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의 한 알뜰주유소는 ℓ당 1628원의 가격으로 휘발유를 판매하고 있다. 인근 일반 주유소들은 이와 비슷하거나 80원 높게 가격을 책정했다. 반면 이 주유소에서 5km 떨어진 일반 주유소들은 ℓ당 2269~2428원에 판매하며 서울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주유소를 운영하는 A씨는 "휘발유 가격은 국제유가가 아닌 옆 주유소가 결정하고 있다"며 "특히 옆 주유소가 알뜰주유소이면 적자를 봐도 판매가격을 올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기름값을 내리겠다며 2011년 도입한 알뜰주유소를 놓고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대형 정유사의 독과점 체제에서 벗어나 석유 유통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가격을 낮춘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불공정한 경쟁을 유발해 결국 민간 주유소가 구석으로 내몰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전국 주유소는 1만1290곳으로 지난해 말보다 109곳 줄었다. 2011년만 해도 전국 주유소는 1만2901곳에 달했지만 이후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4월 기준 전국 알뜰주유소는 1246곳으로 2015년 1123곳보다 123곳 늘어났다.
일반 주유소업계는 알뜰주유소와의 가격 경쟁으로 경영난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알뜰주유소의 지난달 넷째주 기준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ℓ당 1522.04원으로 일반 주유소 평균 판매가격인 1550.88원보다 29원 저렴했다.
공기업인 석유공사는 정유사와 2년 단위 계약을 맺고 최저가 입찰을 통해 대규모로 석유제품을 공급받아 알뜰주유소에 나눠주는 만큼 알뜰주유소 가격은 일반 주유소 대비 저렴할 수밖에 없다.
도입 당시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한다는 비판이 존재했으나 판매 마진이 높아 불만이 적었다. 국내 정유4사가 독과점하던 주유소 시장에 경쟁을 촉진하고 심리적·수급적 요인으로 인한 가격 변동을 막을 수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일반 주유소업계의 수익이 뒷걸음친 데다 정부가 알뜰주유소에 외상거래 대금 상환 기한 연장 등 정책적 지원에 나서면서 일반 주유소업계의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국제제품 가격이 급락하자 국내 정유사들은 일제히 가동률을 줄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알뜰주유소는 석유공사로부터 낮은 가격으로 석유제품을 공급받으며 일반 주유소와 알뜰주유소가 각각 정유사와 석유공사에서 공급받는 가격은 ℓ당 100원 이상으로 벌어졌다. ℓ당 100원은 일반 주유소의 영업마진 수준이라는 게 주유소업계 설명이다.
주유소업계는 이런 불안정한 상황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정부 취지인 가격 인하 효과는 발생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알뜰주유소는 서울 등보다 지방에 몰려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전 국민이 가격 인하 효과를 받게 하려면 주유소 전체를 알뜰주유소로 전환하거나 고시가격제를 다시 시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석유유통협회 관계자는 "관이 시장에 개입했다는 점도 문제지만 알뜰주유소가 워낙 저가로 석유제품을 공급받아 경쟁 자체가 안 된다"며 "알뜰주유소가 몰려있는 지방의 일반 주유소들은 수익 없이 운영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일부에서는 최근 에너지 전환 시기를 맞은 만큼 알뜰주유소 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를 고려하면 주유소는 8000개 내외가 적당한 수준이지만 현재 1만곳이 넘으며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며 "여기에 오랫동안 가격경쟁이 이어지다 보니 일반 주유소들의 경영 환경이 악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료에너지가 다변화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새로운 정책 모색도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