 잔액기준을 정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회사마다 카드포인트 산정체계가 다른 점도 합의가 지연되는 요인으로 꼽힌다. 롯데카드의 경우 카드포인트 소멸기한이 없다. 가맹점과 포인트 비용분담비율 역시 카드사마다 다르다. 대부분의 카드사는 소비자가 카드로 결제한 후 포인트가 쌓일 때 카드사와 가맹점이 일정비율로 나눠 비용을 분담하는 반면 현대카드는 소비자가 포인트를 사용할 때 가맹점과 비용을 나눈다. 현대카드는 소비자가 포인트를 쓰지 않으면 비용을 낼 필요가 없는 셈이다. 더욱이 카드사와 가맹점 간 비용분담비율 역시 회사마다 달라 기준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와 관련 한 카드사 관계자는 “소멸포인트를 재단의 재원으로 한다는 건 명목일 뿐”이라고 말했다. 기준을 마련하기 쉽지 않아 결국 카드사가 낸 회비로 재단이 운영될 것이라는 뜻이다.
2011년 4월 설립된 ‘신용카드 사회공헌위원회’도 소멸포인트 등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취지로 2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발족했으나 실제로는 카드사가 낸 회비로 기금을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기금의 절반은 카드사 일반회비(카드사 N분의1)로, 나머지 절반은 특별회비로 충당했다. 여신협회 특별회비징수규정(제9조의3)에 따르면 사회공헌사업부문 분담금은 카드사의 시장점유율에 따라 차등화된다.
결국 이번에도 이와 비슷한 기준으로 기금을 조성할 것이라는 게 카드업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카드사로선 가맹점수수료율 인하 등으로 연수익이 점차 줄고 있어 재단기금을 출연하는 게 부담스러운 눈치다. 한 대형카드사 관계자는 “여전법에 따라 재단을 설립하지만 수익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부담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아직 출연규모나 방식이 정해지지 않아 왈가왈부하긴 힘들다”고 덧붙였다.
◆위원회와 다른 재단, 성공할까
일각에서는 협회가 당국의 눈치를 보며 재단 설립을 급하게 추진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지난해 3월 개정 여전법이 시행되고 같은해 9월 여전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후 ‘사회적 약자 지원 등 사회공헌활동’을 강화하겠다는 금융당국의 방침에 부랴부랴 준비했다는 주장이다. 기금 출연규모나 방식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설립 인허가 신청을 먼저 해 관련 협의가 늦어질 경우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만 덧씌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여신협회 관계자는 “기금조성 규모 및 방법 등 기준은 설립 이후 논의해도 무방하다. 재단설립 재원이 있어 당국에 미리 신청한 것”이라며 “지속가능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준을 신중히 정해야 한다. 급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협회가 사회공헌재단 운영 시 카드사 실무자와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2011년 사회공헌위원회를 만들 때도 실무자를 별도로 뽑아 전문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카드사 실무진의 요구가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사회공헌위원회는 여신협회 종합기획부 소속 직원 2~3명이 별도 업무로 운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신협회 관계자는 “사회공헌위원회는 협회가 운영하다 보니 지속적으로 사회공헌에만 집중할 수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이번에 설립되는 사회공헌재단은 별도의 법인으로 실무전문가로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