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원·하청 노조 간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조법 2·3조 관련 원·하청 상생 교섭절차 매뉴얼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원·하청 상생'을 내세운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노노 갈등'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정된 원청 재원을 두고 정규직과 하청 노동자 간 '제로섬' 경쟁이 불가피한 탓이다. 원청 노조의 협상력이 확대될수록 하청 노조 몫이 주는 구조로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7일 노란봉투법 시행과 관련한 '원·하청 교섭 절차 매뉴얼'을 발표했다. 원·하청 교섭을 분리 운영하는 것이 골자로 원청 사용자 책임은 확대하되 원청노조와 하청노조를 각각 별도의 교섭단위로 두는 방식이 채택됐다. 하청 노조끼리는 '교섭 창구 단일화'가 원칙이나 이해관계의 공통성이 낮을 경우 그 안에서도 교섭 단위를 분리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원청 기업은 최소 두 개 이상의 원·하청 노조와 각각 교섭해야 한다.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가 같은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면서 원·하청 노동자 간 이해충돌도 격화될 전망이다. 하청 노조가 원청과의 교섭에서 성과급 인상 등을 끌어낼 경우 같은 재원을 공유하는 원청 노동자들의 몫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0일 한전KPS가 발전설비 정비 관련 하도급업체 노동자 600명을 직접 고용하는 내용의 노정 합의서를 공개하자 정규직 노조는 즉각 반대 시위를 벌였다. 하청 노동자들과 정규직의 채용 과정이 다른 만큼 동일 임금 원칙을 적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논란이 됐던 2018년 '인국공 사태'와 유사한 갈등이 잇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하청 노조가 교섭권을 갖게 되면서 기존 기득권을 가진 원청 노조와 충돌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원청 노조는 원청 정규직 근로자 보호를 최우선 순위로 둘 수밖에 없어 두 집단이 서로 공조하거나 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이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상 앞에서 일방적인 한전KPS 직접고용 강행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일각에서는 노란봉투법으로 하청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원청 기업이 하청 노조와의 교섭 부담을 피하기 위해 하도급 규모를 축소하거나 무인·자동화 투자를 확대할 수 있어서다. 최근 제조업계에서는 생산 공정에 로봇 등 피지컬 AI 도입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노조가 있는 중소 하청업체들의 부담도 상당하다. 자사 노조가 원청과의 협상력 강화를 위해 파업에 나설 경우 생산 차질과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고 하청 노조를 의식한 원청 기업이 거래를 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청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노란봉투법이 되려 하청업체의 생존 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평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회원사 15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노사관계 전망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62.3%는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원청 기업 대상 투쟁이 증가해 산업 현장 불안이 심화할 것으로 봤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완화될 것이라는 응답은 3.3%에 그쳤다.

40년간 고착된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단순한 교섭권 확대만으로 해소되기 어렵다. 하청 노조는 내부적으로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하청 업체 수가 많고 각자 이해관계도 달라 합의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그 사이 민주노총·한국노총 등에 소속된 대기업 노조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 원청과의 협상에서도 우선권을 갖게 될 공산이 크다.

박 교수는 "원·하청 이해관계에 대한 충분한 숙의 없이 이뤄진 입법이 가장 큰 문제"라며 "기업을 향한 노조의 모든 문제 제기가 파업권을 통해 이뤄질 경우 모두가 공멸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파괴적 방식을 통해서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