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게재 순서
(1) 호황 땐 '동지' 불황 땐 '남남'… 건설 vs 금융·신탁 "네 탓" 공방
(2) [르포] 공사 멈춘 강남의 주상복합… 공기 지연에 '빚더미'
(3) 중소·중견건설업체 참여 사업 10곳 중 8곳 '노예계약'
#. 시공능력 32위(2023년 기준) 신세계건설은 올 5월 대구 중구 삼덕동에서 시공한 오피스텔 '빌리브 프리미어'(63실)의 책임준공 기한을 이행하지 못했다. 약정에 따라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521억원의 원리금을 인수했다. 신세계건설은 대구 북구 칠성동에 짓고 있는 주상복합 '빌리브 루센트'(258가구)도 미분양돼 자체자금으로 사업비를 막았다. 앞으로도 추가 자금 투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코스피 상장사인 신세계건설은 회사채 신용등급 'A'에 기업어음(CP) 신용등급은 'A2'이지만 책임준공 확약서에 서명했다. 2022년 매출 1조4324억원(별도 기준)을 기록하고도 12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올 상반기엔 8392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영업손실은 418억원이나 기록했다.
#. 시공능력 19위 코오롱글로벌은 올 8월 양평덕평지구 지역주택조합에 600억원의 채무보증을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채무보증기간은 2025년 5월까지다. 회사 측은 '공동주택 신축공사 관련 책임준공 확약과 이를 미이행한 데 따라 채무인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코오롱글로벌 역시 코스피 상장사로 기업어음(CP) 신용등급 A3+를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급보증 리스크가 부각되며 책임 범위를 축소한 책임준공 형태의 계약 조항이 생겨났다. 책임준공 확약은 시공사가 PF 대출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요구받는 것으로 의무는 아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을 의무로 받아야 하는 아파트 선분양사업의 경우 보증서에 공사 포기 각서가 명시돼 책임준공과 동일한 기능을 갖지만 다세대주택(빌라)이나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공동주택과 지식산업센터(아파트형공장)·생활숙박시설(생숙)·물류센터 등은 책임준공 의무가 없다.
다만 신용이 낮은 중견·중소업체의 경우 자금을 대출해주는 금융회사들로 구성된 대주단 입장에선 대출 회수 리스크(위험)가 커 책임준공과 함께 채무인수를 요구하게 됐고 이는 사실상 지급보증과 같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시공능력 10위권 정도의 대기업에 한해 협상력이 있는 수준이다.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견·중소는 물론 신용등급이 높은 그룹사도 수주를 위해선 채무인수에 서명하는 실정이며 이들은 노예계약으로 주장한다.
비우량 건설-금융 합작품
문제는 책임준공과 함께 수반되는 '채무인수'다. 사업권을 가진 시행사나 신탁사가 무리한 계약조건을 요구해도 수주 경쟁이 치열한 건설업계에선 이를 무분별하게 수용, 지금의 사태에 이르렀다는 시각이 있다.책임준공이 이행되지 않은 경우 신탁사가 PF 대주단에 대출 원리금과 연체이자 등을 배상해야 하고 세부 계약조건에 따라 시공사가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책임준공의 강제성을 높이고자 시공사가 PF 채무인수 약정을 함께 맺는 경우가 많다. 신용이 낮은 시공사일수록 채무인수까지 약속해야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것. 심지어 신탁사가 책임준공 미이행시 손해배상 조건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세부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원금과 이자는 물론 지체상금까지 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기가 좋을 때 무분별하게 계약했다는 시각이 있지만 호황때 돈을 번 주체는 건설뿐 아니라 금융과 신탁도 마찬가지"라며 "신탁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됐고 이는 14곳의 신탁사가 생겨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이어 "계약상의 리스크를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인플레이션, 경기침체 등은 불가항력에 해당한다"면서 "공사가 중단되면 대체 시공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공기(공사기간) 연장만 인정하고 채무인수를 분담하지 않겠다는 것은 얌체 같은 행위"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대형 신탁사 한 관계자는 "시공사 주장대로 전쟁이 불가항력 요소는 맞지만 건설업체가 이 같은 상황을 미리 예견할 수 없었듯 금융회사나 신탁사도 같은 상황"이라며 "덥석 채무인수 계약에 서명해놓고 이제 와서 버티지 못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사업 참여자들이 리스크를 분담해 책임져야 하겠지만 시공사가 책임준공 의무를 부담하듯 신탁사도 프로젝트 전체를 책임져야 하고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올 5월 대주단 협약을 구성해 준공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의 공기 연장과 채무 연장 등에 협력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대부업체와 캐피털 등 비우량 금융회사들의 경우 이 같은 의지가 취약해 더욱 문제를 키우고 있다. 준공 후 부도나 공사기간 도중 부도 모두 시공사 입장에선 유사한 피해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선택할 가능성도 크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부채 상환 가능성이 있는 건설회사에 채무 유예 등의 지원을 하도록 대주단 합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법적 계약에 대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며 "비제도권인 대부업체 등은 채무 유예에 반대하거나 자기들에게 얼마를 달라는 식의 요구가 있다"고 말했다.
※용어 설명: 시공사의 책임준공 의무와 채무인수는 법률적으로 다르다. 시공사는 책임준공을 이행하지 못했을 때 시행사의 대출채권과 부수 권리를 인수하게 되고 신탁사는 대주단에 손해배상채권의 채무자가 된다. 즉 대출 약정상 대출채권의 채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신탁사의 손해배상의무도 대출채권의 원리금과 연체이자 상당액인 만큼 각 채무 액수는 같지만 본질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