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가수 현미의 별세로, 연예계가 큰 슬픔에 빠졌다. 사진은 지난 2007년 11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국내 가요사상 최초로 데뷔 50주년 기념 콘서트 'My Way'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故현미. /사진=스타뉴스

원로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의 별세 소식에 동료 가수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4일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서울 용산경찰서는 이날 오전 9시37분쯤 현미가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팬클럽 회장 A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고인의 사망에 특이점이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경찰은 생전 고인의 지병 여부와 신고자인 팬클럽 회장, 유족 등을 조사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계획이다.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현미의 두 아들은 부고를 접하고 급히 귀국길에 오르기로 했다. 고인은 현재 서울 중앙대병원에 안치돼 있으며, 두 아들이 귀국한 뒤에 빈소와 장례 절차 등을 정할 예정이다.

이자연 대한가수협회 회장은 뉴스1과 통화에서 "오늘 오전에 가장 먼저 연락을 받았다"라며 "목소리도 크시고 건강하셔서 100세 이상까지도 끄떡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운 소식에 다들 당황했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병이 있으신 건 아니었다, 어제 저녁에도 지인과 식사를 하셨다더라"라며 "왜 사망하셨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을까 싶다"라고 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비보를 듣고 정훈희 선배님과 통화를 하면서 울었다,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더라"라며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 믿는다"라고 덧붙였다.


가수 정훈희도 "갑자기 떠나셔서 너무 황망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언제쯤 언니처럼 노래할 수 있을까'라고 꿈에 젖었던 때가 있었다. 해외 가요제 나갈 때는 언니가 한복도 직접 챙겨 보내주고 조언도 해줬다"며 어린 나이 데뷔해 낯선 연예계에 적응할 수 있었던 건 모두 현미 덕분이라고 말했다.

가수 김수찬도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현미의 사진을 올리며 "항상 우리 이쁜 수찬이, 이쁜 수찬이 사셨던 현미쌤(선생님)"이라며 "무대 오르내리실 때 잡아주는 거, 밥 챙겨주는 거 수찬이밖에 없다며 항상 고맙다 하시던 현미쌤, 제대하고 꼭 다시 뵙고 싶었는데… 그곳에선 꼭 더 행복하세요, 쌤"이라고 글을 올리며 고인을 그리워했다.

현미의 조카인 가수 노사연과 배우 한상진도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노사연은 채널E 예능프로그램 녹화 도중 이모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촬영을 마치고 곧장 빈소로 향하려 했지만, 아직 빈소가 마련되지 않았고 고인의 두 아들이 미국에서 귀국한 뒤 빈소가 정해지면 함께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개인 업무 차 미국에 머물고 있는 한상진도 소식을 접하고 귀국할 계획이다.

고인은 1957년 미8군 위문 공연 무대를 통해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미8군은 1950년부터 한국에 주둔한 미국 지상군이다. 처음에는 칼춤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다. 그러다 공연 일정을 어기고 출연하지 못한 어느 가수 대신 노래하면서 가수가 됐다. 대중음악가 고(故) 이봉조는 이때부터 현미를 눈여겨보며 음악 활동을 함께 이어갔고, 두 사람은 3년간 연애한 뒤 결혼했다.

고인은 1962년 발표한 '밤안개'로 큰 인기를 누렸으며, 남편 이봉조와 콤비를 이뤄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 없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이 잇달아 히트했다. 그는 2007년 데뷔 50주년 기념공연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80년이든 90년이든 이가 확 빠질 때까지 노래할 것이다. 멋지고 떳떳하게 사라지는 게 참모습"이라고 했다.

현미는 최희준, 한명숙, 이금희, 위키리, 유주용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가수로 활약했다. 이미자, 패티김과 어깨를 나란히 한 대가수로 꼽힌다. 작곡가 겸 영화음악 감독으로 명성을 떨친 이봉조와 결혼해 두 아들을 뒀다. 첫째 아들은 가수 고니, 둘째 아들은 이영준으로 둘째 며느리는 배우 겸 가수 원준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