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저축은행의 역할을 '부동산·고금리 중심 금융'에서 벗어나 중소·중견기업과 개인사업자, 지역경제를 뒷받침하는 생산적 금융기관으로 재정립하기 위한 종합 대책을 내놨다. 금융공급 대상 확대와 영업규제 완화로 수익 기반을 넓히는 동시에 자산규모에 걸맞은 자본·건전성·지배구조 규제를 강화해 업권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저축은행중앙회장과 12개 저축은행 대표, 금융감독원 및 예금보험공사 등 유관기관, 전문가와 함께 '저축은행 건전 발전방안'을 논의했다.
이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저축은행은 부동산 PF 정상화 과정에서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며 지역·서민금융기관으로서 소임을 다해왔다"면서도 "부동산 경기 변동에 따른 부실 위험, 디지털 전환, 업권 내 양극화 등으로 이제는 생존과 성장을 위한 구조적 전환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단기 수익에 몰두하던 영업 구조에서 벗어나 실물경제와 지역사회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지역·서민금융기관으로서 역할과 정체성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방안은 ▲생산적 금융 전환 ▲영업행위 규제 합리화 ▲건전성·지배구조 규제 개선을 축으로 한다. 우선 저축은행의 금융공급 대상을 기존 서민·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까지 확대한다. 상호저축은행법상 설립 목적과 영업 대상에 중견기업을 포함시키고 영업구역 내 여신비율 산정 시에도 중견기업 여신을 인정해 기업대출 영역을 넓힌다.
개인사업자 지원도 강화된다. 개인사업자 신용대출에 대해 온투업 연계투자를 허용하고 개인사업자 대상 사잇돌대출 신설도 검토한다. 지역경제로 자금이 흘러가도록 예대율 산정체계도 손질해 수도권 대출에는 105% 가중치를, 비수도권 대출에는 95%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차등화한다.
영업행위 규제 완화도 병행된다. 저축은행의 비상장 주식 보유한도는 자기자본 기준 종전 10%에서 20%로 2배로 늘어난다. 유가증권 운용 규제를 합리화해 혁신·성장산업에 대한 금융지원 여력을 늘리겠다는 취지에서다.
일정 요건을 갖춘 대형 저축은행에 대해서는 독자적 직불·선불전자지급수단 취급을 허용하고 중·대형사의 개별 차주 신용공여 한도도 상향·차등화한다. 현행 '부대업무' 중심 체계는 은행과 동일한 고유·부수·겸영업무 체계로 전환해 법적 불확실성을 줄이고 신속한 업무 확대가 가능하도록 한다.
건전성 측면에서는 자산 5조원 이상 대형 저축은행에 대해 은행 수준의 자본비율 산정방식을 단계적으로 도입한다. 경영 건전성이 저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 선제적 자본 확충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하고 완충자본 제도를 도입해 자본이 일정 수준 미달 시 배당 등을 제한한다. 자산건전성 관리도 사후 연체관리 중심에서 미래상환능력(FLC) 기반의 사전 리스크관리 체계로 고도화한다.
이 위원장은 "생산적 금융 전환과 영업행위 규제 합리화를 위해서는 건전한 경영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며 "규모와 역할에 부합하도록 건전성·지배구조 체계를 정비해 금융시스템 전반의 안정성을 높이겠다"고 언급했다.
오화경 저축은행중앙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저축은행이 지역과 서민을 위한 금융기관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업계도 자구 노력을 강화하겠다"며 "부동산 중심 포트폴리오를 점진적으로 개선하고, 중소·중견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 역량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회의에 참석한 12개사 저축은행 대표이사들은 저축은행 규모별로 맞춤형 관리체계를 마련해 건전한 성장 경로를 제시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대형사의 경우 규모에 걸맞은 건전성·지배구조 관리체계 강화 필요성에 공감했으며 영업행위 규제 합리화 조치에 따라 포용적 금융과 생산적 금융을 보다 적극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들은 저축은행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업계가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나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지방 중소형 저축은행 대표이사들도 정부의 정책 방향에 적극 협력하고 지역 내 서민과 기업 등에 대한 자금공급 기능을 강화해 지역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한편 건실한 지역 금융기관으로 성장·발전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마무리 발언에서 "이번 저축은행 건전 발전방안은 단기적 대응책이 아니라 저축은행이 중장기적 건전성과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구조적 전환의 출발점"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저축은행이 책임성과 자금공급의 유연성을 갖추고 소비자에게 신뢰받는 금융업권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입법·제도 개선 등 과제들을 꼼꼼히 챙기고 앞으로도 업계와 유관기관, 소비자와 긴밀히 소통하며 저축은행의 건전한 발전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관련 법령과 감독규정 개정을 거쳐 2026년 하반기까지 제도 개선을 단계적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방안이 저축은행의 수익 기반 다변화와 건전성 강화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