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연주자 박순아(국립극장)© 뉴스1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연주자는 자신을 '어디에도 없는 사람', '평생 정체성을 고민한 사람'이라고 했다. 주변에서는 '얽매이지 않는 사람', '경계에 선 사람'이라고 말했다. 조선 국적의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나 북한에서 가야금을 공부하고 지금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가야금 연주자 박순아(53) 이야기다.
오는 14일 국립극장의 '여우락(樂) 페스티벌' 무대에서 '찬: 찬란하길 바라며'를 공연하는 그를 최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여우락은 우리 전통 음악을 다른 장르와 접목해 만든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는 음악축제로 올해 12회를 맞았다.

박순아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영혼들에 건네는 대화"라고 공연을 소개했다. 시작은 2018년 찾았던 광주비엔날레였다. 희생자들을 기리는 국군광주병원 전시를 보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위해서도 음악을 할 수 있구나"를 되새긴 그는 당시 떠올린 소리로 앨범 '찬: 찬란하길 바라며'를 만들었고 이를 무대로 올린다.


"허물어진 병원인데 신발 하나가 툭 놓여있거나 못이 박힌 나무가 있었어요. 알고 보니 전시작품이었죠. '나는 작품이다'라고 있는 게 아니라서 더더욱 존재감이 와닿았어요. 무작위로 움직이는 탁구공도 지나간 시간이나 눈에 안 보이는 존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요. 떠도는 영혼들이 아직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어요."

그가 즉흥적으로 만들어 현장에서 녹음한 음악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혼을 달래는 의미가 담겨있다. 가야금으로 전하는 '소리굿'인 셈이다. "외국인 작가들의 전시를 보면서 나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피해자들을 대신해서 뭔가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잊지 말자는 거죠."

그가 '보이지 않는 존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방인처럼 살아온 지난 시간의 영향이 있다. 일본에서는 재일교포로서 특별영주권을 받아 생활했고, 가야금을 배우기 위해 2005년 한국에 와서도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까지 10년이 넘게 소요됐다. 그는 "선거권도 없었다"며 "(한국, 일본) 어디에도 없었다. 그냥 난민이었다"고 말했다.


가야금을 처음 제대로 배운 곳은 북한이다. 일본에서 조총련계 민족학교에 다닌 그는 우연히 시작한 가야금을 제대로 배워보자며 북한 예술가양성기관인 국립평양음악무용대학으로 4년간 유학을 다녀왔다. 일본에서 금강산가극단으로 활동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또 가야금을 배웠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남북의 경계에 서 있는 연주자로 언급된다.

이는 이번 공연뿐만 아니라 그가 하는 음악 전반을 관통하는 정서이기도 하다. "정체성에 대해 항상 고민했다"는 그는 음악에 대해서도 "소리 자체가 가진 정체성을 찾는 데 집착한다는 점이 다른 연주자들과 다른 부분"이라며 "같은 소리라도 만 가지의 음색을 낼 수도 있는 것과 한 가지밖에 못 내는 건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의 가야금 음악은 복잡하지 않고, 마치 선율악기처럼 연주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에게도 "멜로디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노래 부르듯 연주해달라"고 주문한다. 북한 가야금 연주곡을 선보인 지난 공연 '노쓰코리아 가야금'은 이례적으로 재공연까지했다.

"사회적으로 보면 어디에서도 떳떳하지 못한 입장이었잖아요. 나이가 들면서 남은 인생 무엇을 위해서 음악을 해야 할까 생각해보니 의미있는 음악을 하고 싶더라구요. 국군광주병원뿐 아니라 어디에도 아픔이 있어요. 그런 아픔을 공유하는 음악을 해보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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