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전경. / 사진=뉴시스

정부가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노동정책을 잇따라 시행하면서 재계의 시름이 깊어진다. 올들어 노란봉투법을 시작으로 포괄임금 원칙적 금지, 근로자 추정제 등 등 다양한 제도가 도입됐거나 입법을 앞두고 있어 기업의 경영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이날부터 '공짜노동 근절을 위한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도 지침'을 시행한다.


포괄임금제는 노사 합의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 법정 수당을 실제 근무 시간과 관계없이 기본급에 미리 포함해 고정액으로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법적 제도는 아니지만 연장근로가 잦거나 근무시간 산정이 어려운 사업장 등에서는 관행적인 임금 계약 방식으로 통용돼 왔다.

일부 기업이 실제 근로시간보다 더 적은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포괄임금을 오남용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정부는 원칙적 금지를 위한 법 개정에 앞서 이번 지침을 통해 '공짜노동'을 근절하기로 했다.

지침에 따라 앞으로 사업주는 임금대장과 임금명세서에 기본급과 각종 수당을 구분해 기재해야 한다. 기본급과 제 수당을 구분하지 않는 정액급제나 각종 수당을 구분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지급하는 정액수당제는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또한 노사 합의로 사전에 약정한 연장수당 등이 실제 근로시간에 따른 수당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 차액분을 지급해야 한다.


지침이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정부는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임금 체불로 간주해 처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해 12월 노사정이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 합의를 거쳐 정액수당제와 고정OT(초과근무시간) 형태는 금지하지 않기로 합의했는데 정부가 이번 지침을 통해 합의를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마련된 노사정 합의를 사실상 무력화한 것"이라며 "근로시간의 엄격한 산정이 어려워 정액수당제 활용이 불가피한 업종이나 직무가 있는데 이를 일괄적으로 금지할 경우 현장의 혼란과 법적 분쟁이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포괄임금제 오남용 금지 지침에 이어 더 큰 노동정책 도입이 예고돼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현재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플랫폼 종사자 등 그동안 노동관계법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약 870만명의 노동자를 법의 보호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근로자 추정제'를 노동절인 5월1일 전까지 도입할 방침이다.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경우' 별도의 판단 없이 일단 근로자로 보고,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을 사업주가 입증하도록 하는 제도다. 지금까지는 특수고용직과 프리랜서는 자영업자로 분류돼 임금이나 퇴직금을 청구할 때 스스로 근로자성을 입증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그 책임을 사업주에게 지우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계약 형태와 관계없이 노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으면 '일하는 사람'으로 규정해 기본적인 권리 보장과 분쟁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 제정도 5월1일까지 입법을 완료한다는 구상이다.

재계는 근로자 추정제가 도입되면 사업자가 책임져야 할 각종 보험료 등 비용이 급증하고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을 매번 입증해야 하는 부담도 커진다는 점에서 해당 제도의 도입을 우려하고 있다.

재계 단체 관계자는 "이 제도들은 사실상 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형사 책임을 지우는 법안"이라며 "일선 현장의 혼란과 법정 분쟁만을 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