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 인력난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대한민국 최대 뿌리산업 집적지인 안산·시흥 스마트허브(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가 'AI 대전환(AX)'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안산·시흥 스마트허브는 과거 '낡은 굴뚝 산업'의 이미지를 벗고 데이터 기반의 공정 효율화를 통해 외부 충격을 흡수하는 '제조업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AI 대전환을 현장에 도입한 업체들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며 생존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반월산단 부품업체, 데이터 관리로 불량률 0% '마법'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한 정밀 부품 제조업체는 최근 고환율 정국에서도 수익성을 방어하고 있다. 2년 전 도입한 스마트 제조 실행 시스템 덕분이다.반월산단의 한 정밀 부품 제조업체 대표는 "환율이 급등하던 시기에는 원가 계산서부터 다시 써야 했다"며 "예전 같으면 수익을 포기하거나 거래를 줄이는 선택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다르다. 공정 전반에 데이터 기반 관리 체계를 도입하면서 원가 구조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 기업은 2년 전부터 생산 라인에 스마트 제조 실행 시스템을 적용해 공정 조건과 품질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 결과 불량률이 한 자릿수에서 0%대까지 낮아졌고, 원자재 손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자동차용 너트를 생산하는 시흥의 프론텍 역시 디지털 전환(DX)을 넘어 AI 전환(AX)을 준비 중이다. 이곳의 '마이크로 팩토리' 생산 라인은 힘들고 위험한 쇳덩이 이동 작업을 자동화된 물류 시스템이 전담한다.
민수홍 프론텍 대표는 "마이크로 팩토리는 완제품 생산까지 한 번에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78년 설립된 프론텍은 자동차용 너트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디지털 전환(DX) 우수 사례로 꼽힌다. 현재 프론텍은 AI 전환(AX)을 고민하고 있다.
안산·시흥 스마트허브의 변화는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이 지역은 1970~80년대 조성된 국가산업단지가 밀집한 곳으로, 오랫동안 노후 설비와 열악한 근무 환경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특히 금속 가공, 기계, 전기전자 등 이른바 '뿌리 산업' 비중이 높아 인건비 상승과 환율 변동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경기도가 추진한 스마트 그린산단 전환 정책을 계기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경기도는 반월·시화 산단을 중심으로 중소 제조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단계별 스마트공장 구축 사업을 확대해 왔다. 자동화 설비 도입뿐 아니라 생산 데이터 수집, 품질 분석, 에너지 관리까지 포함한 통합형 시스템을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보조금과 컨설팅을 연계했다. 숙련자의 경험에 의존하던 작업이 데이터로 표준화되면서 생산 안정성이 높아졌고, 이는 환율 변동에 따른 원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력으로 이어졌다.
지자체 차원의 지원도 산단의 체질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안산시는 산단 내 주차난 해소, 교통 접근성 개선, 근로 환경 정비에 집중했다. 출퇴근 셔틀버스 확대와 편의시설 확충은 청년 인력 유입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스마트허브 내 일부 기업에서는 신규 채용 시 "산단 근무 환경이 생각보다 낫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는 기술 전환과 함께 산업단지에 대한 인식 변화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낡은 공장에서 'AI·로봇·바이오' 미래도시로…안산·시흥의 화려한 부활
지자체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안산시는 2026년을 산업 대전환의 기점으로 삼아 반월·시화 산단을 AX 실증산단으로 구축하고 있다.시는 디지털전환허브 운영을 통해 스마트 데모공장과 제조데이터센터를 갖춘 허브를 통해 중소 뿌리기업의 제조혁신을 종합 지원하며 지난 2025년 공모 선정을 통해 확보한 특화단지 국비 24억원을 투입해 안산도금단지 등 뿌리산업 특화단지의 고도화 사업을 본격화했다.
특히 시는 지난 40년간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를 기반으로 성장해 온 산업 도시의 성격을 유지하되, 산업 구조 고도화와 도시 기능 재편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안산은 제조업 집적을 통해 성장했지만, 산업단지 노후화와 인력 구조 변화, 글로벌 경쟁 심화라는 과제에 직면해 왔다. 안산시가 제시한 산업 전환 전략은 기존 산업을 대체하기보다는 기술을 접목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접근에 가깝다. 안산사이언스밸리(ASV) 경기경제자유구역 개발과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의 AX 실증산단 구축이 핵심 사업으로 제시됐다.
특히 최근 안산의 안산사이언스밸리(ASV)가 경기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며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개발 사업이 아니라, 안산의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민근 안산시장은 "로봇 도입은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역량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며 "사람과 로봇이 함께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첨단로봇 도시 안산을 실현해 기업이 찾는 산업 전환 중심지로 도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흥시는 지역 내 밀집한 뿌리기업의 기술적 자생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시흥뿌리기술지원센터를 퉁해 6대 분야 기술 혁신을 위한 시제품 생산 및 불량 분석 솔루션을 상시 제공해 경쟁력 확보 지원과 동시에 올해는 AI와 바이오 등 미래 신산업과 뿌리기술을 연계해 산업 구조를 다변화하고 있다.
시흥시는 AI(인공지능) 및 바이오 산업 융합을 통한 '대전환'을 시정 핵심 목표로 설정하고, 관련 인프라 구축과 기업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의료, 바이오를 연계한 전략의 일환으로, 궁극적으로 '한국형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는 최근 종근당이 최근 최첨단 바이오의약품 복합연구개발단지 조성을 위한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시흥지역이 AI(인공지능)와 바이오 분야 융합을 통한 대전환을 맞고 있다.
경기도 '뿌리산업 혁신 전략' 가동…친환경 산단 이미지 확산
경기도는 '뿌리산업 혁신 3개년 전략(2024~2026)'에 따라 총 958억원을 투입해 디지털 제조 혁신을 지원하고 있다. 안산·시흥의 금형 및 용접 기업을 포함한 100여 개사에 AI 기반 생산 라인과 제조 로봇 도입을 지원하며, 기업당 최대 5000만원을 투입한다.
또한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역특화 프로젝트인 '레전드 50+'를 통해 3년간 도내 뿌리기업 104개사를 대상으로 스마트 공장 고도화 및 인력·자금을 집중 지원하는 국비를 확보했다.
특히 김철진 경기도의원이 대표 발의한 '경기도 뿌리산업 진흥 조례 개정안'이 지난달 통과되면서, 뿌리산업 특화단지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법적 근거가 마련돼 정책 집행의 탄력을 받게 됐다.
특히 반월시화산단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추진 중인 스마트그린산단 정책에 따라 스마트 산단 구축, 산업인력 고도화, 에너지·환경 인프라 개선을 중심으로 구조적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스마트 산단 분야에서는 중소 제조기업을 중심으로 스마트팩토리와 공정 자동화가 확산되고 있다. 개별 공장 단위에 머물던 디지털 전환이 산단 단위 데이터 플랫폼과 연계되면서, 생산 공정의 효율성 향상과 품질 안정화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인력 정책 측면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재직자를 대상으로 한 스마트 제조·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이 확대되면서 산업현장의 기술 적응력이 높아지고 있으며, 스마트·친환경 산단 이미지 확산은 청년층의 산업단지 기피 현상 완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같은 반월산단의 사례는 전국 노후 산업단지에 스마트그린산단 정책을 확산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고 모델로 평가된다. 산업 경쟁력 강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기업 체력을 만드는 것"이라며 "스마트 제조와 수출 지원을 연계해 산단 기업들이 중장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