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S는 베네수엘라의 현주소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15일 아르뚜로 힐 삔또 주한 베네수엘라 대리대사(전 베네수엘라 교통통신부 차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은 삔또 대리대사. /사진=김태욱 기자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미국이 주목하는 국가가 있다. 바로 베네수엘라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주목하는 이유는 베네수엘라의 방대한 원유 매장량(세계 1위)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해 11월 베네수엘라 제재를 이유로 금지했던 미국 정유업체 셰브런의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 재개를 허가했다. 미국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행정부와 야권의 대화 재개를 이번 조치의 이유로 내세웠다.


베네수엘라가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한 지붕 두 대통령 체제'가 4년 만에 종식됐다. 베네수엘라의 '한 지붕 두 대통령 체제'는 마두로 대통령이 지난 2018년 대선에서 연임에 성공한 직후 시작됐다. 후안 과이도 당시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2018년 대선은 부정선거"라며 임시 대통령을 자처했다. 한국을 비롯 미국 등 주요국들은 지난 2019년부터 과이도 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과이도 임시 대통령이 지휘하는 야권은 지난 2021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며 결속력을 잃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과이도 임시 대통령은 여권과 대화에 나서며 돌파구 마련에 나섰지만 불명예 퇴진을 피하지 못했다. 결국 과이도 임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0일 공식 퇴진했다.

머니S는 베네수엘라의 현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주한 베네수엘라대사관에서 아르뚜로 힐 삔또 대리대사(전 베네수엘라 교통통신부 차관)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두로 정부가 임명한 삔또 대리대사는 "미국은 내정간섭을 멈춰야 한다"며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가르침을 받은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제재를 극복해냈다"고 강조했다. 이어 "베네수엘라는 극단적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며 "오해를 풀고 싶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 저항 경제로 美 제재 극복"

아르뚜로 힐 삔또 주한 베네수엘라 대리대사는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가르침을 받은 베네수엘라는 저항 경제(resistance-economy)를 통해 미국의 제재를 이겨냈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친정부 시위대 모습. /사진=로이터

- 바이든 행정부가 셰브런의 베네수엘라산 원유 생산 재개를 허가했다. 하지만 미국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발급한 셰브런의 사업권 기간은 6개월에 불과하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제재를 부여하는 이유는?


▶미국은 지난 1920년대 베네수엘라가 원유 생산을 본격화한 이후 줄곧 베네수엘라산 원유에 대한 탐욕을 숨기지 않았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1999년 차베스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베네수엘라산 원유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국은 지난 2014년부터 베네수엘라 제재를 강화하기 시작했으나 실패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민이 제재를 이겨낼 것이란 사실을 간과했다. 차베스 전 대통령의 가르침을 물려받은 베네수엘라는 저항 경제(resistance-economy)를 통해 미국의 제재를 이겨냈다.

- 저항 경제가 성공하려면 거대한 내수시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인구는 3000만명에 불과하지 않나.

▶맞다. 하지만 저항 경제 모델에 입각해 내수시장을 활성화한 것도 사실이다. 제재의 역설이다. 3000만 베네수엘라 인구만으로는 저항 경제를 이루기 쉽지 않았지만 베네수엘라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전년 대비 대폭 완화되지 않았나. 동맹국들과 꾸준히 거래를 이어간 결과이기도 하다. 베네수엘라와 한국의 일부 기업은 작은 규모로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해산물이 주된 품목이다. 안타깝게도 양국(베네수엘라-한국)은 베네수엘라 주요 산업인 원유와 철, 알루미늄 관련 거래를 하지 않는다. 다른 주요국처럼 한국도 베네수엘라 국영기업과 거래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제3국 단체·개인 제재) 때문 아닌가.

▶그렇다. 한국의 현대건설이 대표적이다. 현대건설은 지난 2014년 베네수엘라에서 대형 정유 플랜트 공사를 따냈다. 하지만 이후 미국이 베네수엘라 제재를 강화하자 베네수엘라에서 철수했다. 안타깝다.

