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의 인사에 무대 뒤 화면에 비친 수십 명이 박수를 쳤다. 이어 진행자가 무대에서 내려가자 모델이 런웨이를 활보했다. 화면 귀퉁이에선 디자이너가 등장해 소감을 전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현대홈쇼핑 ‘H패션 2020년 F/W 디지털 런웨이’의 풍경이다.
현대홈쇼핑은 이날 온라인 패션쇼를 통해 정구호 디자이너의 ‘제이바이’와 이상봉 디자이너의 ‘이상봉에디션’ 등 총 8개 브랜드의 가을·겨울 시즌 신상품을 선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이 같은 언택트(비대면) 패션쇼가 업계 주류로 떠올랐다.
코로나19는 지난 봄·여름 시즌 패션업계를 할퀴었다. 업계 전반이 급격한 매출 부진에 빠졌고 일부 업체는 생존위기에까지 놓였다. 가을·겨울 시즌을 준비하는 업계의 자세가 달라진 이유다. 업계는 최대 성수기를 맞아 비대면 패션쇼를 여는가 하면 온라인 전용 브랜드를 선보이고 신사업에 뛰어드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홍보부터 판매까지… 온라인에 힘준다
패션업계의 사업 전략이 급변하고 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백화점 입점이 필수요소였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패션 소비 채널이 온라인으로 급속하게 기울면서 업계는 오프라인을 떠나 온라인 역량 강화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업계는 자체 온라인몰 강화와 온라인 판매 채널 확대에 힘쓰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패션 전문기업 한섬은 올해 ‘온라인 퍼스트 전략’을 세우고 온라인 물량과 독점 상품 공급을 늘렸다.
그 결과 한섬은 더한섬닷컴·H패션몰·EQL 등 세개 온라인몰에서 올 상반기 12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62% 신장한 수치다. 회원 수도 지난해보다 21% 늘어 26만명을 돌파했다.
회사 관계자는 “과거 메르스와 신종플루 발생 당시 온라인 매출이 급증했었다”며 “당시 데이터를 기반으로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온라인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해 공급 물량을 사전에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오프라인에선 판매하지 않는 온라인 전용 브랜드도 나왔다. 점포 운영비용을 줄일 수 있어 가격이 비교적 낮게 책정된다는 점이 특징. 실제로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이달부터 선보이는 온라인 전용 여성복 브랜드 ‘브필먼트’는 기존 여성복 브랜드 대비 가격이 50~60% 저렴하다.
비대면 소비 트렌드와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온라인 전용 브랜드는 톡톡한 효과를 거뒀다. 앞서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지난 2월 출시한 온라인 전용 브랜드 ‘텐먼스’는 출시 일주일 만에 두달치 물량을 완판했고 현재 월평균 매출이 3억원을 웃돈다.
2000년 업계 최초로 온라인 자사몰을 선보인 LF도 온라인 사업을 강화한다. 올 봄 여성복 브랜드 ‘앳코너’를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 전환했으며 남성 패션 온라인 편집몰 ‘아우’를 출시했다. 패션·뷰티를 넘어 리빙·가전까지 판매하는 라이프 스타일 전문몰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도 ‘빈폴액세서리’를 백화점 매장 50여곳을 접고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 바꾸기로 했다. 현재 17% 수준인 온라인 매출 비중을 내년까지 30%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판매뿐 아니라 홍보·마케팅 방식도 온라인 위주로 재편됐다. 온라인으로 신상품을 소개하는 언택트 패션쇼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 오는 10월 개최될 서울패션위크는 물론 세계적인 브랜드 패션쇼가 일제히 온라인에서 열린다.
백화점과 홈쇼핑도 올해 신상품을 언택트 패션쇼로 공개했다. 앞서 지난 4월 현대백화점이 업계 최초로 진행한 온라인 패션쇼는 5000여명이 실시간으로 시청하기도 했다. 생방송 쇼핑 플랫폼인 라이브커머스에도 패션업체가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드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 입점은 브랜드 인지도 강화를 위한 차원이었으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통하지 않는 전략”이라며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하고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사업 효율성을 제고하겠다”고 말했다.
기성복 한계 넘는 패션업계
수익원 다각화에도 나섰다. 수년째 지속된 부진에 코로나19까지 덮쳐 시름하는 아웃도어업계가 앞장섰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은 최근 산업용 의류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목공·건설·항공·정비 등 현장에서 입는 워크웨어(작업복) 브랜드인 ‘볼디스트’를 선보이며 B2B(기업 간 거래) 시장을 노린다.
정통 아웃도어업체는 기능성 중심의 등산복 브랜드에서 라이프스타일 캐주얼 브랜드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선두에 선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과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 등이 10~20대에게 인기를 끌며 선방하고 있는 점이 선례가 됐다.
패션 대기업은 마스크 사업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빈폴’은 지난 7월부터 패션 마스크 판매에 돌입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마스크 판매에 나선 건 1954년 회사의 전신인 제일모직 창사 이래 처음이다.
이에 앞서 LF의 대표 브랜드 ‘헤지스’는 지난 3월 필터 교체형 마스크를 출시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여성복 ‘쥬시 꾸뛰르’와 ‘보브’도 지난 4월 패션 마스크를 선보였다. 쥬시 꾸뛰르 제품의 경우 이미 5차 재생산에 들어간 상태다.
이미 쌍방울과 BYC 등 속옷전문기업은 코로나19 초기부터 마스크 판매로 수혜를 입고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에 대기업까지 의류 판매 부진을 마스크로 메우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됨에 따라 마스크가 패션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매일 착용하는 제품이다 보니 패션,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는 마스크를 패션 아이템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색상을 추가하는 등 판매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