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사진제공=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관객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메리칸아이돌 초대 우승자인 세계적인 팝스타 켈리 클락슨이 뜨거운 함성소리에 귀마개를 쓴 상태로 다음 무대를 소개한다. “다음 무대는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보이밴드입니다. BTS!”
방탄소년단(BTS) 신드롬이 거세다. 진원지는 한국이 아닌 해외다. 지난해 11월 미국 3대 시상식으로 불리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 ‘퍼포머’ 자격으로 무대에 올라 세계를 열광시켰던 방탄소년단이 미국 최고의 시상식 ‘빌보드’까지 점령했다.

국내그룹이 빌보드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은 전례가 없는 일. 관객들은 방탄소년단 신곡 ‘페이크 러브’(FAKE LOVE)의 한국어 발음을 따라하는 ‘떼창’을 선보이며 빌보드 공연장을 그들만의 콘서트장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크 시대, ‘앨범상’ 못지않게 중요도가 커진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에서 2년 연속 수상의 주인공이 됐다. 경쟁자가 무려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다. 방탄소년단이 정말 제대로 사고를 친 것이다.


2017년 12월 저녁 방송된 미국 신년맞이 쇼 'ABC-TV 딕 클라크스 뉴이어스 로킹 이브'에 출연한 방탄소년단.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다

지난달 말에는 또 한번 믿기지 않는 소식이 전해졌다.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러브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가 빌보드 200 차트 꼭대기에 이름을 올리는 ‘대형사건’이 터졌다. 핫 100에서도 타이틀곡 ‘페이크 러브’로 톱 텐(10위)에 진입(5월30일 기준)했다. 한국 가수로는 ‘강남스타일’의 싸이에 이어 사상 두번째다.
아시아 가수가 빌보드 메인차트 1위에 오른 것은 1963년 일본 가수 ‘사카모토 규’ 이후 무려 55년 만이다. 방탄소년단이 일으킨 신한류가 세계를 정복하고 있다.

미국 팝시장은 아시아 가수들에겐 넘볼 수 없는 벽이었다. 특히 빌보드 시상식에서 영미권을 제외한 외국 출신 아티스트가 상을 받는 일은 더욱 드물었다. 1980~90년대 미국 팝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은 유로팝은 가사가 영어였다. 미국에 진출했던 국내 톱 가수 원더걸스나 보아도 결국 영어로 된 노래를 선보였다.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방탄소년단이 5월20일 미국 라스베거스 MGM그랜드가든아레나에서 열린 빌보드뮤직어워드에서 탑소셜리스트 상을 수상했다. /사진제공=빌보드/뉴시스


최근 각광받는 라틴팝을 제외하면 사실상 미국 팝시장에서 아시아권 언어로 만들어진 노래가 인기를 얻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2012년 싸이가 한국노래 ‘강남스타일’로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중독성 있는 후렴구와 말춤이 화제를 모은 측면이 크다.
반면 방탄소년단은 2015년부터 발매한 주요 곡을 꾸준히 빌보드차트에 진입시켰으며 결국 1위에 등극하는 기적을 이뤄냈다. 한국어 가사의 노래로 말이다.

방탄소년단의 ‘급’이 다른 성공에 국내 비평가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200차트 1위에 대해 “올림픽 금메달과 월드컵 4강에 비견될 만한 성과”라며 “세계 대중문화계의 지형이 바뀔 만한 큰 사건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1960년대 영국에 비틀스가 있었다면 2010년대 한국에는 방탄소년단이 있다”며 “비틀스와 마이클 잭슨이 걸었던 길을 가고 있다”고 극찬했다. 여전히 국내 아이돌 음악을 색안경을 쓰고 보는 이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방탄소년단에 쏟아진 찬사는 더욱 놀랍다.

◆BTS 성공 요인① 공감대 큰 노래·차별화된 뮤직비디오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케이스다.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은 히트작곡가 방시혁이 만든 ‘그저 그런’ 아이돌그룹 중 하나였다. 3대 기획사(SM·YG·JYP) 소속도 아니어서 방송 출연 및 프로모션 규모에도 한계가 존재했다.

기대할 수 있는 건 히트곡 제조기 방시혁의 프로듀싱 능력뿐이었지만 이마저도 불발됐다. 정규 1집 앨범 타이틀곡 ‘댄저’(danger)는 발매와 함께 차트에서 자취를 감췄다. 데뷔 초기 정통힙합그룹 콘셉트를 표방해 멜로디도 대중성이 떨어졌다. 그렇게 방탄소년단은 ‘유명인’ 방시혁이 만든 아이돌그룹, 그 이상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다.



방탄소년단이 국내·외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앨범 ‘화양연화 시리즈’를 발매하면서다. 그들은 이 앨범을 통해 청춘이 느끼는 고민과 고뇌, 갈등, 고통 등을 담아내며 1020세대의 아픔과 사랑을 노래로 표현해 큰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뮤직비디오도 차별점을 뒀다. 각 멤버별로 캐릭터를 부여하고 후속곡과 스토리가 연결되도록 ‘떡밥’을 던졌다. 팬들에게 후속 뮤비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며 콘텐츠 차별화에 성공했다.