- 미국은 지난 2014년부터 제재를 대폭 강화했다. 이는 셰일산업 등장에 저유가가 지속돼 원유 개발 채산성이 떨어진 시기와 궤를 같이한다. 과거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공급 탄력성이 큰 셰일산업 활성화를 위해 베네수엘라산 원유 공급을 제한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셰일산업의 공급 탄력성은 베네수엘라 제재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에너지 독립'을 이루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기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셰일산업 공급 탄력성은 대 베네수엘라 제재뿐 아니라 이란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도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당신이 정의하는 미국의 '에너지 독립'은 무엇인가. 미국 텍사스에 매장된 대규모 셰일가스의 활성화인가.

▶미국이 셰일산업을 장기적인 원유 대체재로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셰일산업은) 공급 탄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신 미국은 전통 원유 시장을 통제하길 원한다. 1920년대 베네수엘라가 원유 생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당시 미국 기업이 대거 베네수엘라에 들어와 원유를 생산했다. 하지만 그 수익은 베네수엘라 국민이 아닌 미국으로 향했다. 베네수엘라는 이를 해결하고자 지난 1975년 석유산업을 국유화했다. 물론 진정한 국유화는 지난 1999년 취임한 차베스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이뤄졌다. 미국은 베네수엘라가 이룬 진정한 국유화에 불만을 품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인터뷰에서 과거 해외의 쿠데타 계획을 도왔다고 인정하지 않았나. 트럼프 행정부는 과이도를 이용해 내분을 꾀한 것이다. 미국은 과이도의 군사 봉기가 단기간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유화, 폭력 아니다… 국가의 시장 참여"

아르뚜로 힐 삔또 주한 베네수엘라 대리대사는 "국유화는 '국가의 시장 참여'로 요약된다"며 "해외에 진출한 기업은 주재국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사진=로이터

- 미국이 최근 제재를 완화했으나 국영석유기업(PDVSA)의 낙후된 시설 탓에 원유 생산 재개에 따른 공급 확대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PDVSA는 반미 국가가 즐겨 사용하는 '상표 갈이 우회 수출'도 못하는 상태다.

▶세컨더리 보이콧 때문이다. 미국은 크게 2가지로 PDVSA를 옥죈다. 첫 번째는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에 대한 제재다. 자본집약산업인 석유산업에는 치명적이다. 두 번째는 기술 통제다. 미국은 PDVSA와 계열사에 기술을 제공하는 제3자도 제재한다. 한 가지 더하자면 베네수엘라는 시장의 다변화를 꾀할 시간이 부족했다. 미국은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대량 구매했다.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차이다. 이란은 40여년 동안 시장을 다변화할 시간이 있었다.

- 파라과이를 제외한 중남미 국가의 '국유화 문화'는 반기업 정서를 부추긴다.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도 지난 2012년 (스페인 에너지 기업 렙솔이 최대주주인) 에너지 기업 YPF를 국유화하자 스페인 정부가 강하게 비판했다. 국유화가 외투 유치를 가로막는 것 아닌가.

▶국유화에 대한 오해가 있다. 국유화는 결코 폭력적이지 않다. 국유화는 '국가의 시장 참여'로 요약된다. 엑손모빌 사건이 대표적이다. 엑손모빌은 지난 2007년 베네수엘라에 설립한 자사 계열사가 국유화되자 국제상공회의소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엑손모빌이 요구한 금액은 70억달러(약 9조2000억원)였으나 법원은 베네수엘라가 엑손모빌에 7억5000만달러(약 9800억원)만 배상하면 된다고 판결했다.

-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미국 기업 켈로그를 돌연 압류해 국유화했다.

▶정확히는 켈로그가 베네수엘라에서 돌연 철수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켈로그는 미국의 제재가 무서워 갑자기 철수했다. 해당 공장에서 일하던 베네수엘라 국민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렸다. 정부는 켈로그가 철수한 공장을 국유화해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해외에 진출한 기업은 주재국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당시 국유화 과정도 국내법에 따라 평화적으로 진행했다.

"사회주의 실패? 동의 못해"

아르뚜로 힐 삔또 주한 베네수엘라 대리대사는 "사회주의가 실패한 정책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자본주의는 승자독식 구조"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 1999년 2월1일(현지시각) 대통령 취임식에서 참석자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 /사진=로이터

- 지난 2018년 한국GM의 군산공장 철수 당시 한국 정부는 국유화를 검토하지 않았다. 군산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으나 GM의 국유화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각에서 상상하기 어렵다.

