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세계 원유 수송의 관문'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위협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했다.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로 고유가가 장기화될 경우 물가 불안 탓에 금리 인하가 어려워지고, 안전자산 선호 현상 탓에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이상으로 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타스 통신 등 외신은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각) 에브라힘 자바리 IRGC 사령관 고문이 "호르무즈 해협은 봉쇄됐다"며 "누구든 이곳을 통과하려 한다면 혁명수비대와 정규 해군이 선박을 격침(불태울 것)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직후부터 해협 봉쇄를 위협하고 있다. 다만 현재 일부 선박의 통행은 이뤄지고 있어 완전 봉쇄 상태는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6%, 액화천연가스(LNG)의 23%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해협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에 국제유가가 치솟았다. 이날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장 중 한때 배럴당 82.37달러까지 뛰며 전 거래일 대비 13% 급등했다. 종가는 6.7% 상승한 77.74달러를 기록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이란이 반격에 나서면서 지정학적 불안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포함한 걸프 지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유가 사태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2일 카타르는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인해 세계 최대 규모의 LNG 생산 시설 가동을 중단했다. 푸단대 중동연구센터의 쩌우즈창 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 통행 차질이 지속될 경우 국제 유가는 배럴당 90달러선을 상회할 것"이라며 "에너지 공급망의 마비가 글로벌 경제 전반에 유례없는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확산에 따른 유가 급등은 에너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 한국은 원유의 약 70%, LNG의 약 20%를 중동 지역에서 들여온다.
통상 국제 유가 상승분은 정유사의 공급가 조정을 거쳐 약 2~3주의 시차를 두고 국내 주유소 판매 가격에 반영된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휘발유 가격 인상도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나타난다. 주유소 가격이 오르면 가계의 실질적인 가처분소득 감소를 초래해 내수 소비 위축을 불러온다.
반면 기업의 부담은 보다 빠르게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유가는 해상 운임과 물류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원자재 조달 가격과 중간재 비용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은 "이번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상승한 유가는 물류비에 즉각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며 "물류비가 오르면 원자재 조달 가격도 함께 상승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유가 상승은 '비용 인상 물가상승'(cost‑push inflation)으로 이어진다. 유가를 기준으로 하는 연료비 연동제에 따라 전기·가스 요금 인상 압력까지 더해질 경우 물가 전반에 상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 과거 '오일쇼크'때처럼 에너지 가격을 중심으로 한 비용 인상 물가상승은 최악의 경우 물가 상승를 동반한 경기 침체인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도 있다.
물가 상승 압력이 확대되는 것은 통화정책 운용에도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 물가 불안이 지속되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해 경기 부양에 나설 여력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가 지연되면 가계 대출 차주의 이자 부담이 장기간 유지되고, 기업들도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여기에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며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될 경우 달러화 강세 현상이 나타나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위험 회피 국면에서는 금과 달러 등 안전자산 수요가 늘어나는 반면 원화 등 신흥국 통화는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보다 22.6원 오른 1462.3원에 개장한 뒤 상승 폭을 확대해 26.4원 오른 1466.1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 상승 폭이 20원을 웃돌며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시장에서는 이란 공습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웃돌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대차증권은 이날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사태의 시장 영향 점검' 보고서를 통해 "확전 우려로 인한 변동성 확대 이후 사태가 봉합된다는 기본 시나리오를 가정할 경우 원/달러 환율은 1430~1480원 범위에서 등락할 것"이라면서도 "전쟁이 장기화하는 시나리오를 전제하면 1500원 상향 돌파 시도도 예상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