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신의 스타트업스토리
[정유신의 스타트업스토리]AI 전쟁, 반도체서 전력·전력망으로 확장 중
AI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이 반도체에서 전력과 전력망으로 확장되고 있다. 아무리 많은 GPU를 확보해도 24시간 가동할 전력과 송전망이 없다면 데이터센터를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4년 415TWh에서 2030년엔 945TWh로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 한마디로 AI 전선이 전력 확보 경쟁으로 비화하고 있단 얘기다.이에 따라 최근 뜨고 있는 벤처 분야가 있다. 에너지 테크(Energy Tech)가 바로 그것. 배터리에 전기를 저장하는 ESS, 송전망의 실제 가용 용량을 실시간 산정하는 DLR(동적 송전용량 산정), AI 기반 에너지관리시스템(EMS), 가상발전소(VPP), 마이크로그리드 등이 대표적이다. 전력의 생산·저장·전송·소비 전 과정을 디지털 기술로 연결해 제한된 전력 인프라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분야다.무엇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다. BloombergNEF에 따르면 세계 ESS 신규 설치량은 2023년 45GW에서 2025년 112GW·307GWh로 불과 2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2025년 설치량은 전년보다 48% 증가했다. 스마트그리드 시장도 Fortune Business Insights에 따르면 2025년 약 610억 달러, 2034년에는 2,456억 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급성장 배경은 세 가지다. 첫째는 AI 데이터센터다. AI 연산은 막대한 전력뿐 아니라 순간적인 부하 변동까지 일으키기 때문에 단순히 발전소를 더 짓는 것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남는 전력을 저장하고 피크 시간에 방전하면 순간적인 부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둘째는 태양광·풍력 확대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전기를 시간대별로 이동시키는 저장 장치와 실시간 계통제어 기술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셋째는 송전망 건설 속도다. AI 데이터센터 수요는 급증하는데, 송전선은 인허가와 주민 반대 때문에 수년에서 10년 이상 걸리기 일쑤다. 결국 기존 전력망을 효율적으로 쓰는 기술이 현실적인 대안인 셈이다.그럼 대표기업들은 어디인가. 우선 폼 에너지(Form Energy)를 꼽는다. 최대 100시간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철-공기 배터리를 개발해, 장주기 ESS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는 벤처다. 또한 호주의 스위치딘(SwitchDin)은 가정과 기업에 흩어진 태양광·배터리 등 분산에너지 자원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통합 제어했고, 미국의 그리드유니티(GridUnity)는 발전·ESS 프로젝트의 복잡한 전력망 접속 절차를 소프트웨어로 자동화하고 있다. 특히 2023년 설립된 미국 베이스파워(Base Power)는 가정에 대용량 배터리를 설치하고 이를 전력망 안정화에 활용하는 사업모델로 급성장한 업체다. 2026년 8월 10억 달러를 추가 유치해, 기업가치 130억 달러의 데카콘 반열에 올라섰다.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전력 설비를 더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장주기 저장, 분산 전원 통합제어, 계통접속 자동화 등 새로운 기술로 기존 전력 시스템의 병목을 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AI와 에너지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도 크다. ESS는 전력 수요가 몰리는 시간대의 부담을 낮추고, 태양광·풍력의 남는 전력을 저장해 재생에너지 활용도를 높인다. 스마트그리드와 VPP는 분산된 전력자원을 실시간으로 조절해 기존 전력망의 활용도를 높인다. 결국 에너지테크는 발전소와 송전망을 무조건 늘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존 전력 시스템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하는 기술인 셈이다.물론 한계도 있다. ESS는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원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이동시키는 장치이며, DLR도 송전망 자체의 부족을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한다. 배터리 화재·수명·원재료 확보, 장주기 ESS의 높은 초기비용, 전력망 디지털화에 따른 사이버보안 위험도 남아 있다.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반도체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고 AI 데이터센터 투자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등 데이터센터 수요가 집중되는 지역에서는 전력망 확충과 계통접속이 제약요인이다. 따라서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첫째, DLR 기술을 국내 송전망에 시범 적용해 기존 선로의 여유용량을 찾아내고 계통 접속 대기를 줄여야 한다.둘째,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 간 직접 전력구매계약(PPA)이 활성화되도록 망 이용·요금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셋째, ESS·VPP의 전력시장 참여와 보상체계를 개선해 민간투자를 끌어들이고 국내 에너지테크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결국 반도체에서 확보한 우위를 전력망 병목이 갉아먹지 않도록, 제도 지연이 AI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AI 시대의 전력 패권 경쟁에서 반드시 준비해야 할 전략이란 생각이다.
[정유신의 스타트업스토리]한국 제조벤처의 승부처 '피지컬 AI'
모니터 화면 안에 있던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드디어 생산 현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소위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의 개막이다. 최근 글로벌 벤처의 뚜렷한 트렌드 중 하나는 챗봇이나 영상 생성 등 소프트웨어 중심의 AI 벤처가 로봇, 물류, 공장 자동화처럼 현장 공간을 제어하는 기술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피지컬 AI의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 규모도 2025년 기준 약 140억달러(약 21조원)에 달해, 역대급의 투자 열기를 증명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무려 70%에 육박할 정도로 급성장세다.피지컬 AI 벤처가 뜨겁게 달아오른 배경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전 세계적인 고령화와 저출생 요인이다. 이로 인해 만성적인 제조·물류 현장의 인력 부족과 인건비가 급상승하고 있는 까닭이다. 둘째, 멀티모달 AI 기술의 혁신이다. 이 때문에 거대 언어모델(LLM)을 넘어 시각·촉각·공간 데이터를 종합 처리하는 기술적 임계점을 돌파했다는 평가다. 이외에 미·중 갈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도 한몫하고 있다. 자국 내 첨단 제조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 현상이 심화되면서, 사람을 대체할 고도의 무인 자동화 수요가 필연적으로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이 시장은 미국의 피겨AI(Figure AI), 스킬드AI(Skild AI), 앱트로닉(Apptronik), 노르웨이에서 출발한 1X 등 로봇의 '뇌'에 해당하는 AI모델과 제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벤처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글로벌 로봇 스타트업 투자액은 2025년 약 260억달러로 급증했고, 2026년에는 상반기(6월 기준)에만 이미 230억달러를 넘어서며 연말까지 300억달러 돌파가 예상된다. 벤처 자금이 챗봇 중심의 생성형 AI에서 휴머노이드·산업용 로봇과 자율제어 기술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피겨AI는 2025년 9월 10억 달러 이상 유치로 기업가치 390억달러를 인정받았고, 스킬드AI도 2026년 1월 14억달러를 조달하며 기업가치가 140억달러를 넘어 데카콘 반열에 올랐다. 조사기관 마켓앤마켓은 피지컬 AI의 핵심 응용 분야인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시장이 2025년 29억달러에서 2030년엔 153억달러로 5.2배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그렇다면 한국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글로벌 벤처들이 로봇의 '뇌' 경쟁에서 앞서 있다면, 한국은 그 뇌가 힘을 발휘할 '현장 데이터와 로봇 부품' 경쟁력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한국은 세계 1위의 제조 로봇 밀도(근로자 1만 명당 로봇 1220대)를 보유해 피지컬 AI가 학습해야 할 제조 현장의 데이터 생산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평가다. 여기에 로봇 동체의 성능을 좌우하는 정밀 액추에이터(구동 모터 및 감속기)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기반 위에서 국내 피지컬 AI 스타트업 149개사 중 로봇 분야가 70개사로 47%나 되고, 2025년 피지컬 로봇 벤처투자 역시 4800억원으로 전체 벤처투자 13.6조 원의 3.5%에 달한다. 단일 분야 비중으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하지만 국내 스타트업의 현실이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대기업 중심의 폐쇄적인 제조 생태계 탓에 벤처기업의 데이터 접근이 여전히 어렵고, 기술을 개발해도 실제 공장에 적용해 검증(PoC)할 테스트베드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기술력은 있는데 이를 증명할 무대가 없는 셈이다.우리나라 피지컬 AI 벤처 육성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스타트업들은 빅테크와의 범용 로봇 전면전 대신 물류 분류, 정밀 용접, 조립, 조선 블록 생산 등 우리가 독보적인 현장 데이터를 가진 특정 공정에 특화된 '도메인 특화 AI 로봇' 모델로 글로벌 틈새시장을 먼저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정부 또한 초기 도입 비용 부담으로 망설이는 국내 기업(현재 도입률 15% 수준)을 위해 과감한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벤처들이 안심하고 활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제조 데이터 댐을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규제 걱정 없이 실전 데이터를 수집하고 시제품을 돌려볼 수 있도록 실증 특구와 규제 샌드박스를 서둘러 확대하는 것이 피지컬 AI 강국으로 가는 급선무다.로봇의 '뇌'는 실리콘밸리가 앞설 수 있어도, 그 뇌가 실제로 일할 '몸'과 '현장'은 결국 데이터와 정밀 기술이 결정한다. 한국이 이 승부처를 놓치지 않는다면, 피지컬 AI 시대의 진짜 승자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현장을 가진 나라가 될 수 있다.
