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소재한 대학교를 다닌 홍모씨(28·남)는 1년 간 졸업을 유예하다 지난주 졸업장을 받았다. 그의 신분은 이제 대학생이 아닌 취업준비생(취준생). 몇차례의 인턴십(인턴)과 준수한 학점, 그리고 각종 대외활동을 경험한 홍씨지만, 반복되는 서류탈락에 자존감이 바닥을 찍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채용시즌에서 홍씨가 지원한 기업은 46곳. 이 중 서류에 합격한 기업은 13곳, 면접까지 간 기업은 4곳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최종면접에서 고베를 마신 홍씨는 “기업 10개를 지원한다면 서류합격은 3개 이하, 면접합격은 1개 이하다. 솔직히 탈락이유를 모르는 게 제일 힘들다”며 “서류에서 떨어지면 그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면접을 기다리는 취준생의 모습./사진=뉴스1 홍씨만의 걱정이 아니다. 한 취준생카페의 회원들은 ‘취업준비에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압박감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주변 친구들의 취업소식 ▲서류탈락의 허탈감 등을 꼽았다. 지난달 기준 25~34세 성인 100명 중 6.4명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하루를 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7월 기준 25~34세 실업자는 33만8000명. 실업률은 6.4%에 불과하지만 실업자의 기준이 ▲일을 하지 않았고 ▲지난 4주간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한 사람 ▲일이 주어지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해당 수치를 충분히 뛰어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준대로라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취준생은 실업률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 4월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취준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취업준비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는 취준생은 66.7%에 달했다. 이는 10명 중 6명 이상의 취준생이 실업자에서 제외됨을 의미한다.
홍씨는 "이번 졸업식 때 제 주위 친구들의 절반 이하가 아직도 취업을 못했다고 하더라"라며 "서울에서 중상위권 학교인 점을 감안하면 체감상 실업률은 6%를 훨씬 넘는다고 느낀다"고 밝혔다.
◆"학원비·응시료 등 경제적 부담 가중"
1년째 취업을 준비 중인 유모씨(27·남)는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적인 부담이 가중된다고 호소했다. 유씨는 “요즘 어학은 서류에서 필수지 않나. 거기다 영어면접까지 봐야 해서 학원을 안다닐 수가 없다”며 “학원 수강료, 시험비가 너무 부담된다”고 말했다.
유씨는 “한달 생활비가 90만원(월세/학원비/식비/기타) 정도인데 부모님께 의존하려니 눈치가 보여 급한 경우를 제외하면 알바로 충당하고 있다. 주말에는 서빙 알바, 평일에는 디자인 외주 알바를 한다”고 설명했다.
삽화=머니투데이 김현정 디자이너 잡코리와와 알바몬이 지난달 ‘취업사교육 경험’을 조사한 결과 취업을 준비하는 3~4학년 대학생 10명 중 5명이 토익·토플 등 영어점수를 올리기 위해 사교육을 받는다고 답했다. 해당 조사에서 대학생들이 한달에 취업사교육비로 사용하는 돈은 약 18만원으로 집계됐는데 사교육비의 주 사용처는 ‘외국어점수취득 시험응시료'(54.8%)가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블라인드 채용이 확대되는 추세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영어시험 점수를 기준으로 삼는다. 채용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중소기업진흥공단, 아시아나항공 등 많은 공·사기업에서 여전히 가장 대표적인 TOEIC(토익) 점수를 요구한다. 뿐만 아니다. 일부 기업들은 토익스피킹 등 영어 말하기 시험 성적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달에 1~2차례 있는 토익 응시료는 1회에 4만4500원, 토익 스피킹은 7만7000원이다. 대학생들의 한달 생활비가 평균 51만4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3개월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조모씨(27·남)는 “학사장교를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토익스피킹 학원을 다니는데 학원비와 시험비가 부담돼 다음 달부터 알바를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해외 취업 정보를 보고 있는 구직자./사진=뉴스1 ◆외국으로 눈 돌리는 취준생도 대학교 3학년때부터 취업을 준비한 배모씨(27·남)는 지난해 중견기업에서 5개월간 인턴십을 하고 정규직 전환을 포기했다. 배씨는 “원하는 자동차 관련 기업이 아니라 정규직을 포기했다. 인턴생활을 하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회사에 비전이 안보여 다른 곳을 다니기로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국내에선 자신이 원하는 자동차 관련 기업의 폭이 너무 좁다고 생각한 배씨는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준비할 것이 너무 많은데 영어는 자신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이 잘하는 영어보다 다른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 대학생 때부터 중국어 회화공부를 꾸준히 했다”며 “1년 간 중국 상하이로 교환학생을 다녀와 어느 정도 회화가 가능한 수준이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해외취업 프로그램 ‘K-무브’에 참여한 배씨는 지난달 중국 장수성 염성으로 넘어가 한달 만에 취업에 성공했다. 자신이 원하는 자동차 관련회사에 오는 10월부터 출근하기로 한 것. 국내에서 2년 동안 준비한 결과가 인턴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차이다.
올 초 정부가 발표한 지난해 연간 해외취업자는 5118명이다. 2014년 1679명, 2015년 2903명, 2016년 4811명과 비교해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 초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책 중 하나로 해외취업을 꼽기도 했다. 김 부총리는 “대책 중 큰 줄기 하나는 해외 쪽”이라며 “청년 일자리 문제에 여러 돌파구 중 하나가 해외 쪽인 건 확실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