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앞두고 식탁 물가가 비상이다. 채소부터 과일과 축산물까지 줄줄이 가격이 올랐다.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팍팍해진 가계 살림살이에 물가가 서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어떻게 하면 설 차례상을 준비하는 주부의 근심을 덜 수 있을까. 최근 밥상 물가 동향과 인상 이유를 짚어보고 설 식탁 물가를 미리 들여다봤다.
“조상님 올 차례상에서 ‘이것’은 뺍니다”
#. 주부 김모씨는 올해 설 차례상에 배와 사과 등 전통적인 과일 대신 바나나 한 송이를 올릴지 고민이다. 설을 앞두고 과일 가격이 너무 올라서다. 가장 많이 찾는 나주배의 경우 지난해 개화기 저온으로 인한 착과 불량에 이어 수십일 동안 이어진 장마와 잇단 태풍 탓에 생산량 자체가 급감하는 악재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설 명절을 앞두고 나주 현지 공판장에서 판매하는 배 가격이 곱절 이상 급등했다. 김씨는 “조상님께 외래 과일을 올리는 게 찜찜하지만 가족이 잘 먹지도 않는 과일을 비싸게 살 필요 있겠나”라고 말했다.
설을 앞두고 밥상 물가가 비상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여름부터 이어진 이상 기후에 농산물 가격이 치솟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닭과 계란을 중심으로 축산물 가격도 고공행진이다. 명절을 앞두고 주요 성수품의 가격이 더 오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이 다가올수록 서민의 한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계란 한판 1만원… 장보기가 무섭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밥상 물가가 전방위로 올랐다. 시금치·애호박·양파 등 농산물 가격뿐 아니라 소고기·닭고기·계란 등 축산물까지 전달 대비 두자릿수 상승폭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일 기준 시금치 1㎏ 소매가격은 7717원으로 한 달 전(5839원)에 비해 24.3% 상승했다. 배추 1포기 소매가격은 같은 기간 2897원에서 3401원으로 17.3% 올랐다. 애호박 1개 소매가격 역시 이 기간 1735원에서 2589원으로 32.9%나 뛰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같은 날 양파 1㎏ 소매가격은 3313원으로 한 달 전(2437원)보다 26.4% 증가했다. 1년 전(1727원)과 비교하면 47.8% 급등한 수준이다. 대파 1㎏ 가격은 5501원으로 한 달 전에 비해 35.7%, 54.6% 올랐다.
과일도 마찬가지다. 사과(부사·10개) 소매가격은 3만4080원으로 한 달 전과 1년 전에 비해 각각 18.1%, 42.1% 올랐다. 배(신고·10개) 소매가격은 4만9802원으로 18.8%, 39.3% 뛰었다.
이처럼 농산물 가격이 일제히 치솟은 건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이상 기후 영향이다. 지난해 여름 사상 최장 기간 장마와 잇따른 태풍으로 과일 출하량이 대폭 줄었다. 올겨울 들어선 한파와 폭설로 농작물 생육이 부진한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집밥 수요가 증가한 영향도 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등 축산물이 대표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에 따르면 한우와 삼겹살 가격은 지난해 5월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크게 오른 뒤 아직까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AI 확산에 따른 살처분과 일시이동중지명령으로 가금산물(고기·계란·부산물)도 뛰었다. 지난해 11월 국내 가금농장에서 AI가 처음 발생한 이후 지난 1일까지 1309만7000마리가 살처분됐다.
알을 낳는 산란계가 살처분되면서 계란 가격은 ‘금값’이 됐다. aT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계란(특란) 30개 소매가격은 7432원으로 1년 전(5268원)보다 29.1% 올랐다. 한 달 전과 비교해도 20.4% 상승했다. 마트와 시장에선 계란 한판 가격이 1만원을 웃돈다.
◆물가 고공행진… 설 차례상 어쩌나
밥상 물가가 급등하면서 설 차례상 비용 부담도 커졌다. 올 설 차례상 차림 비용은 지난해보다 10% 이상 더 들 것이란 분석이다. aT가 설 성수품 28개 품목에 대해 전국 17개 전통시장과 27개 대형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전통시장 차례상 구입 비용은 26만3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14.0% 올랐다. 대형마트 구입비용은 36만3000원으로 같은 기간 14.1% 상승했다.
한국물가협회에서도 올 설 차례상 비용은 지난해 설보다 11.0% 늘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인천·부산·대구·광주·대전 등 전국 6대 도시 전통시장 8곳에서 차례용품 29개 품목 가격을 조사한 결과 비용은 23만3750원으로 집계됐다. 조사 품목의 전체의 75%인 21개 품목 가격이 상승했다.