[정유신의 스타트업스토리]기술과 인재를 사들이는 시대, 글로벌 M&A의 판이 바뀌고 있다
최근 글로벌 M&A 시장은 역대급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3년간(2022~2025년) 글로벌 벤처투자 금액이 연평균 -25%의 역성장을 기록한 것과는 뚜렷한 대조여서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Bain & Company에 따르면 2025년 M&A 규모는 4조 8000억 달러(6500조원)로 전년 대비 36% 급증해, 2021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를 기록했다. 건당 평균 금액도 약 9400만 달러(1300억원)로 2022년 대비 30% 이상 커지면서, 대형화 추세가 뚜렷해졌다.이번 M&A 사이클은 이전 M&A와 내용·형식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과거 M&A가 피인수 기업의 지분과 지배권을 통째로 매입하는 기업 인수 방식이라면, 최근 M&A는 기술·인력만 인수하는 방식(Acqui-hiring)이 두드러진다. 부실 자산이나 껍데기는 배제하고, 핵심 기술(IP)과 개발 엔지니어만 사들이는 거래 방식이다. 법적으로는 기업 간 자산 양수도 계약 형태를 띠지만, 핵심 인력의 고용 승계와 이적 보상금(Retention Bonus)을 계약 조건으로 묶는 패키지형 M&A다.배경은 뭔가. 첫째는 '기술 패권 경쟁에 따른 시간 압박'이다. 자체 연구개발(R&D)로는 폭발적인 기술 발전(예 : 인공지능)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자, 검증된 팀을 통째로 흡수해 시차를 없애려는 인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둘째, 유니콘의 '거품 제거'도 한 요인이다. 벤처투자 침체로 자금난에 빠진 유니콘들의 몸값이 낮아지면서(Down-valuation), 대기업들의 매수가 활발해지고 있다. 셋째, 규제당국의 독과점 규제 강화도 빼놓을 수 없다. 통째로 M&A해선 기업 결합 승인이 어려워지자, 알짜 IP와 핵심 인재 조직만을 골라 담는 전략을 택하고 있는 셈이다.지역별로는 단연 미국이 1위다. 대형 M&A의 70%를 주도하며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고, 유럽·중동·아프리카(EMEA)가 20%로 2위,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약 10% 수준이다. 미·중 갈등 속에 중국이 주춤한 사이, 미국과 유럽이 글로벌 기술과 인력을 빨아들이고 있단 얘기다.분야별로는 정보기술(IT) 및 소프트웨어 M&A(2025년 1조 달러)가 핵심이다. 가장 뜨거운 AI 외에도 최근 AI 자율화에 따른 보안 위협인 이른바 미토스 쇼크(Mythos Shock)로 급부상한 사이버 보안, 차세대 모빌리티의 두뇌인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새로운 금융 인프라로 떠오르는 블록체인과 스테이블코인 등이 핵심이다. 알파벳의 클라우드 보안 스타트업 위즈 인수(320억달러), 팔로알토 네트웍스의 사이버아크 인수(250억달러), 메타의 스케일 AI 지분투자와 인력 M&A(143억달러) 등이 단적인 예다.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첫째, 스타트업 생태계에 '새로운 회수(Exit) 방식'이 안착하고 있다. 투자자금을 IPO보다 빨리 회수할 수 있어 모험자본의 선순환을 유도한다는 평가다. 둘째, 인재와 기술의 생산적 재배치 효과다. 자금난에 몰린 우수 엔지니어들이 빅테크의 풍부한 인프라와 결합함으로써 혁신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셋째, 중견기업들의 구조 개선 효과다. 자금은 있지만 과거 수익모델에 머물러 있던 전통 중견기업들이 기술·인재 인수를 통해 고부가가치 테크기업으로 체질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같은 인력 중심 인수는 통합 후 핵심 인재의 재이탈 가능성이나, 자산 인수 형식을 빌린 독과점 규제 우회라는 부작용도 함께 안고 있어 정책당국의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앞으로도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파벳 등 빅테크들이 AI와 보안 인프라 등 인수에 연간 수백억 달러를 쏟아붓겠다고 공언한 만큼, 기술·인재 인수 M&A는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시사점은 뭔가. 그동안 국내 벤처 생태계는 지나치게 상장(IPO)이라는 좁은 통로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AI 3대 강국을 목표로 하는 우리로서는 IPO 외에 M&A를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책당국은 M&A펀드 확대, 법인세 감면, 독과점 규정의 탄력적 적용 등 M&A 활성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역시 사내 유보금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오픈 이노베이션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술혁명 시대엔 사내 R&D 중심의 오가닉(Organic) 성장만으로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유신의 스타트업스토리]디펜스 테크, 글로벌 벤처투자의 중심으로 급부상
정부 의존적인 분야로 여겨졌던 디펜스 테크(방산 기술) 분야가 최근 벤처 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다. 러-우 전쟁과 중동 분쟁, 미·중 전략경쟁이 전쟁의 양상을 급격히 바꾸고 있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 평가다.우선 성장 속도가 빨라졌다. 2025년 글로벌 디펜스 테크 시장은 벤처투자금액 기준 491억달러(67조원)로 러-우 전쟁이 시작된 2022년 대비 4배로 확대됐다. 연평균 성장률로 봐도 무려 59%로 2020년 전후의 10~15%보다 4~5배 빠른 속도다. 관련 벤처기업 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Crunchbase 등 자료에 의하면, 디펜스 테크 벤처기업 수는 2020년 약 1,500개에서 2025년 약 5,000개로 3배 이상 증가했다. AI·드론·사이버보안 분야 창업이 러-우 전쟁 이후 급증했고, 미국이 45~50%, 유럽 25~30%, 중국이 10~15%로 미국이 압도적이다.왜 디펜스 테크 분야가 급부상하고 있나. 첫째, 전쟁 방식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엔 전차·전투기·항공모함 등 대규모 재래식 무기가 중심이었다면, 이젠 AI·드론·위성·사이버보안 기술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고 있다. 실제 러-우 전쟁에서 수백만원짜리 소형 드론이 수백억 원 규모의 전차와 군함을 무력화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이는 미 국방부의 핵심 전략을 저비용 자율무기 체계로 전환시켰고, 이에 따라 AI 자율비행과 드론기술을 보유한 벤처업체에 투자자금이 몰리고 있다.