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은 2030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X(옛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에서 재선거 촉구 문구를 든 '인증샷 릴레이'가 진행되는 모습을 AI(인공지능)로 재가공. /그래픽= AI 제작

"이건 좌파, 우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기본권이 침해당한 사건입니다. 정치색을 떠나서 국민이라면 분노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정신 차리세요 진짜. #재선거 #자유민주주의"

"청년들이 분노한 건 누가 이기고 지고가 아닙니다. 내 한 표가 헌법이 보장한 참정권이 지켜졌느냐, 그 문제예요. 당리당략을 떠나서 참정권을 보장해달라는 청년들의 목소리는 정당합니다. #오세훈 #선관위"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2030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X(옛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 주요 소셜미디어(SNS)에선 태극기 이미지와 함께 '재선거 촉구' 문구를 손에 든 채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인증샷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누구 하나 시키지 않아도 2030들은 재선거를 요구하는 숏폼 영상과 카드뉴스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영상통화와 라이브 방송으로 잠실 개표소인 올림픽 경기장 집회 현장의 모습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2030세대가 주축이 된 이번 재선거 요구 시위의 가장 큰 특징은 '탈중앙화'다. 시위 참가자들은 대부분 특정 정당의 깃발 아래 모이길 거부한다. 이들은 정치권이 자신들의 재선거 요구를 정파적으로 해석하거나 진영의 이익을 위해 '하이재킹'(가로채기)하려는 시도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29세 유모씨는 '동행미디어 시대'에 "참가자들 사이에서 질서 있는 집회를 만들고 부적절한 부정선거 구호는 자제하자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며 "재선거 요구가 특정 프레임에 갇혀 본질이 묻히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어 "좌우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됐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행동에 나서는 이른바 '마이 라이트'(My Right·나의 권리) 세대가 한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래픽은 지난 9일 밤 11시, 2030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X(옛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 주요 소셜미디어(SNS)에서 '재선거' '참정권' '선관위'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자 나온 글들을 재가공한 것이다.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2030, 정치 세력화 움직임 나타날 수도"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선거 관리 부실 사태에 젊은 세대가 분노하는 것은 시대정신인 '공정'의 가치가 훼손됐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며 "스스로 '국민주권 정부'를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에서 주권의 핵심인 참정권이 침해되는 것에 대해 이들이 침묵하지 않은 것은 참여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정치적 효능감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일각에선 이번 재선거 요구 시위를 계기로 2030세대에서 독자적 정치세력화 시도가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대에 "이들의 첫 번째 목적은 공정성을 회복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들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전달되는 것"이라며 "사회가 이들의 목소리에 빨리 귀를 기울이고 요구를 수용한다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흐지부지 넘기려 한다면 내부에서 더 적극적으로 정치 세력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1968년 프랑스의 반(反)권위주의 학생운동인 '68혁명'의 상징 다니엘 콩방디는 거리에 나선 청년들의 저항 에너지를 제도권 정치로 연결시키는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이끌었다. 그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녹색당 창당의 토대를 닦았고, 1999년 유럽 생태녹색당 소속으로 직접 유럽의회에 입성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가 계속되는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 앞에 시민들이 모여 재선거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뉴스1

높은 제도권 정치 진입 장벽


그러나 제도권 정치의 진입 장벽 탓에 2030의 독자적 정치 세력화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시대에 "한국은 정당법상 창당 문턱이 높고 양당 구조도 견고해 제3정당이 성장하기 쉽지 않다"며 "이번 집회 역시 무대나 진행자 같은 구심점 없이 느슨한 네트워크로 움직인 만큼 독자 세력화보다는 기존 정당 안에서 누가 2030세대의 목소리를 더 효과적으로 대변하느냐의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청년층의 제도권 정치 진입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선거 제도부터 개편해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과제가 소선거구제다. 한 선거구에서 1명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 아래에서는 조직력과 자금력 등이 상대적으로 약한 청년 정치인이나 소수 정당 후보가 국회에 진입하기가 어렵다. 2024년 총선 당시 조국혁신당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24.25%라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고도 거대 양당의 벽에 막혀 지역구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하나의 선거구에서 2명 이상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할 경우 청년 정당 등 신생 정치세력이 원내에 진출하고 다당제적 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이는 선거제 개편의 열쇠를 쥔 거대 양당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하다.

청년층의 정치권 진출 문턱을 낮추기 위해 청년에 대한 기탁금 인하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국의 지역구 국회의원 출마 기탁금은 1500만원으로, 기탁금 제도가 아예 없는 독일이나 500파운드(약 85만원) 수준의 보증금만 부과하는 영국 등과 비교해 후보자들의 재정적 부담이 큰 편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선거비용 보전 기준(득표율 15% 이상 전액, 10% 이상~15% 미만 반액 보전)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 기준을 낮춰주면 거대 정당 소속이 아닌 청년이나 소수 정당, 무소속 후보들이 선거에 도전하기 한층 쉬워진다. 이 경우 무분별한 출마를 막기 위해 독일식 추천서명 요건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유권자 지지를 확인하는 장치를 병행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정치권 진출을 위한 재정적 문턱을 낮추기 위한 기탁금 인하와 선거비용 보전 기준 완화도 필수 과제다. 그래픽은 정치 진입 위한 국가별 기탁금 기준/그래픽=동행미디어 시대


"정당내 청년 일자리 늘려야"


기성 정당 내부에서 청년 정치인 육성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성공적으로 안착한 정당 차원의 청년 정치 조직으로는 1947년 창설된 독일의 '영 유니온'(Junge Union)이 꼽힌다. 독일 기민당(CDU)·기사당(CSU)의 하부 조직이지만 자체 의결 기구와 예산을 갖추고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현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도 영 유니온 출신이다.

한국에서도 영 유니온을 벤치마킹하려는 시도가 있다. 국민의힘에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인 2020년 12월 '청년의힘'이 출범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한국식 영 유니온"이라며 "청년당을 만들어 정치 훈련을 해 향후 정치에 참여하게 되면 독자성을 가지고 입법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도 2020년 1월 전국청년위원회를 '전국청년당'으로 승격하며 청년 정치인 발굴에 본격 나섰다. 전국청년당은 이후 254개 지역 청년위원회와 청년지방의원협의회, 청년정책연구소 등을 갖췄다.

그러나 청년 정치인 육성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비례대표 후보 가운데 청년의 비중을 높이고, 지역구 후보 공천 시에도 청년 가산점을 확대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영익 국민의힘 중앙청년위원회 부위원장은 시대에 "청년 조직이 당 안에서 힘을 내려면 상설기구로 자리잡아야 한다. 아니면 당 지도부가 바뀔 때마다 사라진다"며 "현역 의원들이 직접 참여해 청년 정치인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국의 경우 학교 정치 동아리나 토론 동아리가 활발한데 여기서 정치인으로 커가는 일이 많다"며 "현역 의원이 자기 지역구 학교 동아리, 토론 현장을 찾아 눈에 띄는 청년을 직접 스카우트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더 많은 청년들이 정치권으로 유입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동수 대표는 "중요한 것은 기득권을 대변하는 청년 의원 한두 명이 더 나오는 게 아니라 역량 있는 새로운 청년들이 정치권에서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라며 "현행 정당법은 당직자 수를 200명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를 완화해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청년 정치 활동 상당 부분이 무급 봉사처럼 운영되는데, 청년들이 급여를 받으며 정치 현장에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진은 국민의힘 전북특별자치도당 청년위원회 관계자들이 11일 전북 전주시 전북특별자치도의회 기자회견장에서 '청년 정치인 공모'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