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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통장 명의를 빌려준 지인이 사기 혐의로 고소당해 수사를 받게 됐더라도, 계좌가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을 명의자가 예견할 수 없었다면 피해자에 대한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A 씨가 B 씨를 상대로 낸 대여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B 씨는 30년 이상 알고 지낸 고등학교 동창인 C 씨가 자신 명의의 계좌를 주식투자용으로 쓸 수 있도록 2011년쯤부터 현금카드를 빌려주고 계좌 비밀번호를 알려 주었다.
당시 C 씨는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C 씨는 빌린 계좌를 위험성이 높은 해외선물 투자에 이용했다.
이후 B 씨는 2016년 개설한 또 다른 계좌도 C 씨에게 빌려주었다. C 씨는 이 계좌도 해외선물 투자에 이용하는 한편, A 씨 등 제3자로부터 해당 계좌로 돈을 받았다.
A 씨는 "해외선물거래에 투자하면 원금을 보장하고 매달 이자 2%를 주겠다"는 C 씨의 말에 2020년 7월 7일부터 2021년 7월 9일까지 1억 2000만 원을 보냈다.
C 씨는 이 돈도 해외선물 투자에 사용하고, A 씨가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B 씨를 사칭해 반환약정을 했다.
이후 A 씨는 C 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또 B 씨에게 자신이 송금한 금액에 대해 주위적 청구로 대여금 청구 소송을, 예비적 청구로 손해배상금 청구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모두 B 씨가 A 씨에게 60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B 씨가 C 씨에게 현금카드와 비밀번호 등을 알려 줄 경우 계좌가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으므로,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민사상 공동불법행위의 방조 책임을 지우려면 △방조 행위와 불법행위에 의한 피해자 손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하고 △이때 예견 가능성과 피해에 끼친 영향 등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면서 "형사사건은 C 씨의 소재 불명으로 현재 수사 중지(피의자중지) 상태고 달리 C 씨가 원고를 기망했다고 볼 뚜렷한 자료가 없다"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또 B 씨가 C 씨에게 오랫동안 계좌를 빌려주면서 이용 현황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B 씨가 C 씨의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계좌 대여로) 피고가 C 씨에게 대가를 받았다고 볼 만한 자료는 없고, 2021년 말까지는 C 씨가 계좌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던 것으로 보인다"며 "계좌를 통해 투자사기 등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거래가 이뤄진다는 점, 계좌가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