둘째, 대형 방산업체만으론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통 방산기업들은 무기체계가 대형 중심이고 개발 기간도 워낙 길어서, AI와 소프트웨어 혁신 대응이 느리다. 반면 벤처 스타트업들은 AI와 데이터, 드론기술 등을 빠르게 군사 분야에 적용하고 있다. AI드론 벤처의 대명사인 안두릴(Anduril)의 자율 감시 시스템이 대표 사례다. 미 남부 국경과 군사기지 방어에 실전 배치되고 있다. 록히드마틴·보잉 같은 대형 방산업체가 독점하던 시장에 기술 스타트업들이 본격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셋째, 국가안보가 곧 산업 경쟁력인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장기화되면서, 각국은 반도체·AI뿐 아니라 드론·사이버보안 등도 국가의 핵심 인프라로 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정부 자금투입도 급증하고 있다. 예컨대 미 국방혁신 단위(DIU)의 민간 기술도입예산은 지난 5년간 연 65%의 급증세고, 유럽연합(EU)도 2021~2027년 동안 유럽방위기금(EDF)에 80억 유로(약 12조원)를 투입해 국방 첨단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어떤 국가와 기업들이 대표적인가. 현재 디펜스 테크 시장은 미국 주도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안두릴(Anduril), 팔란티어(Palantir), 쉴드AI(Shield AI) 등이 AI·드론·데이터 기술을 앞세워 급성장하고 있다. 특히 안두릴 외에 팔란티어가 관심 대상이다. 팔란티어는 군 정보분석과 전장 데이터 소프트웨어를 공급, 미군과 NATO의 핵심 AI 플랫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선 데이터 기술기업인 독일의 헬싱(Helsing), 이스라엘은 사이버 정보·감시 기술기업인 NSO Group, 중국에선 세계 드론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인 DJI가 대표적이다.유니콘은 몇 개나 되나. 동 업계의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업체는 현재 약 20개로 수백 개에 달하는 AI, 핀테크 등에 비해선 훨씬 적다. 하지만 20개의 유니콘 중 10개가 작년 한 해 동안 탄생했다는 점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대표 기업으론 안두릴이 기업가치 약 610억달러(85조원), 자율비행 드론업체인 Shield AI는 기업가치 127억달러(약 17조원), 해상·공중·지상 무인 기술을 개발한 UFORCE(10억달러 이상) 등이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배터리·드론·로봇 기술을 갖춘 우리나라도 디펜스 테크 벤처투자에 정부와 업계 모두 관심을 높여야 할 시점이란 생각이다.
[정유신의 스타트업스토리]AI 열풍, 닷컴 버블의 재현인가
최근 2~3년간 글로벌 주식시장을 지배한 핵심 키워드는 인공지능(AI)이다. 엔비디아 주가는 2022년 말 약 14달러에서 2026년 4월 약 200달러로 3년 만에 14배 이상 상승하며 시가총액 4조 9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오픈AI는 2026년 초 기업가치 8400억 달러에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고, 앤트로픽 역시 수천억 달러 수준의 평가를 받으며 시장 기대를 끌어올리고 있다.그러나 이 같은 급격한 성장 이면에서는 경고 신호도 뚜렷하다. 2025년 한 해 AI 분야에 20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투입됐지만, 수익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오픈AI는 약 12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막대한 연산 비용과 인건비로 약 90억 달러의 현금을 소진하며 대규모 적자 구조를 지속하고 있다. 매출이 증가해도 비용이 더 빠르게 늘어나는 구조가 이어지면서, 시장에서는 닷컴 버블을 떠올리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이 같은 우려는 과거와의 유사성에서 비롯된다. 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한 기대다. 인터넷이 산업 전반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이 2000년대 초 나스닥 버블을 형성했듯, 현재도 AI가 인간의 지능을 대체하고 생산성을 혁신할 것이라는 기대가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투자 기준 역시 수익성보다 미래 가능성에 기울어 있다. 과거에는 클릭 수와 방문자 수가, 지금은 모델 규모와 컴퓨팅 파워가 기업 가치를 설명하는 지표로 활용되며 적자 구조를 정당화하고 있다.반면 현재 상황은 닷컴 버블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반론도 설득력을 갖는다. 가장 큰 차이는 주도 세력이다. 당시에는 수익 기반이 취약한 벤처기업들이 시장을 이끌었지만,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과 같은 빅테크가 AI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연간 수천억 달러의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재무적 체력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에 130억 달러를 투자했고, 아마존과 구글도 앤트로픽에 각각 수십억 달러를 투입했다. 과거처럼 자금 경색으로 시장이 급격히 붕괴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기술 환경 또한 다르다. 인터넷 시대에는 인프라 구축에 시간이 필요했지만, AI는 이미 구축된 클라우드 기반 위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기업용 영역에서는 업무 효율을 개선하는 성과가 나타나며, 점진적인 수익화 가능성도 확인되고 있다.결국 AI 열풍의 향방은 하나로 수렴된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돈이다. 기술의 가능성은 이미 입증됐지만, 이를 지속 가능한 수익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기업 고객이 실제 비용을 지불할 만큼의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확산되고, 동시에 막대한 컴퓨팅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연간 수억 달러에 달하는 GPU 운영 비용을 효율적 알고리즘과 자체 칩으로 낮추지 못한다면 현재의 성장도 지속되기 어렵다. 한마디로 AI 향방은 얼마나 빠르게 '돈이 되는 산업'으로 전환되느냐가 그 운명을 결정할 거란 생각이다.
