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개강을 앞둔 지난 8월31일 오후 한 대학의 강의실에서 교수가 비대면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뉴스1
#1 청각장애 대학생인 한슬기씨(가명·여·23)는 화상강의를 모두 들었지만 결석 처리됐다. 교수가 수업 도중 무작위로 학생을 호명하는 방식으로 출석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씨는 출석체크를 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2 약시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서새롬씨(가명·여·22)는 화상으로 진행되는 비대면 시험이 걱정이다. 잘 보이지 않는 화면을 들여다보고 문제를 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장애 사실을 밝히고 교수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부탁했지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다수 대학이 비대면 원격강의를 실시하는 가운데 장애대학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4월 전국의 대학들은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비대면 강의를 전면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이어진 2학기에도 비대면 강의는 계속됐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으로 전체 332개 대학 중 전면 대면수업을 진행하는 곳은 8개교로 2.4%에 불과하다. 나머지 학교들은 비대면수업을 원칙으로 수강 인원이 소수거나 실험·실습·회화 등 과목에만 대면수업을 적용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수업 방식을 바꾸는 곳도 있다.


비대면 원격강의는 크게 교수가 수업 영상을 업로드하는 방식과 화상강의 플랫폼으로 실시간 원격수업 진행하는 방식이 있다. 두 가지 모두 시·청각 장애인 학생에겐 불편할 수밖에 없다.

장애대학생의 원격강의 수강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올초 1학기 시작 시점부터 나왔다. 이에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지난 3월 '장애대학생 원격강의 지원 설명자료'를 통해 지원책을 발표했다.

지원대책은 대학과 각 기관이 장애대학생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과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학생의 필요에 따라 인력과 보조장비 등을 지원해 수강에 불편함이 없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머니S 취재 결과 실제 원격강의를 듣는 장애대학생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수화통역·속기 지원하지만… 부족한 인력

청각장애 대학생이 수강하는 화상 강의에서 수어통역사가 교수의 말을 수어로 전달하고 있다. /사진=한슬기씨(가명) 제공
청각장애 대학생이 실시간 원격수업을 들을 땐 수어통역이나 속기가 제공된다. 화상강의 플랫폼에서 열리는 온라인 강의실에 수어통역사가 함께 접속해 실시간으로 교수의 말을 수어로 통역한다. 필기도우미나 문자통역도 지원된다.
문제는 수어통역사 지원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수어통역사가 많은 수도권에 비해 지방은 전문 수어통역 인력이 부족하다. 자연히 수어통역 지원 횟수도 적을 수밖에 없다.

한슬기씨는 “수어통역 지원이 한정돼 (실시간 수업에서) 다른 청각장애 대학생과 동시에 통역을 받아야 했다”며 “같은 수업을 들어야 해 시간표를 맞춰야 했고 수강 변경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인력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수어통역사가 지원되지 않는 날도 있었다. 한씨는 “수어통역이 지원되지 않는 날엔 문자통역이 지원된다”고 설명했다.

실시간 강의가 아닌 수업에서도 불편한 점은 이어졌다. 교수가 영상을 따로 업로드하는 형태의 강의에서도 통역이 지원되지만 한정된 인력이 다시 한번 발목을 잡았다.

교수가 강의 영상을 올리는 수업은 수어통역사와 시간을 정해 통역을 지원받는다. 이 경우에도 같은 강의를 듣는 청각장애 대학생 2~3명과 함께 통역지원을 받아야 한다. 컴퓨터 고장 등의 이유로 정해진 시간에 접속하지 못한다면 일정을 다시 잡아야 한다.

통역지원이 이뤄지더라도 수업을 제대로 듣기는 어렵다. 참여자들의 모습이 무작위로 나오는 화상강의 플랫폼의 한계 때문이다. 한씨는 “(프로그램에서) 화면에 단 한명만 고정할 수 있다”며 “교수님의 모습을 고정하면 수어통역사의 화면이 갑자기 사라지기도 해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보이지 않는 수업입장 버튼… ‘웹 접근성’ 미준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웹 접근성 표준지침을 준수한 사이트에 대해 품질 마크를 부여하는 인증제도를 운영한다. 사진은 인증마크. /사진=과기정통부 홈페이지 캡처
시각장애 대학생들이 온라인 강의실에 입장하는 건 실제 대학 강의실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 대학에서 제공하는 교육포털 사이트의 대다수가 웹 접근성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아서다.
이들이 웹페이지를 이용할 땐 ‘스크린 리더’와 같은 보조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는다. 페이지의 내용을 읽어주는 TTS(Text to Speech) 기능으로 페이지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웹사이트가 웹 접근성을 준수해 보조 프로그램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서새롬씨가 다니는 학교는 홈페이지부터 이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 대학의 교육포털 사이트 역시 웹 접근성을 준수하지 않아 강의 수강부터 과제 제출·온라인 시험 응시까지 애를 먹었다. 서씨는 “(교육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부터 힘들어 친구들의 도움을 받은 뒤에야 이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지원책만 있는 교육부… 관리·감독은 허술

교육부는 지난 3월과 8월 각각 설명자료(위)와 안내자료(아래)를 통해 장애대학생의 지원 대책을 안내했다. /사진=교육부 자료 캡처
이처럼 지원책이 있음에도 장애 대학생들이 원격강의 수강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당국의 관리·감독이 허술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장애대학생 교육활동 지원사업’을 통해 장애대학생의 학교생활과 교육을 지원한다. 세부적인 지원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이 담당한다. 

지난 8월 진흥원이 발표한 '2020학년도 2학기 원격수업 대비 장애대학생 지원 안내'에 따르면 각 대학의 장애학생지원센터 및 지원부서가 장애대학생의 수요를 조사해 진흥원에 제출하면 대학에 운영비 등이 지원된다. 결국 장애대학생 교육활동 실태 파악과 실질적인 지원은 대학의 지원부서가 담당하는 셈이다.

이 지원방안은 단순 가이드라인의 성격을 띤다. 따라서 대학의 지원담당 부서가 이를 지키지 않더라도 직접 제재하기 어렵다. 

교육부 관계자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대학은 장애대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해야 한다”면서도 “(대학이)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설치하지 않거나 관련 지원방안을 지키지 않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지원방안) 안내 후 각 대학이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조사했다”며 “장애학생지원센터 설치 여부와 지원인력도 매년 대학정보 공시를 통해 공개한다”고 덧붙였다.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건 ‘배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활동가들과 한국농아인협회, 한국농교육연대 관계자들이 지난 4월6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기자가 만난 장애대학생들은 교육권 보장을 위한 대책도 중요하지만 배려가 가장 필요하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한씨는 “교수님과 학교 관계자들이 표정이나 손짓처럼 시각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청각장애 문화를 이해해야 할 것”이라며 “요즘엔 마스크 착용으로 의사소통이 더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들도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필수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씨도 학교와 담당부서의 부족한 지원을 성토했다. 그는 “대학 입학 후 장애학생지원센터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며 “직접 찾아가 시각장애가 있음을 밝히니까 도우미학생을 붙여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코로나19로) 전면 비대면 강의가 결정됐을 때도 원격강의 지원 방안을 전혀 안내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학교 당국의 배려가 부족한 점도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 이전에도 도우미학생 배정 외의 지원이 없었다”며 “실습 과목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참여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시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교수님께 설명드려도 이렇다 할 배려가 없었다”며 “과제나 시험 등 관련된 모든 활동을 비장애 학생과 동등한 조건에서 치러야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