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성소수자 생활체육대회'를 추진하던 단체의 체육관 대관 신청을 '민원'을 이유로 취소해 논란이 됐던 지역 시설관리공단이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사전에 인권 침해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들었음에도 행사 취소를 강행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확인됐다.
22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민사5단독 공성봉 판사는 지난 12일 퀴어여성네트워크 활동가들이 동대문구청과 동대문구시설관리공단을 대상으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기각하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공 판사는 "원고 단체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원고 단체 주장의 손해 발생 사실을 단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면서도 대관이 완료된 행사를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퀴어여성네트워크는 2017년 동대문구체육관에서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대관을 완료했으나 구청과 시설공단 측이 정당한 이유 없이 행사를 취소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동대문구시설공단은 2017년 10월 열릴 예정이었던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와 관련해 이를 반대하는 주민 민원이 들어오자 같은 해 9월 주최 측에 연락해 행사 장소를 옮겨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주최 측이 이를 받아들여지지 않자 시설공단은 행사 기간에 체육관 보수공사가 잡혔다는 이유로 행사 취소를 통보했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시설공단 관계자가 행사 취소 통보 이전에 인권위와 전화 상담을 했고 '인권위 조사업무와 개인의 성적 취향으로 대관을 취소한다면 차별이다'라는 답변을 들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전에 인권위 측으로부터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들었음에도 행사 취소를 강행한 것이다.
실제 행사가 취소된 이후 주최 측은 인권위에 차별 진정을 넣었고 인권위는 2019년 5월 성적지향을 이유로 행사를 취소한 것은 차별 행위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동대문구와 시설관리공단에 재발방지 대책 마련과 특별 인권교육 실시를 권고하기도 했다.
더불어 시설공단이 행사 취소 이유로 제시한 보수공사도 취소를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재판을 통해 드러났다. 퀴어여성네트워크의 대관 확정 이후에도 보수 공사는 확정되어 있지 않았는데 행사 허가 무렵 시설공단 측이 보수공사를 행사 기간과 겹치게 잡은 계획을 동대문구에 제시했고 구청이 이를 받아들여 보수공사 일정을 잡았다.
이에 대해 공 판사는 "보수공사의 일자 확정에 관한 공단과 동대문구 사이의 협의는 관련 항의 민원 이후 공단이 다방면으로 대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을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동대문구청의 경우 대관 취소 문제는 시설공단과 주최 측 사이의 문제라고 선을 그어왔지만 법원은 구청이 공단과 협의해 행사를 취소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대관 취소 당시 공단 관계자는 주최 측에 "저희는 구청의 지시를 받아서 하는 거기 때문에 그쪽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냐라는 뉘앙스의 의견을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관날 조정 요구에 "올해 행사 꽉 차" 거부도 거짓
더욱이 시설공단은 보수공사 이후로 대관일시를 조정해달라는 퀴어여성네트워크 측의 요구도 "올해는 행사가 꽉 차 있다"며 거부했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님이 확인됐다. 보수공사 이후에도 주말 예약이 차지 않은 날이 남아있었고 심지어 시설공단은 체육행사와 같은날 오전에 대관 신청을 했던 어린이집의 행사는 11월로 조정해주었다.
퀴어여성네트워크 측은 "이번 판결에서 공단의 대관 취소가 위법하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됐다"라며 그동안 동대문구청과 시설공단은 '대관 허가 취소는 반대 민원 때문이 아니라 공사 일정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이 재판을 통해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다만 퀴어여성네트워크는 "위법한 행위를 했지만 이로 인한 배상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은 차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가 그만큼 협소하고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해당 판결에 대해 면밀한 검토를 거쳐 항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동대문구 관계자는 "이 사건과 관련해 직원들을 교육하고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며 "이 사항을 엄중하고 생각하고 있고 시대의 변화에 맞게 우리도 변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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