[정유신의 스타트업스토리]솔로 유니콘 시대의 개막
글로벌 창업 생태계에 심상치 않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수백 명의 엘리트가 밤새워 만들어냈던 유니콘(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사)을 이젠 극소수(10인 이하)의 창업자와 직원들만으로 달성하고 있다. 바야흐로 '솔로 유니콘(Solo Unicorn) 시대'의 개막이다. 실리콘밸리 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 단 2개에 불과했던 솔로 유니콘이 2025년엔 52개로 연평균 126%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이러한 변화의 핵심 동력은 '에이전트 AI' 기반의 생산성 혁명이다. 과거 수천 명이 감당하던 코딩, 마케팅, 고객 응대를 AI 시스템으로 대체하면서 1인당 생산성이 50~100배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 가치는 인력 규모가 아니라 보유한 AI 에이전트의 지능과 실행 속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 의견이다.어떤 분야가 활발한가. 고부가가치 지식서비스, 미디어, 이커머스, 바이오테크의 순으로 활발하다. 고부가가치 지식서비스에선 특히 법무, 회계, 세무 분야가 대표적이다. 예컨대 이전엔 하나의 소송을 위해 수주간 변호사 50명이 수만 장의 증거 자료를 분석했다면, 지금은 한 명의 창업자가 운영하는 에이전트 AI 하나로 초당 10만 장 문서를 분석하고, 승소확률 계산 및 계약서 독소 조항 적발 정확도도 90% 이상이라고 한다. 인건비·운영비를 70~80% 줄인 만큼, '솔로 유니콘 등극'이 가능해졌단 얘기다. 대표 기업으론 하비(Harvey)와 아이언클래드(Ironclad)를 꼽는다.미디어 산업에선 피카(Pika) Labs나 헤이젠(HeyGen) 같이 소수 정예로 시작해 영상 제작의 문법을 바꾼 기업들이 선두 주자다. 이들은 기획부터 촬영, 다국어 더빙과 실시간 로컬라이징까지 에이전트 AI를 활용해서, 맞춤형 콘텐츠를 전 세계에 송출하는 '1인 글로벌 스튜디오' 모델을 정착시켰다.이커머스와 바이오테크 분야도 빼놓을 수 없다. 미드저니(Midjourney)는 AI로 디자인과 마케팅을 최적화시켜, 40여 명의 직원으로 기업 가치를 13조 원으로 끌어올렸다. 인실리코 메디슨(Insilico Medicine)도 단백질 구조와 신약물질 분석과정을 AI로 자동화, 5~6년 걸리던 제약사의 임상 전 단계를 18개월 만에 돌파, 유니콘 지위(4~5조 원)를 확보했다.이들의 공통적인 성공 요인은 뭔가. 한마디로 초저비용, 빠른 의사결정, 틈새시장 확보라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클라우드와 AI 구독 서비스로 인프라를 구축해서 고정비를 최소화했고, 창업자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로 시장 변화에 대한 실시간 대응, AI활용으로 대기업 침투가 어려운 니치 마켓 장악 등이 그것이다.어떤 효과가 있을까. 솔로 유니콘의 증가는 고용 지표엔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 측면에선 대단히 긍정적이다. 막대한 투자자금이 필요 없는 만큼, 벤처캐피털들이 더 많은 벤처 기업에 분산 투자할 수 있고, 이는 연쇄 창업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솔로 유니콘의 고부가가치 서비스는 전통 제조업·서비스업의 운영 비용을 절감시켜,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는 강력한 동인이 될 수 있다.우리나라는 고령화·저성장 위험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벤처 창업과 신산업 육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런 국면에서 솔로 유니콘 육성은 경제·산업 활성화는 물론 AI 산업과의 시너지효과도 확실히 낼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단 생각이다.
[정유신의 스타트업스토리] 디지털 자산산업, 핀테크에 이어 제2의 금융 벤처로 급성장
최근 핀테크에 이어 금융 벤처의 하나로 급부상하고 있는 산업이 있다. 디지털 자산산업이 바로 그것. 우선 금융 벤처여서 그런지 성장 속도가 빠르다. 2021년 초 7800억달러였던 시장 규모(시가총액, 글로벌 기준)가 올해 초 3조3500억달러로 5년 만에 거의 5배다. 연간 성장률로는 33.8%, 특히 지난 3년간(2023~2025년)은 더 빨라서 연 59.1%의 급성장세다. 기업 수도 2021년 초 약 1만2000개에서 현재는 1만9000개에 육박한다. 특히 3~4년 전만 해도 금융·비금융의 중간 지대(Grey Zone)였지만, 유럽의 미카(MiCA, 2023년 6월) 법과 미국의 지니어스(GENIUS, 2025년 7월) 법이 제정되면서 금융 주변에서 중심부로 이동하고 있단 의견이다. 왜 이렇게 급부상하게 됐나. 무엇보다 법·제도화 영향이다. 특히 자본시장의 대표상품인 ETF와 융합한 디지털 자산 현물 ETF(예 : 비트코인, 이더리움 현물 ETF)가 승인·발행되면서, 글로벌 기관투자가 포트폴리오(약 6경원)의 편입 대상이 됐다는 점이 큰 힘이 됐다. 2024년 1월 비트코인 현물 ETF로 시작한 디지털 자산 현물 ETF(순유입 기준)는 2026년 초 2년 만에 708억달러(100조원)로 증가했다. 특히 ETF는 기관 자금이어서 금융 신산업 성장의 안전판인 '기관화'에 한몫했단 평가다. 또 하나는 미국의 지니어스 법 등에 의한 스테이블코인 파급효과다. 스테이블코인이 코인 거래뿐만 아니라 결제·송금, 무역대금 지급 등 사실상 디지털 통화로 규정되면서, 디지털 자산의 기반인 블록체인이 금융의 새로운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현재 3100억 달러(457조원), 지난 3년간 성장률 무려 연 51.3%의 급성장세. 특히 스테이블코인의 담보자산인 국채의 토큰화(약 90억달러)에 이어 주식, 채권, 실물자산(RWA) 등도 토큰화되면서, 제도권과 디지털 자산의 융합이 더욱 빨라질 거란 전망이다. 어떤 분야가 활발한가. 거래·중개, 스테이블코인 등 결제·송금, 블록체인 기술, 탈중앙 금융(DeFi) 서비스의 순으로 활발하다. 첫째로 이들 중 성장세가 가장 빠른 분야는 코인 거래·중개다. 거래· 상장 수수료, 기관 중개, 파생상품 수수료 등을 통해 실질적이면서 확실한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분야다. 디지털 자산산업 총매출의 60% 이상이라고 한다. 상장사인 코인베이스(2위)를 제외하고 비상장사인 1위 바이낸스, 3위 OKX, 4위 Bybit, 5위 업비트 모두 기업가치가 100억달러(14조원) 이상인 데카콘이다. 둘째,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결제·송금이다. 이 분야도 결제와 금융 중개 기능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한다. 대표기업은 테더와 써클. 테더는 USDT, 서클은 USDC 발행으로 확보한 담보 국채이자 및 결제 API 연계를 이용한 수익모델이다. 스테이블코인 결제·송금이 늘수록 매출이 확대되는 구조다. 현재 테더와 써클이 독점적이고, 테더는 기업가치 1000억 달러 이상인 헥타콘, 써클은 데카콘이다. 다음은 블록체인 기술이다. 과거엔 초당 7~10건 처리했지만, 지금은 초당 약 5000건 처리로 속도가 500~700배나 빨라졌다. 수수료도 건당 수 달러에서 0.01달러로 크게 하락했다. 따라서 블록체인의 위변조 방지 기능에다, 가성비까지 대폭 개선됐기 때문에 기존 금융 인프라를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솔라나와 폴리곤이 대표적이다. 이외에 유니스왑, 아베가 대표하는 탈중앙 금융 서비스도 있다. 블록체인상에서 대출, 예치, 스왑 기반 이자 수익과 프로토콜 수수료가 수익모델이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가. 거래·중개는 글로벌 톱 수준일 정도로 활발하지만, 다른 분야는 법·제도화 지연 등으로 활성화되지 못한 상태다. 최근 토큰 증권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만큼, 디지털 자산 기본법 및 스테이블코인 입법화도 글로벌 추세에 맞게 빠르게 진행되길 기대해 본다.