물가협회는 “코로나19 사태로 집밥 수요가 늘고 있는 가운데 작황 부진·기상 악화·가축 전염병 등으로 차례 용품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설 차례 비용 부담은 다소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이 임박할수록 제수용 수요가 증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례상 비용은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정부는 설을 앞두고 농축산물 수급 안정 대책을 내놨지만 소비자가 체감할 수준일지는 미지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배추·무·사과·배·소고기·닭고기·돼지고기·계란·밤·대추 등 10대 성수품의 공급 물량을 농협 및 생산자 단체와 유통업계를 통해 평시 대비 1.4배 확대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사과와 배는 평시 대비 공급량이 각각 206%, 186% 늘어난다. 축산물 공급량도 127% 증가한다.
수급 차질을 빚고 있는 계란의 경우 수입산 공급 물량을 늘린다. 정부는 ‘할당관세 규정 개정안’을 의결해 6월30일까지 계란류 8개 품목 총 5만톤에 대해 관세를 0%로 인하키로 했다. 통상 수입 계란에는 관세율 8~30%가 적용되지만 이번 조치로 관세가 면제된다.
하지만 현장 반응은 미지근하다. 국내 대형마트가 수입 계란 취급을 꺼리고 있고 소비자도 수입 계란을 반기지 않는다. 신선식품 특성상 국내산 계란을 선호하는 탓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수입산을 쓸 정도로 물량이 부족하진 않다”며 “취급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르포] 설 앞둔 전통시장·대형마트 분위기는
“이모, 다음주면 조기 가격이 오른대. 지금 들여가셔.”
1월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의 한 생선가게 사장은 손님들을 향해 “설이 다가오지 않냐”며 이같이 말했다. 설 대목을 준비하는 상인들이 목청을 높이면서 시장은 모처럼 활기가 도는 모습이었다.
반면 가게에 진열된 채소와 과일 등은 풀이 죽고 생기가 없었다. 이상 기후 때문이다. 채소는 최근 한파와 폭설로 인해 냉해를 입었다. 과일은 지난해 여름 긴 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작황이 부진했다.
시장에 나온 채소는 상태가 좋지 못한 중·하품이 많았지만 가격은 상·특품에 가까웠다. 작황 부진으로 가격이 크게 올라서다. 잎이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하품 시금치도 한 단에 2000원에 판매됐다. 작황이 좋을 때에 비하면 2배 수준이다.
파 가격 상승 폭은 더 크다. 이날 시장에서 대파는 한 단에 4500원에 판매됐다. 시장에서 만난 주부 신경숙씨(54)는 “김장철에도 파 한 단을 1000원에 샀는데 명절 물가를 감안해도 너무 비싸다”고 토로했다.
과일도 마찬가지. 차례상에 올라가는 사과와 배 가격은 한 달 전에 비해 18%, 1년 전에 비해 40% 이상 올랐다. 이날 시장에선 사과와 배를 4개에 1만원, 1개당 25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배의 경우 1개당 4000원짜리도 보였다.
계란은 평균 소매가격보다 비싸게 판매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이날 계란(특란) 30개 소매가격은 6722원이었다. 시장에선 대부분 8000원대였고 그나마 저렴한 게 7500원이었다. AI 발생으로 산란계가 살처분된 영향이다.
◆‘금계란’ 구하기도 어렵다
계란은 대형마트 가격이 전통시장에 비해 저렴했다. 같은 날 저녁 방문한 서울 은평구 이마트에선 특란 30구에 5980원짜리 가격표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계란은 볼 수 없었다. 이미 전부 팔려나갔다는 게 이마트 직원의 설명이다.
이마트 점원은 “(30구에 5980원짜리) 계란은 낮 12시에 들어오는데 금방 동이 난다”며 “미리 줄 서서 기다렸다 사가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계란을 구매하러 온 한 남성은 “가격이 오른 건 알고 있었지만 구매하기조차 어려운 줄은 몰랐다”고 했다.
해당 상품만이 아니다. 이날 이마트에선 계란 매대 전체가 텅텅 비어있었다. 저녁 7시가 안된 시각에 많은 소비자가 텅 빈 계란 매대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이 시간대에 남아 있는 계란은 10구에 5480원짜리 고가의 유정란과 구운 계란 및 반숙란뿐이었다.
