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후배 기업을 키울 때 성공 확률이 제일 큽니다. 대기업은 망하는 곳에 절대 돈을 투자하지 않죠. 대기업과 금융기관, 정부가 함께 후배를 키우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성장펀드 전략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지난해 9월 국민보고대회 모두발언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시장에 자리 잡은 대기업이 후발주자를 양성할 수 있는 여건을 강화해줘야 한다는 게 골자다. 대한민국 바이오산업 불모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셀트리온은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등을 토대로 유망 기업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
100억원대 투자 유치까지…셀트리온 '오픈 이노' 효과 톡톡
셀트리온은 유망 벤처기업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혁신 기술을 고도화하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활용하고 있다. 잠재력이 큰 기업을 발굴한 뒤 R&D(연구·개발) 멘토링과 인프라 지원 등에 나서는 방식이다. 벤처기업 입장에서는 셀트리온의 R&D 및 사업 노하우를 전수받고 셀트리온은 신기술을 확보할 기회가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셀트리온과 벤처기업 모두 성장하는 상생 전략인 셈이다.
2023년 시작돼 올해 4기를 맞이하는 '셀트리온·서울바이오허브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 상생 전략의 대표 사례다. 해당 프로그램은 셀트리온 R&D 수요와 연계 가능한 혁신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을 발굴 및 지원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1기 기업 엔테로바이옴은 해당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100억원대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2기 기업 바이오미는 셀트리온과 공동연구 및 지분투자 계약을 맺었다. 3기 기업 머스트바이오와 갤럭스, 포트래이 등도 셀트리온과 공동연구 계약을 맺고 신약개발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현재 한국의 오픈 이노베이션은 자금력을 보유한 대기업이 영세하지만 기술력이 뛰어난 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며 "추후엔 특정 물질이나 기술을 중심으로 전문성 있는 중소기업들이 모여 별도의 회사를 세우는 뉴코(NewCo) 방식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이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셀트리온이 벤처기업 지원에 주력하는 배경에는 서 회장의 의지가 자리한다는 평가다. 셀트리온이 벤처기업이던 시절 받았던 설움을 후발주자들은 겪지 않길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 회장은 한국에 바이오산업이 생소하던 시절 창업한 셀트리온을 글로벌 회사로 키워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월세 10만원 방에서 글로벌 기업 '우뚝'…"선순환 생태계 만들 것"
서 회장은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당시 대우자동차에서 퇴사한 후 자본금 5000만원으로 셀트리온 전신인 넥솔을 창업했다. 자본금이 부족했던 탓에 월세 10만원짜리 공간에서 사업을 꾸려나갔고 창립 멤버 중 바이오 전공자가 없어 서 회장이 직접 대학 동문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확장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셀트리온 사업에 반전이 생기기 시작한 건 2010년이다. 수익성이 뛰어난 CMO(위탁생산) 사업을 중단하고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램시마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 고객사 제품만 생산하는 것이 아닌 자체 의약품을 확보하겠다는 결단이었다. 전사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램시마 임상 1상과 3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전략을 짠 결과 2012년 식품의약품안전처, 2013년 유럽 의약품청(EMA), 201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연이어 획득했다.
셀트리온은 이후에도 R&D를 지속해 현재까지 총 11개의 바이오시밀러 상업화에 성공했다. 최근엔 바이오시밀러를 넘어 자체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투자 확대에 나섰다. 차세대 항암제로 꼽히는 ADC(항체-약물 접합체) 후보물질 3종에 대한 임상 1상과 세계 최초 4중 작용 비만 신약 영장류 시험 등을 진행하고 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R&D부터 대규모 생산, 글로벌 유통까지 아우르는 전 주기 통합 솔루션을 완성하는 동안 축적한 노하우와 인프라는 K바이오 생태계와 함께 나눠야 할 자산"이라며 "혁신 신약을 앞세워 빅파마(대형 제약사)로 도약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유망 기업과 동반 성장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 글로벌 바이오산업 중심으로 우뚝 서는 선순환 생태계를 완성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