[정유신의 스타트업스토리] 베이징·상하이·선전·항저우, 중국 벤처 혁신을 움직이는 4각형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중국 벤처는 베이징과 선전(深圳)이 주도했다. 하지만, 2020년대 중반 들어선 베이징·상하이·선전·항저우 등 4대 도시가 각자 모델로 발전하고 있고, 광저우·난징·청두가 그 뒤를 잇고 있다. 특히 베이징·상하이·선전·항저우는 서로 다른 DNA의 벤처 생태계로 '벤처 혁신의 사각형'을 형성하고 있다. 어떤 특징을 갖고 있나.소위 시장 중심의 혁신 도시라는 선전부터 살펴보자. 선전은 '아이디어가 바로 제품'이 되는 세계 유일의 제조 생태계로 유명하다. 화웨이·DJI·텐센트 같은 초거대 기업이 대표적이며, 이들로부터 분화된 수많은 벤처기업이 다시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한다. 예컨대 DJI에서 나온 인재들이 창업한 에코플로우(EcoFlow)와 밤부랩(Bambu Lab)은 선전의 '모든 부품이 한곳에 모인 하드웨어 공급망'을 십분 활용, 경쟁력 있는 시제품을 하루 만에 만들어 성공한 대표 사례다. 부품 경쟁이 가격을 낮추고, 낮은 원가에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창업을 촉발하는 선순환이 선전 혁신의 본질이다.상하이는 글로벌 자본과 기술이 교차하는 글로벌 혁신 도시다. 다국적 기업의 중국 본부가 몰려 있고, 항공·물류·인재의 국제 접근성이 가장 높다. 장쑤·저장과 연결된 장강 삼각주 경제권의 허브로, 연구개발은 상하이에 두고 생산은 인근 도시로 분산하는 효율적 생태계가 특징적이다. 이 때문에 문화와 테크의 융합이 활발해서 미호요(miHoYo), 리리스(Lilith Games), 빌리빌리(Bilibili) 같은 게임·콘텐츠 기업들이 상하이에 본부를 두고 있다. 3사 모두 상하이를 게임과 디지털 엔터테인먼트의 허브로 만든 주역들이다. 상하이는 중국식 실리콘밸리라기보다 글로벌 자본과 디지털 문화가 결합한 '중국판 뉴욕'에 가깝다는 의견이다.항저우는 알리바바의 도시이자 중국형 디지털 창업의 실험실이다. 알리바바와 앤트그룹을 중심으로 핀테크·전자상거래·스마트시티의 다양한 벤처 생태계가 긴밀히 연결돼 있다. 하지만 최근 항저우는 '포스트 알리바바시대', 소위 AI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 평가다. AI 게임체인저인 딥시크(DeepSeek), 게임사 게임사이언스(Game Science), 로봇기업인 유니트리(Unitree)는 모두 대기업이 아닌 대학·연구소와 함께 기술을 축적·성장한 유니콘들이다. 자본보다 인재, 화려함보다 연구개발을 중시하는 기풍이 항저우의 경쟁력이다. 창업비용이 낮고 연구 환경이 탄탄해서 젊은 개발자들의 실험실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선전·상하이·항저우와 달리 베이징은 중국 정부와 함께 하는 혁신의 중심이다. 칭화대, 베이징대, 중국과학원 등 최고의 대학과 연구기관이 몰려 있고, 정부의 정책 지원과 국가 R&D 자금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중관촌(中关村)과 시얼치(西二旗)에는 바이두, 레노버, 바이트댄스, 샤오미 등 굵직굵직한 기업이 자리잡고 있고,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보다, AI 알고리즘·데이터 솔루션·플랫폼 기술 등 '보이지 않는 두뇌'가 벤처기업들의 강점이다.이상 네 도시는 각기 다른 벤처의 특징과 생태계를 갖고 있다. 베이징이 전략기술을 설계하고, 상하이가 자본·인재를 연결하며, 선전이 제조·속도를 담당하고, 항저우가 소비·서비스를 확장하는 구조를 완성했다. 그 결과 중국은 '세계의 공장'을 넘어 독자적 기술 자립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앞으로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면 '속도의 선전'과 '품질의 항저우', '글로벌의 상하이'와 '정책의 베이징'을 어떻게 조화·협력하도록 하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정유신의 스타트업스토리] 벤처기업 주도형으로 성공하고 있는 중국 AI 산업정책
작년 말 딥시크(DeepSeek)의 돌풍 이후 중국 AI의 생태계 변화가 뚜렷하다. 2~3년 전만 해도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 빅테크가 AI를 주도했지만, 딥시크가 고성능·저비용의 LLM(초대형 언어모델)을 발표한 후로는 혁신 벤처기업들이 중국 AI산업의 스타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대표급 주자는 소위 'AI 타이거'. 딥시크에다 초장문(超長文) 처리가 특기인 문샷 AI, 영상·음성 변환이 전문인 즈푸 AI, 멀티모달(multimodal :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처리) 모델인 미니맥스와 오픈 소스를 제공하는 01.AI를 합친 5개 벤처기업이 그들이다. 다섯 개 업체 모두 유니콘 기업(비상장기업으로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이며, 최근 들어선 대용량의 문서나 법률·학술 등 전문 자료에 장점이 있는 문샷 AI, 홍콩 상장을 앞두고 있는 미니맥스가 특히 관심 대상이다. 시장에선 중국의 AI 산업 생태계가 이전의 '빅테크 주도형'에서 이젠 빅테크는 인프라 및 플랫폼 역할로 뒷받침하고 혁신 벤처기업이 AI 기술·서비스 개발에 앞장서는 '벤처기업 주도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견이다.중국 AI 산업이 왜 벤처 주도로 됐나.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AI 벤처 육성책을 첫 번째로 꼽는다. 이에는 AI 핵심 전략인 민관학(民官學) 모델의 성공을 위해선 빅테크보다 벤처기업 주도가 유리하다는 인식이 바닥에 깔려 있다. 벤처기업은 의사결정이 빠르고 신기술·서비스 개발의 '실험-실패-개선' 주기가 짧아 정책 및 연구 지원만 잘 이뤄지면 기술 혁신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반면, 빅테크나 대기업은 인력·기술 등 자원은 풍부하지만, 민관학 프로젝트 수행 시, 기술 개발이 기존 수익모델에 걸림돌이 된다든지, 시장의 독과점 이슈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AI 등 벤처기업 투자에 1조 위안(190조 원) 상당의 기금, AI 벤처 사업화를 위해 특허 절차 간소화, 벤처기업이 정부·대학과 실증사업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규제 특례 등을 마련하고 있다. 또 하나는 벤처기업의 오픈소스 문화다. 벤처기업은 대규모 독자 모델을 처음부터 끝까지 폐쇄적으로 개발하는 빅테크·대기업과 달리, 이미 오픈된 모델과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또 이들을 개방, 다른 벤처기업 및 연구자들과 공유한다. 현재 중국 AI 산업은 모델과 데이터의 공유·융합을 통해 급속한 혁신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성과를 개방·공유하는 벤처기업들이 그만큼 중국 AI의 주역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어떤 효과가 나타나고 있나. 우선 딥시크, 문샷 AI 등에서 보듯이 해외 의존도가 높던 AI 모델의 중국 내 자급률을 높이는 효과다. UBS는 중국의 AI 연산 자급률은 2024년 33%에서 2029년엔 90%, 모건스탠리는 중국의 AI GPU 자급률이 2024년 34%에서 2027년엔 82%까지 상승할 거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산 AI 칩을 생산하는 화웨이, Ascend 등에도 도움이 되는 건 물론이다. 둘째, 빅테크는 리스크관리, 기존 사업 이해관계, 내부 승인 절차 등 때문에 산업별·고객별 대응이 느린 반면, 벤처기업은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해 신속하게 솔루션을 마련할 수 있다. 또한 수익성이 낮아 빅테크·대기업이 외면하는 소규모 틈새시장(Niche market)도 적극 공략할 수 있어서, 그만큼 다양한 산업 및 수익모델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아무튼 이러한 중국의 '벤처 주도의 AI 생태계 변화'는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AI 100조 원 펀드' 정책 관점에서도 곱씹어볼 만한 시사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한·중 여건은 다르지만, AI의 발 빠른 기술 혁신과 다양한 산업으로의 빠른 확산을 위해선 소수의 대기업·빅테크 주도가 아닌 기민한 벤처기업들의 개방형 참여와 주도가 필수적이지 않을까.
