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 벤처가 뜨겁게 달아오른 배경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전 세계적인 고령화와 저출생 요인이다. 이로 인해 만성적인 제조·물류 현장의 인력 부족과 인건비가 급상승하고 있는 까닭이다. 둘째, 멀티모달 AI 기술의 혁신이다. 이 때문에 거대 언어모델(LLM)을 넘어 시각·촉각·공간 데이터를 종합 처리하는 기술적 임계점을 돌파했다는 평가다. 이외에 미·중 갈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도 한몫하고 있다. 자국 내 첨단 제조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 현상이 심화되면서, 사람을 대체할 고도의 무인 자동화 수요가 필연적으로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장은 미국의 피겨AI(Figure AI), 스킬드AI(Skild AI), 앱트로닉(Apptronik), 노르웨이에서 출발한 1X 등 로봇의 '뇌'에 해당하는 AI모델과 제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벤처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글로벌 로봇 스타트업 투자액은 2025년 약 260억달러로 급증했고, 2026년에는 상반기(6월 기준)에만 이미 230억달러를 넘어서며 연말까지 300억달러 돌파가 예상된다. 벤처 자금이 챗봇 중심의 생성형 AI에서 휴머노이드·산업용 로봇과 자율제어 기술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피겨AI는 2025년 9월 10억 달러 이상 유치로 기업가치 390억달러를 인정받았고, 스킬드AI도 2026년 1월 14억달러를 조달하며 기업가치가 140억달러를 넘어 데카콘 반열에 올랐다. 조사기관 마켓앤마켓은 피지컬 AI의 핵심 응용 분야인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시장이 2025년 29억달러에서 2030년엔 153억달러로 5.2배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글로벌 벤처들이 로봇의 '뇌' 경쟁에서 앞서 있다면, 한국은 그 뇌가 힘을 발휘할 '현장 데이터와 로봇 부품' 경쟁력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한국은 세계 1위의 제조 로봇 밀도(근로자 1만 명당 로봇 1220대)를 보유해 피지컬 AI가 학습해야 할 제조 현장의 데이터 생산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평가다. 여기에 로봇 동체의 성능을 좌우하는 정밀 액추에이터(구동 모터 및 감속기)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기반 위에서 국내 피지컬 AI 스타트업 149개사 중 로봇 분야가 70개사로 47%나 되고, 2025년 피지컬 로봇 벤처투자 역시 4800억원으로 전체 벤처투자 13.6조 원의 3.5%에 달한다. 단일 분야 비중으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국내 스타트업의 현실이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대기업 중심의 폐쇄적인 제조 생태계 탓에 벤처기업의 데이터 접근이 여전히 어렵고, 기술을 개발해도 실제 공장에 적용해 검증(PoC)할 테스트베드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기술력은 있는데 이를 증명할 무대가 없는 셈이다.
우리나라 피지컬 AI 벤처 육성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스타트업들은 빅테크와의 범용 로봇 전면전 대신 물류 분류, 정밀 용접, 조립, 조선 블록 생산 등 우리가 독보적인 현장 데이터를 가진 특정 공정에 특화된 '도메인 특화 AI 로봇' 모델로 글로벌 틈새시장을 먼저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정부 또한 초기 도입 비용 부담으로 망설이는 국내 기업(현재 도입률 15% 수준)을 위해 과감한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벤처들이 안심하고 활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제조 데이터 댐을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규제 걱정 없이 실전 데이터를 수집하고 시제품을 돌려볼 수 있도록 실증 특구와 규제 샌드박스를 서둘러 확대하는 것이 피지컬 AI 강국으로 가는 급선무다.
로봇의 '뇌'는 실리콘밸리가 앞설 수 있어도, 그 뇌가 실제로 일할 '몸'과 '현장'은 결국 데이터와 정밀 기술이 결정한다. 한국이 이 승부처를 놓치지 않는다면, 피지컬 AI 시대의 진짜 승자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현장을 가진 나라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