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전쟁 여파로 유가와 환율 변동성이 동시에 확대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하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망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고, 원·달러 환율은 한때 1500원을 터치하며 투자자들의 공포를 자극했다. 증권가에서는 유가 100달러 돌파 여부를 핵심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향후 전개 방향을 둘러싼 낙관론과 신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중동 사태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현실화하며 유가 급등 공포가 금융시장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글로벌 해상 원유 물동량의 20~30%가 통과하는 핵심 길목이다. 이란이 이 해협의 봉쇄를 선언하면서 국제유가는 가파르게 치솟았고 원·달러 환율도 덩달아 급등했다. 시장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두 가지로 모인다. 유가가 어디까지 오를 것인지, 그리고 환율은 언제 안정을 찾을 것인지다.
유가 전망 - 100달러 돌파 여부가 분기점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주목하는 숫자는 배럴당 100달러다. 염승환 LS증권 이사는 "현재 유가 수준에서는 미 연준의 6월·12월 미 금리 인하 스케줄이 여전히 유효하다"면서도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하면 올해 미 금리 인하가 없을 수 있고 130달러까지 오르면 미 금리 인상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염 이사는 시장의 공포가 다소 과도하다고 진단했다. 그 근거로 미 연준의 핵심 물가 지표인 PCE 구조를 들었다. 그는 "PCE의 65%는 서비스, 35%는 상품인데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불과하다"며 "100칸짜리 아파트에서 에너지는 겨우 4~5칸을 차지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상승한 유가 수준이 PCE에 미치는 영향은 0.2%포인트 수준에 그친다고 분석한다. 그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는 코로나 이후 공급망 교란으로 물가가 이미 급등한 상황에서 유가까지 120달러까지 치솟았지만 지금은 미 금리 인하 기조여서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이종형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도 낙관론에 무게를 뒀다. 그는 "산유국들이 러우 전쟁 때보다 증산 여력이 있고 미국도 유가 안정 의지가 높아 유가가 85달러 이상으로 폭등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이번 주와 다음 주 쯤이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는 흐름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이란 사이에 물밑 협상 접촉이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호르무즈 해협도 주변국들이 통행시키려는 조처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손재성 한국금융연수원 겸임교수는 "트럼프의 호르무즈 호송 발언은 사실상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며 "이란이 게릴라식으로 봉쇄를 이어가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관세 발 물가 상승에 유가 급등까지 겹치면 미 금리 인상 압박이 가중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이것이 일시적일 수 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남용수 한국투자신탁운용 ETF본부장 역시 "호르무즈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가능성이 크며 주요 수입국들의 입찰 전쟁을 발생시켜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고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가 전망 자체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는 "지정학적 리스크는 애널리스트가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며 "금융시장은 전쟁 상황을 후행적으로 반영할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가 언급한 대로 4~6주 내 충돌이 마무리된다면 시장이 상당 부분 악재를 이미 반영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핵심 변수는 호르무즈 봉쇄의 지속 기간이다. 염 이사는 "이란 경제는 중국에 원유를 수출해서 번 돈으로 지탱하는 구조라 봉쇄 장기화는 이란 스스로에게도 자충수"라며 "OPEC+의 4월 증산 계획과 전 세계 전략 비축유 여력을 감안하면 고유가 장기화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만 해도 200일분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어 호르무즈 봉쇄가 6개월간 지속되더라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환율 전망 단기 불안, 연내 안정 찾나
원·달러 환율은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후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급증하면서 한때 1500원을 터치했다. 전문가들의 시각은 단기 고환율 지속과 연내 안정으로 엇갈린다.염 이사는 "한국의 2월 수출이 역대급을 기록했고 반도체 호황이 지속되고 있어 연내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이하로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외환보유고에도 이상이 없고 외화 유동성도 문제없다"며 4월 세계 채권시장 편입을 환율 안정의 추가 근거로 들었다. 이종형 센터장 역시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의지가 확고한 만큼 1500원대 이상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은 낮다"며 "유가가 러우 전쟁처럼 폭등하는 경로를 따라가지 않는 한 환율도 안정될 것"이라고 봤다.
반면 손재성 겸임교수는 "미국 국채 금리 상승과 원·달러 환율 급등이 맞물리고 있는 데다 국채 발행 물량까지 대기하고 있어 수급까지 꼬인 상황"이라며 "관세·유가 상승 압박까지 겹쳐 달러 강세는 당분간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지금 당장 가장 좋은 투자처로 국채를 꼽으며 "국채 수익률이 4%를 넘어선 만큼 물가만 안정되면 미 금리를 내려야 정부도 버티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남용수 본부장도 "중동발 공급망 불안이 지속되는 한 글로벌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확산하며 당분간 고환율이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김학균 센터장은 환율에 대해서도 "유가와 마찬가지로 지정학의 함수"라며 "금융시장은 전쟁 상황을 후행적으로 반영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시장이 장기화하지 않는다는 메인 시나리오 하에서는 지난 사흘간의 급락으로 상당한 악재가 이미 반영됐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