[정유신의 스타트업스토리] 딥테크, 보다 적극적인 민관학 협력과 투자 기대
최근 글로벌 벤처시장에선 딥테크(Deep Tech)가 화두 중 하나다. 딥테크란 첨단 과학을 바탕으로 한 AI, 바이오테크, 양자컴퓨팅, 로보틱스, 우주기술 등 기존 기술보다 훨씬 혁신적이고 복잡한 기술이다. 따라서 장기간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며, 기대 투자수익이 크지만, 위험도 크다는 게 시장 평가다. 그만큼 시장 실패 가능성도 꽤 있어서, 민간 외에 공공 자금이 투입되는 경우도 많다.시장현황은 어떤가. 2025년 초 기준 글로벌 딥테크시장의 시장 규모는 7527억달러(1069조원), 연평균 성장률(2020~2024년)은 25~30%의 빠른 성장세다. 특히 2024년 이후로는 AI 외에 다른 분야의 투자도 빠르게 늘어나 관심 대상이다. 2024년 기준 바이오헬스케어 투자는 딥테크 총투자액의 33%로 26.7%인 AI를 앞질렀고, 양자컴퓨팅과 우주기술의 투자 증가율은 각기 125%와 95%로 AI의 46.2%를 훨씬 웃돌았다.왜 이렇게 딥테크 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나. 전문가들은 첫째, 딥테크가 미래 성장 동력이어서, 국가 간의 기술 패권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국가 정책 우선순위가 그만큼 높단 얘기다. 미국의 경우 2022년 8월 제정된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중국은 딥테크에 대한 인재, 기술, 재정 지원을 삼각축으로 하는 삼중나선계획(三螺旋计划, Triple Helix Plan), 영국의 딥테크 지원기관인 Advanced Research and Invention Agency (ARIA) 등이 대표적이다.둘째, 딥테크는 기존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근본적 혁신으로 산업 전반에 대한 시너지효과가 크다. 따라서 성공적으로 사업화되면 독보적인 시장 선도와 여타 산업과의 다양한 수익모델 창출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맥킨지 보고서(2024년)는 지난 18년간 미국 및 유럽 딥테크펀드의 투자수익률이 연 17%로 전통적 테크펀드보다 7~8%포인트 높다고 발표한 바 있다. 셋째, 기술혁신 인프라의 확충도 빼놓을 수 없다. 클라우드, 오픈소스, 빅데이터 구축 등으로 이전엔 상상도 할 수 없던 딥테크 개발·혁신이 가능하다고 한다. 예컨대 빅데이터 분석으로 순식간에 다양한 시나리오 시뮬레이션을 처리하는 구글의 'Big Query'라든지 나사(NASA)의 '클라우드 + 빅데이터 + 딥러닝 융합 플랫폼' 등이 있다. 국가적으론 글로벌 자금과 인재 유치에 유리한 미국이 단연 1위다. 지난 5년간(2020~2024년) 글로벌 딥테크 투자의 60%를 차지했다. 벤처투자액 중 딥테크 투자 비중(2024년)도 2014년의 10%에서 20%로 두 배로 껑충 뛰었다. 2위는 중국으로 12%. AI, 반도체 등에서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투자 금액은 아직 미국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영국, 프랑스, 독일이 3~5위로 뒤를 잇고 있다.어떤 기업들이 대표적인가. 우선 AI에선 미국의 오픈 AI와 중국의 딥시크를 꼽는다. 오픈 AI와 딥시크의 누적 투자액은 각기 500억달러(70조원)와 25억달러(3조4000억원, 추정), 기업가치는 오픈 AI가 3000억달러(426조원), 딥시크는 1500억달러(213조원)로 평가된다. 우주기술의 대표 기업은 미국의 스페이스X다. 민간 우주발사체를 상용화하고 재사용 로켓기술을 혁신해서 저비용 고성능 우주선 개발에 성공했단 평가다. 기업가치는 3500억달러(501조원)이다. 이외에 미국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인 모더나, 영국의 AI기업인 옥스퍼드 나노포르 테크놀로지, 프랑스의 로보틱스기업인 이그조텍 등이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 딥테크기업이다. 또한 현재 딥테크기업 중 유니콘은 약 142개로 총 유니콘의 12%, 딥테크 데카콘(기업가치 100억달러 이상)은 16개로 총 데카콘의 33%다. 이는 딥테크일수록 기업가치의 상승가능성이 훨씬 큼을 시사한다. 우리나라도 최근 딥테크 투자가 늘곤 있지만, 딥테크 유니콘은 AI 스타트업 리벨리온 정도다. 보다 적극적인 민관학(民官學) 협력과 투자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정유신의 스타트업스토리] 변화하고 있는 '유니콘'의 글로벌 트렌드
'유니콘'은 비상장기업인데도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1조 4000억원)를 웃도니, 벤처창업자에겐 당연히 꿈의 대상이다. 그뿐 아니라 첨단 기술의 상징으로 미래 성장동력의 핵심인 데다, 단기간에 급성장하기 때문에 부가가치와 고용 창출 효과도 커서, 그만큼 국가적으로도 중요하다.따라서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탈은 물론, 국가 간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글로벌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유니콘의 특징적 트렌드를 간단히 살펴보자.첫째, 지난 3년간의 금리상승으로 벤처기업의 자금압박은 컸지만, 그럼에도 불구 유니콘은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유니콘이 처음 시작된 2013년의 유니콘 수는 43개에 불과했다. 그랬던 것이 2020년엔 586개, 2022년 963개, 2024년 말에는 무려 1,565개로 연간 38.7%의 급증세, 기업 가치로는 2013년 782억 달러(860조원)에서 2024년엔 3.8조 달러(5487조원)로 연간 12.5%의 증가세다. 둘째, 미국의 일방적 주도에서 점차 국가적으로 다양화되는 추세도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예컨대 2013~2014년만 해도 유니콘의 80% 이상이 미국일 정도로 미국 주도였다. 하지만, 2020년엔 미국 48.0%, 중국 24.3%로 중국이 양강으로 뛰어 올랐고, 2024년엔 미국 48.3%, 중국 21.3% 외에 인도가 6.9%, 이스라엘도 5.2%로 유니콘 강국에 합류하고 있다. 또한 비중이 한 자릿 수이긴 하지만, 유럽도 영국(3.0%), 독일(2.0%), 프랑스(1.8%) 등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셋째, 유니콘의 글로벌화도 눈에 띄는 추세다. 왜냐면 기업 가치를 10억 달러 이상으로 높이려면, 무엇보다 시장의 확대 특히 해외 시장 확대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 해외 시장과 연결된 글로벌 투자자의 자금 유치가 핵심 요소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인도와 같은 내수시장이 크지 않은 국가들의 경우 벤처가 유니콘이 되기 위해선 글로벌화가 필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실례를 봐도 중국과 인도의 경우는 내수와 자체 투자만으로 유니콘이 되는 경우도 30~40%나 되지만, 그 외 유니콘 수 '톱 10'에 이름을 올린 국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글로벌 시장진출과 글로벌 자금 유치로 유니콘을 탄생시키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28개), 캐나다(21개), 싱가포르(15개)의 모든 유니콘들이 이에 해당한다. 아울러 유니콘 글로벌화의 영향으로 기업 가치 100억 달러 이상인 데카콘과 1,000억 달러 이상인 헥토콘도 출현하고 있다. 데카콘은 2024년 기준 50개로 총 유니콘의 3.2%, 미국의 Stripe, 데이터브릭스 등이 대표적이며, 헥토콘은 2개로 중국의 ByteDance와 미국의 SpaceX를 꼽는다.넷째, 유니콘의 중점 섹터도 최근 2~3년 사이에 두드러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유니콘이 나타나기 시작한 2013년부터 유니콘 중 가장 많은 분야는 플랫폼 기업들이었다. 