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신경전이 휴전 이후에도 계속되는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 하루 만에 재봉쇄됐다. 이란은 라라크섬을 경유하는 대체 경로를 발표하는 한편 향후 통행 재개 시에도 선박 수 제한과 통행료 부과를 시행하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해협 개방에 잠시 안도했던 정유·석유화학업계는 에너지 수급·비용 등 복합적인 난관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내 선박 통제를 다시 차단하겠다고 발표하며 에너지 공급망 전반의 우려가 재확산되고 있다. 파키스탄 중재 아래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조건으로 미국과 2주 휴전에 합의한 지 하루 만이다. 이스라엘이 휴전 이후 레바논 친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해 레바논 전역을 공습한 것에 보복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내 기뢰 존재 가능성을 시사하며 대체 경로를 안내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엇갈린 반응 역시 불안감을 키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휴전과는 관계없는 별개의 교전이라는 입장을 나타냈고 JD 밴스 미국 부통령 역시 레바논은 휴전 범위 밖의 문제라고 해명했다. 여기에 백악관은 이란 측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과는 사실이 다르다며 해협을 오가는 선박 통행량이 증가했다고 주장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통제 전략이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은 휴전 기간 통행을 재개하더라도 일일 평균 10척의 통항을 허가하겠단 입장을 발표하며 해협 내 통제권을 제도화하려는 모습이다. 전쟁 이전 해협을 오가던 선박이 일일 135척이었던 걸 고려하면 기존의 완전 개방과는 큰 차이가 있단 분석이다.
해협 통행료 부과 역시 가시화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은 현지산 원유나 물자를 실은 선박은 무료 통과, 우호국 선박은 배럴당 1달러 수준의 통행료 부과, 미국·이란 이스라엘 연관 선박은 차단하는 3단계 구조로 통행료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란의 주장에 대해 합작법인 형식으로 양국이 공동 징수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비친 만큼 사실상 통행료 제도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주간의 휴전에도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정유·석유화학업계의 근심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다. 당초 휴전 이후 호르무즈 해협에 대기 중이던 유조선 7척이 약 1400만배럴 규모의 원유와 나프타를 싣고 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란의 강경 대응으로 상황은 제자리걸음이 됐다. 통행이 된다고 해도 원유 약 200만 배럴을 적재할 수 있는 초대형유조선(VLCC) 특성상 한 척당 200만달러에 달하는 통행료를 내야 해 업계 고충은 전방위적으로 커지고 있다.
버티기 작전도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단 진단이다. 국내 정유업체는 원유의 약 70%를 중동에서 수입하는 데다 석화업계도 대체로 국내 정유사 생산분이나 중동산 나프타를 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수입 경로 다변화와 정부 비축유 스와프 제도 등 다양한 노력이 동반되고 있지만 최대 수급처인 중동 내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으며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현재 업계는 공장 가동률을 최저치로 유지하며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변수가 연이어 발생하는 만큼 최선의 결정을 통해 타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정유·석화업계 입장에서는 일정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중동산 원유를 최대한 빠르게 들여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용진 단국대 교수는 "원유 부족 사태로 공장이 셧다운되면 (공장을) 재가동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든다"며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등 에너지 다변화 등도 해결책이 되기엔 부족하다"고 했다. "이란이 내건 조건이 휴전 기간에 해당하는 데다 현재 갈등이 중동과 한국 간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통행료 등의 비용을 부담하고 원유를 들여와 수급난을 해결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