◆BTS 성공 요인② 유튜브·SNS로 해외팬과 소통

반전은 온라인에서도 이뤄졌다. 데뷔 전부터 꾸준히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팬들과 소통한 방탄소년단은 유튜브를 통해 어마어마한 양의 ‘방탄 콘텐츠’를 쏟아냈다. 국내 방송활동에서 한계를 느낀 그들이 활동무대를 아예 인터넷으로 옮긴 것이다.


5홍대 BT21매장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팬들. /사진=임한별 기자


소속사는 멤버별 개인 콘텐츠를 블로그나 트위터에 업로드했다. 칼군무를 바탕으로 깔삼(?)하게 제작된 뮤직비디오는 국내를 넘어 해외 팬들도 조금씩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중소기획사의 한계가 아이러니하게도 해외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된 셈이다. 그렇게 그들의 숨겨졌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현재 방탄소년단의 공식 SNS 팔로워 수는 1100만명에 육박한다. 월드스타로 성장한 축구선수 손흥민의 팔로워 수가 80만명 수준임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규모다. 빌보드 200차트에서 방탄소년단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세계적인 가수 포스트 말론의 팔로워 수(970만명)도 아직 1000만명에 못 미친다. 방탄소년단의 소셜 네트워크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유튜브 조회수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1억뷰가 넘는 뮤직비디오만 13곡에 달한다. ‘러브유어셀프 승 허’(LOVE YOURSELF 承 Her)의 타이틀곡 ‘DNA’ 뮤비 조회수는 4억뷰에 육박했다. 13곡 전부 합치면 30억뷰를 넘어선다.
관련 동영상도 인기다. 팬클럽 ‘아미’(Army)의 외국인 팬들이 방탄소년단 히트곡을 한국어로 ‘떼창’하는 풍경이 영상 속에서 펼쳐진다. 방탄소년단의 공연에 리액션하는 외국인 동영상도 흥미를 유발한다.

한국어 가사는 SNS 등으로 실시간 번역돼 외국인도 그들의 노래 속 메시지를 읽는다. 그렇게 방탄소년단은 청춘의 보편적 주제를 바탕으로 국적과 인종, 문화를 모두 초월한 세계적인 보이밴드가 됐다. 켈리 클락슨의 말처럼 그들은 지금 가장 훌륭한 보이밴드로 우뚝 섰다.

◆BTS에게 배운다, 도전정신 ‘방탄 DNA’

방탄소년단은 ‘총알을 막아내는 아이들’이라는 뜻으로 사회적 편견·억압과 맞서 싸워 당당히 자신들의 음악과 가치를 지키겠다는 뜻을 담았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신드롬급 인기에 힘입어 ‘방탄’에 담긴 도전정신도 주목받고 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9일 논평을 내고 “지금 전세계에서 방탄소년단 바람이 불고 있다”며 “그런데 국민은 방탄국회에 울상짓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탄국회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국회의원의 체포를 막기 위해 소속당이 일부러 임시국회를 여는 것을 비꼰 단어다. 박 의원은 방탄소년단을 빗대 정치권이 그들의 진취성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가 더 이상 방탄국회라는 이름으로 방탄소년단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방탄소년단의 성공 요인을 기업이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방탄소년단이 단순히 SNS를 기술적으로 잘 활용해 성공한 것은 아니다”며 “그들은 SNS에 진정성을 담아 팬들과 소통했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 멤버 RM은 여성 비하 가사를 썼다는 지적을 받은 후 SNS를 통해 페미니즘 책을 읽는 사진을 올리는 등 팬들의 지적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진정성을 담은 소통으로 팬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나아가 충성도 높은 ‘아미’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임 교수는 “아무리 소통을 잘해도 실력이 없었다면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라며 “기업도 진정성을 담은 소통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제품 콘텐츠를 갖춰야 소비자들이 응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탄 신화’ 만든 방시혁은 누구?… 세계 음악계 움직이는 파워맨


/사진=뉴시스 박주성 기자


푸근한 곰돌이 같은 옆집 아저씨 인상을 지닌 방탄소년단의 제작자 방시혁은 국내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작곡가다. 박진영이 수장인 JYP엔터테인먼트 수석 작곡가 출신으로 당시 소속 가수인 god, 비, 별, 2PM, 2AM, 임정희, 박지윤 등의 히트곡은 물론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에이트의 ‘심장이 없어’, 옴므의 ‘밥만 잘 먹더라’ 등을 히트시켰다.
2005년부터 자신의 사업체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고 2013년 방탄소년단을 만들어 주요 곡을 작곡하면서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재학 중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하며 음악계에 발을 들였으며 과거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지만 방송출연이 잦은 편은 아니다.

방탄소년단을 세계적인 음악그룹으로 만들어 한류 확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또한 2018년 미국 빌보드가 발표한 ‘인터내셔널 파워 플레이어스’로 선정됐다. 넷마블게임즈 창립자인 방준혁 이사회 의장이 친척형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3호(2018년 6월6~1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