2024년 기준 유니콘 중 플랫폼 기업의 비중은 약 40%로 추정된다. 그중 기업 가치가 무려 2,25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ByteDance(틱톡), 미국의 온라인 결제 플랫폼인 Stripe(650억 달러), 미국의 온라인 협업 화이트보드 플랫폼인 Miro(175억 달러)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2020년을 전후로 코로나19가 터지고, 금리가 상승한 이후로는 딥테크(Deep Tech) 비중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예컨대 2020년만 해도 14% 내외였던 딥테크 비중이 2024년에는 25%로 11%포인트나 증가했다. 특히 인공지능의 유니콘 증가가 빨라서 2020년엔 유니콘 기업이 63개(10.7%)였으나, 2024년엔 214개(17%)까지 상승했다. 특히 2024년엔 새로 탄생한 유니콘의 45%가 인공지능 유니콘일 정도였다. 대표 기업으로는 기업가치가 1570억 달러와 600억 달러에 달하는 오픈AI와 앤트로픽이 있다. 딥테크 중 2위는 환경테크(80개)로 총 유니콘의 5.1%, 3위는 바이오테크(65개)로 4.2%다. 2020년 14개(2.8%)였다가, 2024년 14개(0.9%)로 비중이 하락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정책당국과 벤처업계의 상호협력과 분발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정유신의 스타트업스토리]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적극 검토할 필요 있어
최근 대표적 연기금의 하나인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허용 여부가 연기금과 벤처 업계의 화두다. 지난 10월 정부가 관계 장관 회의에서 '선진 벤처투자 시장도약방안'에서 신규 벤처투자 주체의 확대, 특히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허용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물론 벤처 업계의 '환영'과는 달리, 연기금 업계에선 '노후 자산을 벤처에 투자하면 위험하지 않나' 하는 분들도 여전히 많은 듯하다. 하지만, 퇴직연금을 너무 보수적으로 운용해서 그런지 수익률이 낮아, 실질 가치를 보존하지 못한다는 소리도 커지고 있다. 예컨대 물가상승률을 뺀 현재 1000만원은 20년 후에 반토막, 만약 부동산가격 상승까지 고려하면 10년 후에 이미 반토막으로 된다는 의견이다. 퇴직연금 현황부터 살펴보자. 2023년 기준 규모는 382조4000억원으로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1147조원)의 3분의 1이다. 1%만 해도 4조원 가까운 엄청난 규모다. 지난 5년간 성장률은 연평균 15%, 향후 10년간도 연 9.4%의 고성장이 예상된다고 한다. 하지만, 수익률은 높지 않다. 2023년은 5.26%로 다소 호전됐지만, 지난 5년과 10년간 연 환산 수익률은 각각 2.35%, 2.07%로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2017~2021년의 5년간 수익률을 국민연금과 비교한 분석을 보면 국민연금은 연평균 7.63%, 퇴직연금은 그의 4분의 1에 불과한 1.94%였다.그럼 벤처투자의 성과는 어떤가. 벤처펀드 기준 우리나라 벤처투자의 성과는 고위험 투자라는 인식과 달리, 벤처투자조합을 제도화한 1987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무려 연평균 8.7%였다. 이는 그동안 청산된 1107개 펀드를 전수 분석한 결과로, 특히 전체 펀드의 3분의 2가 연평균 15.7%의 수익률을 올렸다는 점에서 적절한 펀드 선택에 따라선 위험도 상당히 줄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공공성이 높은 분야(창업 초기 등)에 투자하는 한국벤처투자(주)의 모태펀드도 청산 펀드 277개를 기준시, 원금의 1.5배를 회수하고 연평균 9.0%의 수익을 실현했다. 이는 동기간 국고채금리의 약 2배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수익률이다.퇴직연금에 앞서 벤처에 투자한 연기금의 성과는 어떤가. 연기금 벤처투자가 시작된 2014년부터 2023년까지의 연평균 수익률은 국민연금 13.9%, 사학연금 10.1%, 공무원 연금 9.2%이었고, 과학기술공제회는 11.9%, 고용보험 기금은 무려 17.2%의 수익률을 실현했다고 한다. 이들 연기금의 벤처투자수익률이 벤처투자 전반의 평균 수익률보다 훨씬 높은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자금력과 신용도가 좋아서 그만큼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탈을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퇴직연금의 벤처투자는 미국, 캐나다 등 북미지역이 주도하는 모습이다. 2008년 리만 위기와 그 후 저금리 상황에서 수익률을 높이려고 부동산, 사모펀드, 벤처투자 등 대체투자를 확대한 것이 계기가 됐다.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의 공무원 퇴직연금(CalPERS)이다. 규모는 2024년 6월 5029억달러(699조원)로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1.8배. 벤처투자 규모는 2020~2023년 연평균 18억3000달러, 연금 총규모의 약 3%를 벤처투자에 할당했다. 2677억달러(372조원) 규모의 뉴욕주 공동 퇴직기금도 2023년 기준 11억달러(2.9%)를 투자하고 있다. 벤처투자가 활발하지 않았던 유럽도 최근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독일이 2023년 10억유로(약 1조4000억원)의 독일 성장 펀드를 조성했고, 프랑스의 연금준비기금(327억유로)은 2022년까지 벤처 후기단계 및 성장펀드 등에 5억유로(약 7000억원, 총기금의 1.5%)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은 더 적극적이어서, 지난 7월 2030년까지 벤처투자를 포함한 비상장 주식을 500억파운드(퇴직연금의 2~2.5% 수준)까지 늘리고,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기본펀드의 5%를 비상장 주식에 투자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이처럼 해외 퇴직연금들도 미국을 중심으로 벤처투자에 대해 적극적인 정책으로 바뀌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나라도 퇴직자 노후 자산의 보다 높은 수익률을 위해서도, 또 미래 성장동력인 벤처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퇴직연금의 벤처투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정유신의 스타트업스토리] 실리콘밸리, 어떻게 50년 이상 신성장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벤처 신산업 하면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대 이후 반도체, 인터넷, 빅테크, 유니콘과 같은 신산업과 신분야를 탄생, 성장시켰고, 최근엔 생성형 AI 급성장의 산실이 되고 있다. 물론 최근 와선 중국, 인도 등의 벤처산업 비중도 높아지곤 있지만, '벤처의 메카' 하면, 역시 실리콘밸리다. 어떻게 해서 50년 이상 신성장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실리콘밸리 생태계의 특징으로 다음 네 가지를 꼽는다.첫째, 뭐니 뭐니해도 스타트업과 같은 고위험·고수익 벤처에 적극 투자해주는 벤처캐피털 자금줄이 풍부하다는 것. 2023년 기준 미국 전체 벤처캐피털 투자액은 856억 달러(약 119조원)인데, 그중 거의 85.7%인 749억 달러(약 104조 원)가 실리콘밸리 지역에 투자됐다. 