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종량세’ 도입이 무산되며 국내맥주업계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산맥주와 수입맥주간 세금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겠다던 정부가 ‘1만원에 4캔 수입맥주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잘못된 우려에 갇혀 업계의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 각국이 자국 산업의 보호와 부흥을 위해 각종 조치를 취하는 가운데 국내맥주산업은 정부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주세법으로 생존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정부가 확정한 세법개정안에는 최근 주류업계의 관심을 모았던 맥주에 대한 과세체계 변경안이 빠졌다. 50년 이상 유지된 종가세를 이번에도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이 세법은 현재 OECD 회원국 35개국 중 4개국(한국·칠레·멕시코·터키)만 적용하고 있다.
현재 국산맥주는 종가세를 적용해 원재료비에 인건비·판매관리비·이윤 등까지 포함한 출고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긴다. 반면 수입맥주는 관세를 포함한 수입신고가격이 과세표준이어서 수입가격을 낮게 신고하면 세금이 줄어들어 상대적 가격경쟁력이 높다.
이에 따라 대다수 선진국에선 알코올 도수나 술 부피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다. 이 세법이 적용되면 저가의 질 낮은 맥주는 퇴출되고 고가 맥주의 가격은 낮아지며 종류도 다양해져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게 국내주류업계의 주장이다.
특히 수입맥주가 이 같은 과세체계의 이점을 앞세워 최근 ‘1만원에 4캔’을 앞세우며 가정용 맥주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자 국내맥주업계에선 불공평한 제도를 바꿔야 한다며 종량세 전환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결국 국내맥주업계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국수제맥주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국내맥주산업의 발전과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권 보장을 위해선 대기업맥주, 수입맥주, 수제맥주에게 각각 주어진 역할과 존재 의미가 있다”며 “공정하게 경쟁할 수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어느 한축이 무너진다면 국내맥주산업의 균형이 무너지고 궁극적으로 국내맥주산업이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부의 법령이나 규제 개선의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타이밍”이라며 “올바른 방향임에도 눈치를 보고 좌고우면하며 적정한 시기를 놓친다면 많은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 국내맥주산업의 백년대계를 결정지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사후약방문하지 말아야 한다”고 종량세 도입을 재차 촉구했다.
국내 맥주 대기업들도 정부에 대놓고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지만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맥주 대기업 관계자는 “대부분의 선진국이 종량세를 채택한 상황에서 이번에도 주세법 개정이 무산돼 아쉽다”며 “대기업의 경우 다양한 사업포트폴리오와 발포주시장 등 새로운 분야 진출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수제맥주업계는 많이 힘들어 질 것”이라고 말했다.
맥아 함량이 10% 미만인 발포주는 주세법상 맥주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돼 72%의 주세가 적용되는 맥주보다 훨씬 낮은 30%의 주세를 적용받으며 교육세도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때문에 발포주의 경우 ‘1만원에 12캔’ 판매가 가능해 지난해 4월 하이트진로가 출시한 발포주 ‘필라이트’는 1년 만에 2억캔 판매를 돌파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필라이트의 성공을 지켜본 오비맥주도 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초에는 도수 4.5도 제품으로 발포주시장에 진출할 방침이다.
맥주업계 관계자는 “세법상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수입맥주의 공세가 거세지는 만큼 다른 형태로 수익성 확대를 도모하려는 시도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