▶차베스 전 대통령의 국유화 배경에는 항상 국익이 있었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하겠다. (베네수엘라 통신회사) CANTV의 국유화도 국민을 위한 결정이었다. 통신산업이 민간의 손에 남으면 지방에 거주하는 주민은 피해를 입는다. 통신기업 입장에선 인구가 적은 지방에서 사업을 영위할 이유가 없지 않나. 한국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한 국가를 존중한다. 상호존중은 마두로 정부의 핵심 가치다. 다만, 자본주의는 오늘날 부의 재분배와 기후변화 대응에 도움이 안된다.

- 사회주의는 실패한 정책 아닌가. 중국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했으며 베트남도 1980년대부터 도이모이 개혁·개방 정책을 펼쳤다. 반대로 사회주의를 고집한 북한은 국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베네수엘라의 지난해 인플레이션이 완화된 이유도 사회주의 개혁의 성과가 아닌 대다수 국민이 미국에 달러 계좌를 개설했기 때문 아닌가. 베네수엘라 국민은 식재료 구매에도 (간편결제 서비스인) 페이팔·Zelle를 통해 마트의 미국 계좌에 달러를 입금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이 아니다. 달러를 사용하는 국민은 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마두로 정부는 전 세계 다른 국가와 같이 달러 매입을 허용한다. 베네수엘라의 모든 거래는 공식적으로 볼리바르 화폐와 정부의 가상화폐인 페트로로 이뤄진다. 사회주의가 실패했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은 '이윤 극대화' 아닌가. 부의 재분배가 이뤄질 수 있나. 차베스 전 대통령은 이를 간파하고 사회주의 길을 택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승자독식 구조다. 대화와 타협의 공간을 남겨두지 않는다.

- 차베스 전 대통령의 농지개혁은 유럽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 정당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다만 차베스 전 대통령 재임 이후 베네수엘라 경제는 국제유가 변동에 종속됐다. 차베스 전 대통령의 대규모 복지 정책은 높은 유가 덕분에 실현 가능했던 것 아닌가.

▶동의하지 않는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7달러(약 9000원)이던 시절 집권해 정치 개혁을 이뤄냈다. 베네수엘라 국민 대다수가 그를 지지하는 이유는 차베스 전 대통령의 재분배 정책 때문이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농지 외에도 교육과 의료 개혁을 이뤄냈다. 맹인 개안 수술 프로그램인 '미시온 밀라그로'(기적 프로그램)가 대표적이다. 말 그대로 우리는 차베스 전 대통령을 만남으로써 눈을 떴다. 미국은 차베스의 가르침으로 계몽된 베네수엘라 국민이 미국의 제재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美, 더이상 패권국 아냐… 현실 직시해야"

사진은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왼쪽)과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사진=로이터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브라질 대통령을 시작으로 중남미에 핑크타이드(진보물결)가 다시 일고 있다. 남미의 빅3(브라질,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모두 진보 정권이 집권했다. 미국의 대 중남미 정책에 변화가 예상되는가.

▶미국은 여전히 '먼로 독트린'에 입각해 중남미를 바라본다. 제임스 먼로 전 미국 대통령이 이를 천명했을 당시에는 유럽으로부터 아메리카 대륙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강했으나 이후에는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개입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됐다. 미국은 더이상 유일한 패권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엔 러시아도 있고 중국도 있다. 아울러 중남미도 있다. 우린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여느 보통 국가처럼 정상적으로 무역과 인적 교류를 희망할 뿐이다.

- 대리대사에게 차베스 전 대통령이란.

▶차베스 전 대통령은 예나 지금이나 나의 '희망'이다. 신자유주의가 베네수엘라를 강타했을 당시 대학생이었다. 그때 수많은 베네수엘라 국민이 길거리에서 목숨을 잃는 광경을 목도했다. 그런 어려움에 빠진 조국을 일으킨 사람이 차베스 전 대통령이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나의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