다른 설 성수품 가격은 대부분 대형마트가 전통시장보다 높았다. 시금치는 한 단에 3480원으로 전통시장에 비해 1.5배 비쌌다. 고사리는 100g에 2980원으로 2배 차이를 보였다. 시장에서 4개에 1만원에 판매하던 배는 대형마트에서 3개에 1만1800원이었다.
일부 가공식품은 대형마트 가격이 더 저렴하거나 동일한 경우도 있었다. 떡국용 떡 1㎏은 대형마트에서 3380원에, 전통시장에선 5000원에 각각 판매했다. 두부 1모(수입산 콩 사용·500g) 가격은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모두 2000원으로 같았다.
장을 보는 이들의 표정은 대형마트나 전통시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채소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으며 고심하는 주부, 과일 구경하는 아이와 “못 사겠다”는 엄마, “버섯 하나가 3000원”이라며 툴툴거리는 부부까지 이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전통시장·대형마트·온라인 가격 비교해보니
코로나19 여파로 언택트(비대면)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온라인 장보기가 느는 추세다. 설 성수품을 온라인에서 구매하면 어떨까.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에서 설 차례상 구입 비용을 각각 비교해봤다.
aT가 설을 3주 앞두고 설 성수품 17개 품목에 대해 전국 17개 전통시장과 27개 대형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통시장은 11만2214원, 대형유통업체는 14만8251원 선으로 나타났다.
17개 품목은 ▲흰떡 ▲소고기 ▲두부 ▲동대 ▲북어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무 ▲다시마 ▲북어포 ▲대추 ▲밤 ▲곶감 ▲배 ▲사과 ▲약과 등으로 간소화 차례상을 기준으로 삼았다.
해당 품목을 온라인에서 최저가로 구매할 경우 약 12만8191원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품목마다 배송료가 별도로 부과된다. 각 품목별로 판매자가 달라서다. 대형마트가 운영하는 SSG닷컴이나 홈플러스 온라인몰 정도를 제외하면 온라인에서 식재료를 살 때 묶음배송이나 무료배송은 사실상 불가하다.
만일 17개 품목에 따로따로 배송비가 붙는다면 각각 2500원씩 총 4만2500원의 배송비가 추가돼 결과적으로 17만원이 넘는다. 이 점을 고려하면 최종 가격은 전통시장, 대형유통업체, 온라인 순으로 비싼 셈이다.
식재료비 치솟는데… 차례 음식 사먹는 게 나을까?
밥상 물가가 치솟다보니 올해 설에는 차례상을 직접 마련하지 않고 주문하는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된다. 명절 문화가 간소화된 데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가족·친지 모임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점도 이런 수요를 부추긴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차례 음식 주문 건수는 매년 늘고 있다. 전과 나물 등 일부 품목을 완조리 형태로 구매하는 것은 물론 차례상 음식을 통째로 구매하는 상차림 세트나 가정간편식(HMR)을 통해 준비하는 풍속도도 생겼다.
동원홈푸드가 운영하는 ‘더반찬&’은 2018년 프리미엄 차례상을 출시한 이후 명절마다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명절인 지난해 추석에는 예약 주문량이 50% 이상 증가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편의점 등 유통업계에서 선보이는 HMR도 매년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첫 비대면 명절을 보냈던 지난해 추석 간편 제수용품 매출이 증가했다. 추석을 앞둔 지난해 9월17일부터 같은해 10월1일까지 보름 간 피코크 간편 제수용품 매출을 살펴보면 이마트는 전년대비 18.4%, SSG닷컴은 58.5%으로 높은 매출 신장률을 보였다.
올해 설에도 이런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비대면 명절에 많은 가족이 모이지 못하는 만큼 일손이 부족해 손이 많이 가는 차례 음식을 준비하기 어려워진 까닭이다. 이와 더불어 명절 음식에 많이 사용되는 계란과 양파, 소고기 등의 신선식품 가격이 최근 상승한 탓에 재료를 개별 구매해 만들기 보다는 간편 제수용품을 구하려는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본격적인 제수용품 구매 기간 전임에도 이런 경향은 나타나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지난달 26일~지난 1일) 피코크 제수용품 매출은 전년 대비 20%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추세대로라면 본격적인 제수용품 구매 시기인 이번 주말부터는 상승폭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분석된다.
가격은 어떨까. 제수음식과 과일 등 16종으로 구성된 ‘더반찬&’의 프리미엄 차례상은 25만원. 구매 비용으로만 따지면 전통시장에서 식재료를 구매해 17종의 차례 음식을 차릴 때보다 13만원가량 비싸다. 물론 손수 음식을 만드는 정성과 노동력은 가격과 별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