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업, 특히 기업과 개별 소비자를 이어주는 B2C 물류는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다. 아마존 등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새로운 기술과 메커니즘을 적용해 물류 패러다임 전환에 앞장선다. 고객 접점에서 일어나는 서비스혁신과 드론과 친환경차 등을 활용한 기술혁신이 택배업계는 물론 제조기반 신산업의 동반성장을 이끈다.
전세계 각국이 물류산업 혁신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고 우리나라에서도 물류산업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이 대두되지만 제도개선이 더디다. 업계에선 기존 산업과의 충돌을 우려한 소극적인 정책이 혁신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한다.
◆성장 패러다임 바꾼다
우리나라 B2C 물류의 대표주자인 택배업계는 전자상거래의 보편화로 빠른 양적 성장을 거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택배산업은 최근 10년간 3배 가까이 성장했다. 2006년 6억6000만개 규모였던 물동량은 지난해 20억개로 늘었고 같은 기간 택배업 매출은 1조8000억원에서 4조7000억원으로 수직상승했다.
하지만 이런 성장은 택배업 종사자들의 고혈을 기반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성장을 확신하기 어렵다. 성장 패러다임을 전환하지 않고선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택배업은 급격한 양적 성장을 거뒀지만 종사자들의 고노동·저임금 구조로 달성한 성과인 만큼 부작용이 크다”며 “종사자들의 인권과 서비스의 질 하락, 기업의 혁신 부재 등이 우리나라 택배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택배서비스 발전방안은 정부가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국토부는 ‘특수근로자’라는 이름으로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던 택배업 종사자 권리 찾기에 나설 방침이다.
그간 지입제 택배기사의 경우 일반근로자와 근무성격이 유사하지만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정부는 이들도 초과근무수당을 지급받고 휴가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근로계약 표준계약서를 마련할 방침이다. 고용부와 협조해 가입률이 저조했던 택배기사의 산재보험 가입도 의무화한다. 또 택배요금신고제를 도입해 실제 기업화주들이 택배사에 지불하는 요금을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정부의 이 같은 방안에 대해 최근 설립필증을 받고 정식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은 전국택배연대노조(이하 택배노조)는 “당사자인 택배노동자의 요구가 담겼다는 점에서 전향적으로 평가하며 환영한다”고 밝혔다.
◆증차제한에 혁신도 막혀
하지만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업계 관계자는 “국토부의 이번 방안은 그동안 언급되던 내용을 모아놓은 수준”이라며 “전반적인 방향성은 제시했지만 세부내용 협의가 원만히 이뤄지지 않으면 현실성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택배노조 역시 이번 대책에 환영의 뜻을 내비쳤지만 추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추진한 ‘화물운송선진화방안’이 여러 업계와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었듯이 이번 ‘택배서비스 발전방안’ 추진과정도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의 택배서비스 발전방안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이 예상되는 부분은 ‘택배차량 신규허가’다. 2004년 개정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라 영업용 화물차는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 택배용 차량에 한해 일부 증차가 이뤄지긴 했지만 사실상 기존 업계에 한정돼 혁신 물류사업 도입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국토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을 통해 1.5톤 미만 영업용 화물차의 증차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으나 관련 법안은 국회 계류 중이다. 국회가 화물연대와 용달협회 등의 반발을 의식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정부의 이번 택배서비스발전방안에는 묘수가 담겼다. ‘친환경 화물차’에 한해 공급규제를 폐지한다는 것. 경유차 배출물로 인한 환경오염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환경’이라는 명분을 통해 증차 걸림돌을 돌파하겠다는 심산이다.
이와 관련한 법안은 이미 지난해 발의됐다. 이우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화물개정안은 약 1년간 계류되다가 최근에서야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의한 법안과 함께 병합 심사됐다. 허가 주체의 직영운영에 한해 1.5톤 미만 화물차로 한정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해당 법안은 소위를 통과해 법사위 체계자구심사와 본회의 처리만을 남긴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엔 친환경 화물차 제조업체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문제는 시행시점이다. 지난달 27일 국토교통소위원회에서는 이 법안을 내년 7월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잠정합의했지만 같은달 30일 전체회의에선 5개월가량 늦춰진 11월29일 시행으로 변경됐다.
중소 전기차제조사 관계자는 “대기업 제품이 나오기 전에 전기트럭 초기 수요를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시행 시점이 늦춰져 선도적으로 기술개발에 나선 의미가 퇴색됐다”고 토로했다.
현재 파워프라자, 제인모터스를 비롯해 다수의 중소기업이 1톤급 전기트럭에 대한 인증을 진행 중이며 내년 상반기 쯤 인증을 마치고 상용화된다. 하지만 2019년엔 국내 1톤급 상용차 시장을 장악한 현대차가 1톤 전기트럭을 출시할 계획이라 대부분의 수요가 현대차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8호(2017년 12월13~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