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과도한 압박을 받고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10대 시절 대학 입시와 20대 중반 취업 준비 과정을 치열하게 수행해야 한다. 취업 이후에는 결혼과 내 집 마련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과도한 사회적 압박에 지친 청년들은 우울과 불안의 늪에 빠지기 쉽다.
쉼 없이 달리는 청년… "쉰다는 건 뒤처지는 것"
20대 후반 직장인 김원웅(29·가명)씨는 치열한 청년의 삶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김씨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대학교 입시를 위해 하루에 4~5시간 정도만 잠을 잤다고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하루에 3~4번씩 코피를 흘릴 때도 많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실수해 평소보다 성적이 낮게 나왔음에도 전국 10~15위권 수준 대학교에 입학한 김씨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평균 학점 4점대(4.5점 만점)로 졸업했다. 취업을 위해 900점 이상의 토익 점수(990점 만점)를 확보하는 등 취업 준비에도 소홀하지 않았다.대학교 졸업과 함께 취업에 성공한 김씨는 올해 6년차 직장인이 됐다. 현재까지 쉼 없이 달려왔지만 아직 휴식은 사치라고 토로한다. 결혼을 위해 돈을 모아야 하는 탓이다. 가장 큰 문제는 집이다. 직장이 서울에 있어 수도권에 집을 마련해야 하는데 현재 소득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안정적인 근로소득을 기반으로 주식 투자 등 재테크에 성공하고 수억원 규모의 대출을 받아야 겨우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김씨는 내다보고 있다.
김씨는 "삶을 돌이켜보면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저만 그런 건 아니고 대부분의 청년이 비슷한 삶을 살아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생 때 휴학하거나 졸업 후 나만의 시간을 갖는 등 맘 편하게 쉬어볼 걸 그랬다는 미련이 최근 들어 생기긴 했지만 과거에는 심적인 여유가 없었다"며 "쉰다는 건 곧 혼자 멈춰있고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청년 정신건강 '빨간불'… 우울증·불안장애 상승세
김씨와 같이 과도한 사회적 압박 속에서 자라온 청년들은 정신건강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자신은 낙천적인 성격 덕분에 괜찮지만 주변 또래 중 일부는 사회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우울증과 불안장애 증상이 생겨 정신과 진료를 보고 있다는 게 김씨 설명이다. 김씨는 "청년 사이에서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소수에게만 발생하는 병이 아닌 것 같다"며 "대학생 시절부터 정신과를 방문해 약을 처방받는 지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청년들의 정신건강 문제는 통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15만1923명이었던 20대 우울증 환자 수는 매년 ▲17만9973명 ▲20만2002명 ▲20만4315명 ▲21만3786명 등으로 꾸준히 늘었다. 30~34세 우울증 환자 수 역시 같은 기간 ▲5만8943명 ▲7만1540명 ▲8만8704명 ▲9만9734명 ▲11만599명 등으로 증가했다. 불안장애 환자 수는 같은 기간 20대는 9만2691명에서 11만8407명으로, 30~34세는 4만5275명에서 6만8154명으로 상승했다.
사회적 관계 단절도 우려된다. 고용불안 등 복합적 위기를 겪는 청년들이 급증하면서 은둔·고립 청년이 늘고 있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국무조정실이 지난해 발표한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거의 집에만 있는 고립·은둔 청년 비율은 5.2%(임신·출산·장애 등 1.3% 제외)로 집계됐다. 고립·은둔 이유로는 취업 어려움이 32.8%로 가장 많았고 인간관계 어려움(11.1%)과 학업중단(9.7%)이 뒤를 이었다. 최근 1년 동안 번아웃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청년은 32.2%로 나타났다. 번아웃 이유 중 가장 많았던 건 진로 불안(39.1%)이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게재된 '청년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요인에 관한 연구'(고진선·최아영·홍서준)는 "청년기에는 진로 선택, 경제적인 독립을 통한 주거 문제 등 불확실성과 실패 가능성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며 "이러한 사회 구조적 특성은 청년들의 정신건강 취약성을 심화시키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년들의 심리적 고통은 불안정한 사회경제적 환경 등 구조적 요인 속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