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 없이 쟁점 법안들이 본회의에 오른 가운데 민주당은 강행 처리를, 국민의힘은 전면 필리버스터를 선언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2회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니터 앞에 '사법파괴 입법독재'라고 적힌 피켓을 붙이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돌입했다. 길게는 2월 임시국회가 종료되는 다음달 3일까지 7박8일 동안 이어진다. 사법개혁 3법과 자사주 의무 소각 법안의 처리를 가로막기 위해서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사법개혁 3법에 대해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 구하기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상장사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에 대해서도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빼았는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여야는 24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본회의를 열었다. 전날 국회 운영위원회는 당초 26일로 예정됐던 본회의 일정을 이날로 앞당겼다. 국민의힘 반대 속에 여당 주도로 의결됐다.

이날 본회의에는 강선우 의원(무소속·서울 강서구갑) 체포동의안을 비롯해 사법개혁 3법,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 전남·광주 행정통합 특별법안, 국민투표법 개정안, 지방자치법 개정안, 아동수당법 개정안 등 총 9개 안건이 올라왔다.

국민의힘은 상정되는 법안 전부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겠다고 예고했다.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쟁점 법안은 물론 비쟁점 법안까지 필리버스터 대상으로 삼아 민주당의 일방 처리를 최대한 지연시키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앞세워 상임위 단계에서 단독 처리를 반복해 왔다며 본회의 필리버스터로 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3일 "의석수가 부족한 야당은 필리버스터를 하거나 국민께 설명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은 강선우 의원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뒤 상정된 첫번째 안건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부터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민주당은 첫번째 안건에 대한 필리버스터 개시 후 24시간이 되는 다음날 오후 4시쯤 야당의 토론을 종결하고 자사주 의무 소각 법안을 표결 처리할 방침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필리버스터는 시작 24시간 이후 재적 의원 5분의3 이상 찬성으로 종결할 수 있다.

필리버스터로 계속 진행될 경우 2월 임시국회 회기 종료일인 다음달 3일까지, 최장 7박8일 동안 본회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22일 "처리할 개혁 법안이 많은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예고해 연일 본회의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야 이견이 큰 사법개혁 3법과 자사주 의무 소각 법안 등은 필리버스터와 무관하게 통과 가능성이 크다. 사진은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2회국회(임시회) 제 8차 본회의에서 상법개정안에 대한 무제한토론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상정되는 법안 가운데 국민의힘이 강하게 반발하는 안건은 사법개혁 3법이다. 사법개혁 3법은 ▲법왜곡죄 신설(형법 개정안) ▲재판소원제 도입(헌법재판소법 개정안) ▲대법관 증원(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골자로 한다.

국민의힘은 사법개혁 3법을 이재명 대통령 방탄법으로 규정하며 반대하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민주당은) 사법시스템을 조작하고 협박해 자신들의 범죄를 무죄로 만드는 것을 사법개혁이라고 주장하는 뻔뻔한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해당 법안들이 충분한 공론화와 숙의 없이 처리될 경우 사법권을 위축시켜 법치주의를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특히 법왜곡죄 신설과 관련해서 위헌 우려를 제기해 왔다.

법왜곡죄는 법관, 검사 또는 범죄수사 관련 직무자가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법령을 의도적으로 잘못 적용하거나 ▲은닉·위조된 증거를 재판·수사에 사용하는 경우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를 사용하거나 증거 없이 범죄 사실을 인정하는 경우 등을 처벌하는 형법 개정안이다. 10년 이하 징역 또는 10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했다.

다만 '부당한 목적'이라는 문구가 주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범죄 구성요건이 포괄적이어서 제도 시행 초기 정치적 외풍이나 여론에 따라 법 해석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두번째 핵심 쟁점은 자사주 의무 소각 법안이다. 이 법안은 지난 23일 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자사주 의무 소각 법안의 핵심은 자사주를 보유 자산이 아닌 환원 수단으로 규정하고 원칙적으로 소각을 의무화하는 데 있다.

현행 제도에서는 자사주 매입이 곧바로 소각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은 상법 제341조에 따라 배당가능이익 범위 내에서 자사주를 취득한 뒤 장기간 보유할 수 있다. 보유 중에는 의결권이 정지되지만 향후 처분을 통해 자금 조달이나 지분 교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개정안은 상장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할 경우 원칙적으로 1년 이내 소각하도록 했다. 기존 보유 자사주는 1년 6개월 내 소각해야 한다. 다만 임직원 보상이나 우리사주 제도 시행 등 일정한 사유가 인정되고 이사 전원이 서명·날인한 보유처분계획을 매년 주주총회에서 승인받는 경우 예외를 인정했다. 또 전기통신사업법 등에 따라 외국인 투자 제한이 있는 회사는 법령 준수를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시행일로부터 3년 이내 자기주식을 처분하도록 했다.

민주당은 자사주 소각 시 유통 주식 수가 감소해 주당순이익(EPS)이 상승하고 결과적으로 주주가치 제고 효과가 있다고 보고 법안 통과를 추진해 왔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함이다.

반면 국민의힘과 재계는 자사주가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기능하는 측면이 있는 만큼 획일적 의무화는 기업을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 노출시킬 수 있다며 반대해 왔다.

한편 사법개혁 3법과 자사주 의무 소각 법안 등은 필리버스터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24시간 뒤 필리버스터를 종결시키고 표결을 시작할 수 있는 재적 의원 5분의3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모든 안건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24시간씩 이어질 경우, 마지막으로 상정될 예정인 아동수당법 개정안은 이번 회기 내 처리되지 못한다. 2월 임시회는 3월3일 자정까지로, 마지막 안건의 경우 토론 개시 후 24시간이 도래하기 전에 회기가 종료되기 때문이다. 국회법상 이 경우 표결 절차를 밟지 못한 채 산회되며 이에 따라 해당 안건은 다음 회기에서 다시 상정될 경우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