이는 전 세계 벤처캐피털 투자액의 무려 53.3%고, 미국 내에서 벤처투자 기준 2, 3위를 달리고 있는 뉴욕과 보스턴 대비로는 각각 5, 9배, 중국 전체 대비로도 약 3배일 정도로 엄청난 규모다.둘째,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 인텔과 같은 대형 글로벌기업의 스타트업 인수·합병(M&A) 매수가 많다는 점이다. 투자 회수(EXIT) 수단으로서의 M&A는 상장(IPO)까지의 장시간을 요하지 않는 이점이 있는 데다, GAFA와 같은 세계적 기업에 의한 M&A나 투자는 그 가능성만으로도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대단한 매력이다. 실제 미국 스타트업들의 투자 회수는 IPO에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90%가 M&A다. 또한 대기업뿐 아니라 유니콘으로 덩치를 키운 비상장기업들이 M&A 주체가 되는 사례도 종종 나오고 있다. 예컨대 2024년 기준 기업 가치 약 1,200억 달러의 에어비엔비(Airbnb)는 지금까지 20개 이상의 기업을 인수했다고 한다. 셋째, 특히 실리콘밸리의 장점으로 꼽히는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의 존재다. 액셀러레이터는 창업자가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을 때까지 일종의 가교역할을 하며,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자문, 멘토링, 초기투자 등을 담당한다. Crunchbase에 의하면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한 실리콘밸리 지역에는 VC의 직접 투자를 받은 초기단계 이상 스타트업 수가 2만 여개나 된다. 최근 중국 등 전 세계에서 액셀러레이터들이 늘고 있지만, 실리콘밸리와 같은 '빅샷' 성공 사례는 흔치 않다. 시장에서 손꼽는 대표선수는 Y콤비네이터, 500스타트업, 플러그앤플레이, 테크스타. 그중에서도 Y콤비네이터는 미국 액셀러레이터 평가 1위로, 에어비엔비, 도어대시, 드롭박스, 코인베이스, 레딧 등을 키워냈고, 이 5개사의 기업가치는 합계 2,354억 달러(353조원, 2023년 말 기준)이다.마지막으로 또 하나 꼽는다면, 전 세계에서 몰려들고 있는 젊은이들의 창업정신과 이를 뒷받침하는 실리콘밸리의 창업문화다. 우선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의 약 40%가 외국인 창업자이고, 대부분 스탠퍼드, 버클리대학 등의 유학 경험이 있다. 그만큼 국내외로 열린 창업문화란 얘기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창업자와 투자자 간의 프레젠테이션과 토론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공식·비공식 만남을 통한 상호 신뢰 구축,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등이 실리콘밸리를 특징짓는 단면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출생률 저하와 고령화 등으로 잠재성장률이 1%대까지 하락한 상태다. 보다 적극적인 개방으로 풍부한 해외 자금줄을 확보하고, 산학과 투자자의 열린 창업문화 등으로 제대로 된 '한국판 실리콘밸리 생태계'를 구축해보자. '창업 국가 코리아'를 맘껏 구가해보기를 기대해 본다.
[정유신의 스타트업스토리] 미 연준의 금리인하, 벤처 스타트업의 숨통 터주는 방아쇠될까
기업들은 금리상승에 민감하다. 금리가 오르면 시중 유동성이 줄어드는 데다, 기업 가치를 나타내는 주가도 할인율이 높아져서 하락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보다 먼 미래의 수익기대가 많은 벤처 스타트업은 그만큼 할인 폭이 커서 금리상승이 클수록 타격도 크다. 현재 유망하다고 손꼽히는 몇몇 산업의 일부 기업들 빼고는 자금이 꽁꽁 얼어붙어 '겨울나기'에 힘들다고 한다. 특히 창업한 지 3년 이하의 극초기 기업의 경우 절반 이상이 직원 채용 중지는 물론, 복지·출장까지 줄이며 전사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단 얘기도 있다.이런 시점에서 지난 9월 17일 미 연준(Fed)이 0.5%포인트 금리를 '빅컷' 인하했다. 벤처기업들의 자금난과 투자자의 관점을 바꿨던 시발점이 2022년 3월 미 연준의 금리인상이었다고 보면, 이번 금리인하가 우리나라의 금리인하로 연결되어 벤처기업들의 숨통을 터주고 투자자의 행동 변화를 가져올 방아쇠가 될지 관심 대상이다. 우선 가장 급한 벤처 자금난은 얼마나 해갈될까. 적어도 기대감은 커지고 있는 듯하다. 약 2년 이상 투자가 얼어붙었다가 올해 들어 투자가 기지개를 켜고 있는 시점에서의 금리인하여서, 경우에 따라선 벤처투자자들의 투자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단 의견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상황이 되려면 미 연준의 금리인하가 일회성이 아니라 추세적으로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단서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미국 물가가 불안해서 지속적인 금리인하가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지속적인 금리인하가 가능하다는 데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왜냐하면 미국의 높은 고용수준의 일등 공신인 서비스산업에서 실업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데다, 그 여파로 임금과 물가상승률도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 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 점도표에서도 연말 기준금리 예측값이 지금보다 0.35~0.6%포인트 낮은 4.4%로 나와 있다. 그만큼 11, 12월의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금리가 추가 인하될 가능성이 높단 얘기다.그럼 투자자들의 투자 대상이나 패턴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전문가들에 의하면 벤처 사이클은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 첫째, 벤처산업의 성장에는 기술 역량과 자금이 중요한 만큼, 벤처 사이클은 기술의 성장곡선('가트너의 하이프곡선')과 금리의 상승·하락 주기와 그 궤를 같이한다는 점과 둘째, 벤처 사이클은 벤처산업의 붐, 버블, 버블 붕괴, 그 후 진정한 벤처 리더가 탄생하는 네 가지 단계를 거치는데, 진정한 벤처 리더가 탄생할 때는 이전 붐 때와는 다른 혁신기술이나 새로운 분야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그것이다.현재 버블 붕괴 후 금리 하락기에 접어들었다고 보면, 향후 어떤 신기술과 신분야가 리더가 될까. 벤처 신산업의 메카인 미국 실리콘밸리의 최근 1~2년 동향을 통해 미래의 가능성을 살짝 엿보기로 하자. 이전의 실리콘밸리에선 기술보다 시장의 혁명 즉, 디지털혁명이 강조되면서 핀테크와 이커머스 등과 같은 플랫폼 기업들의 인기가 높았었다. 하지만, 금리상승으로 유동성이 줄어든 다음부터는 기술에 방점을 둔 소위 딥테크가 대세가 되고 있다. AI(인공지능)분야에서도 새롭게 생성형 AI가 뜨고, 의료분야에서 돌풍이 예상되는 양자 컴퓨팅, 기후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떠오르는 클린테크, 디지털무역 증가로 새롭게 떠오르는 웹3.0과 블록체인금융 등이 그것이다. 또 투자패턴의 변화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 고금리 땐 대규모 투자가 줄고 초기 단계보다 중후기 단계 벤처투자가 많았지만, 발빠른 엑셀러레이터 등은 그동안 덮어두었던 초기단계 벤처도 다시 열어보고 있단 전언이다. 향후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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