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부 김모씨는 올해 설 차례상에 배와 사과 등 전통적인 과일 대신 바나나 한 송이를 올릴지 고민이다. 설을 앞두고 과일 가격이 너무 올라서다. 가장 많이 찾는 나주배의 경우 지난해 개화기 저온으로 인한 착과 불량에 이어 수십일 동안 이어진 장마와 잇단 태풍 탓에 생산량 자체가 급감하는 악재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설 명절을 앞두고 나주 현지 공판장에서 판매하는 배 가격이 곱절 이상 급등했다. 김씨는 “조상님께 외래 과일을 올리는 게 찜찜하지만 가족이 잘 먹지도 않는 과일을 비싸게 살 필요 있겠나”라고 말했다.
설을 앞두고 밥상 물가가 비상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여름부터 이어진 이상 기후에 농산물 가격이 치솟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닭과 계란을 중심으로 축산물 가격도 고공행진이다. 명절을 앞두고 주요 성수품의 가격이 더 오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이 다가올수록 서민의 한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계란 한판 1만원… 장보기가 무섭다
4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밥상 물가가 전방위로 올랐다. 시금치·애호박·양파 등 농산물 가격뿐 아니라 소고기·닭고기·계란 등 축산물까지 전달 대비 두자릿수 상승폭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일 기준 시금치 1㎏ 소매가격은 7717원으로 한 달 전(5839원)에 비해 24.3% 상승했다. 배추 1포기 소매가격은 같은 기간 2897원에서 3401원으로 17.3% 올랐다. 애호박 1개 소매가격 역시 이 기간 1735원에서 2589원으로 32.9%나 뛰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같은 날 양파 1㎏ 소매가격은 3313원으로 한 달 전(2437원)보다 26.4% 증가했다. 1년 전(1727원)과 비교하면 47.8% 급등한 수준이다. 대파 1㎏ 가격은 5501원으로 한 달 전에 비해 35.7%, 54.6% 올랐다.
과일도 마찬가지다. 사과(부사·10개) 소매가격은 3만4080원으로 한 달 전과 1년 전에 비해 각각 18.1%, 42.1% 올랐다. 배(신고·10개) 소매가격은 4만9802원으로 18.8%, 39.3% 뛰었다.
이처럼 농산물 가격이 일제히 치솟은 건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이상 기후 영향이다. 지난해 여름 사상 최장 기간 장마와 잇따른 태풍으로 과일 출하량이 대폭 줄었다. 올겨울 들어선 한파와 폭설로 농작물 생육이 부진한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집밥 수요가 증가한 영향도 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등 축산물이 대표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에 따르면 한우와 삼겹살 가격은 지난해 5월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크게 오른 뒤 아직까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AI 확산에 따른 살처분과 일시이동중지명령으로 가금산물(고기·계란·부산물)도 뛰었다. 지난해 11월 국내 가금농장에서 AI가 처음 발생한 이후 지난 1일까지 1309만7000마리가 살처분됐다.
알을 낳는 산란계가 살처분되면서 계란 가격은 ‘금값’이 됐다. aT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계란(특란) 30개 소매가격은 7432원으로 1년 전(5268원)보다 29.1% 올랐다. 한 달 전과 비교해도 20.4% 상승했다. 마트와 시장에선 계란 한판 가격이 1만원을 웃돈다.
물가 고공행진… 설 차례상 어쩌나
밥상 물가가 급등하면서 설 차례상 비용 부담도 커졌다. 올 설 차례상 차림 비용은 지난해보다 10% 이상 더 들 것이란 분석이다. aT가 설 성수품 28개 품목에 대해 전국 17개 전통시장과 27개 대형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전통시장 차례상 구입 비용은 26만3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14.0% 올랐다. 대형마트 구입비용은 36만3000원으로 같은 기간 14.1% 상승했다.
한국물가협회에서도 올 설 차례상 비용은 지난해 설보다 11.0% 늘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인천·부산·대구·광주·대전 등 전국 6대 도시 전통시장 8곳에서 차례용품 29개 품목 가격을 조사한 결과 비용은 23만3750원으로 집계됐다. 조사 품목의 전체의 75%인 21개 품목 가격이 상승했다.
물가협회는 “코로나19 사태로 집밥 수요가 늘고 있는 가운데 작황 부진·기상 악화·가축 전염병 등으로 차례 용품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설 차례 비용 부담은 다소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이 임박할수록 제수용 수요가 증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례상 비용은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정부는 설을 앞두고 농축산물 수급 안정 대책을 내놨지만 소비자가 체감할 수준일지는 미지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배추·무·사과·배·소고기·닭고기·돼지고기·계란·밤·대추 등 10대 성수품의 공급 물량을 농협 및 생산자 단체와 유통업계를 통해 평시 대비 1.4배 확대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사과와 배는 평시 대비 공급량이 각각 206%, 186% 늘어난다. 축산물 공급량도 127% 증가한다.
수급 차질을 빚고 있는 계란의 경우 수입산 공급 물량을 늘린다. 정부는 ‘할당관세 규정 개정안’을 의결해 6월30일까지 계란류 8개 품목 총 5만톤에 대해 관세를 0%로 인하키로 했다. 통상 수입 계란에는 관세율 8~30%가 적용되지만 이번 조치로 관세가 면제된다.
하지만 현장 반응은 미지근하다. 국내 대형마트가 수입 계란 취급을 꺼리고 있고 소비자도 수입 계란을 반기지 않는다. 신선식품 특성상 국내산 계란을 선호하는 탓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수입산을 쓸 정도로 물량이 부족하진 않다”며 “취급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