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이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 수주에는 실패했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결과를 '패배'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세계 잠수함 시장의 전통 강자인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와 마지막까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경쟁을 펼친 것 자체가 K잠수함의 경쟁력을 입증한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캐나다 정부는 지난 6일(현지시각)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 해군기지에서 차세대 잠수함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TKMS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TKMS와 한화오션 모두 캐나다 해군의 요구 성능을 충족했고 캐나다 산업과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도 우수한 제안을 내놓았다"며 "매우 어렵고 치열한 경쟁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한화오션은 비록 수주에는 실패했지만 세계 잠수함 시장의 경쟁 구도를 새로 쓰는 데는 성공했다. 이번 사업에는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과 구성한 한국 컨소시엄과 노르웨이와 손잡은 TKMS가 최종 후보에 올라 1년 넘게 경쟁을 벌였다.
프랑스 나발그룹, 스페인 나반티아, 스웨덴 사브 등 세계적인 잠수함 업체들도 초반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최종 후보에는 한국 컨소시엄과 TKMS만 이름을 올렸다. 세계 잠수함 시장에서 오랜 수출 실적을 쌓아온 유럽 업체들을 제치고 한국 기업이 마지막까지 경쟁했다는 점은 K방산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평가된다.
TKMS는 한국 해군이 운용 중인 손원일급(214급) 잠수함의 원천 기술을 보유한 업체다. 한국은 독일 기술을 바탕으로 잠수함 건조 역량을 축적했고 이후 독자 설계 능력을 확보하며 도산안창호급(KSS-Ⅲ)을 개발했다. 과거 기술을 배우던 위치에서 이제는 세계 시장에서 독일과 경쟁하는 수준으로 성장한 것이다.
한화오션은 이번 사업에서 3600톤급 장보고-Ⅲ 배치(Batch)-Ⅱ 잠수함을 제안했다. 공기불요추진체계(AIP)와 리튬이온 배터리를 동시에 적용해 잠항 능력을 높였다. 이미 한국 해군에서 운용되며 성능을 검증받은 플랫폼이라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지난해 특수선 4공장을 완공해 잠수함 4척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는 생산 체계를 갖추면서 납기 경쟁력도 확보했다.
캐나다 정부의 평가 기준도 단순한 함정 성능에 머물지 않았다. 캐나다 국방투자청(DIA)은 유지·보수와 군수지원에 전체 평가의 50%를 배정했고, 잠수함 플랫폼은 20%, 재무와 전략·경제 협력은 각각 15%를 반영했다. 장기간 안정적으로 잠수함을 운용할 수 있는 역량과 캐나다 산업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가 핵심 평가 요소였던 것이다.
한화오션은 이에 맞춰 잠수함 판매를 넘어 캐나다 산업 생태계와 함께 성장하는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한화오션을 중심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에너지 등 그룹 계열사가 함께 참여하는 '원팀' 체계로 캐나다 기업 30여곳과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철강 분야에서는 캐나다 알고마스틸과 협력해 현지 강재 공급 체계를 구축하고 인공지능(AI) 기업 코히어, 위성통신 기업 텔레샛, 우주기업 MDA 스페이스, 전자광학 기업 PV 랩스 등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온타리오조선소와 모호크대학과는 스마트조선소 구축과 조선 인력양성 허브 조성을 추진했고 노바스코샤주 정부와 어빙조선소와는 잠수함 건조와 유지·보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앨버타주와는 LNG, 수소, 탄소포집·저장(CCS) 등 에너지 분야 협력도 제안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캐나다자동차부품제조협회(APMA)와 군용 및 특수목적 차량 생산 협력을 추진하는 등 이번 사업을 계기로 조선을 넘어 방산과 첨단산업 전반으로 협력 범위를 확대하는 전략을 펼쳤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KPMG는 한화의 제안이 2026년부터 2044년까지 누적 1200억캐나다달러 규모의 국내총생산(GDP) 창출 효과를 낼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정부 역시 이번 사업을 단순한 기업 수주전이 아닌 전략산업 협력 프로젝트로 보고 지원에 나섰다. 고위급 특사단이 캐나다를 방문해 자동차와 수소, AI, 우주, 철강, 조선, 방산 공급망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팀코리아' 차원의 지원을 이어갔다.
업계 관계자는 "잠수함 시장은 세계에서도 가장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 가운데 하나"라며 "한화오션이 독일과 마지막까지 경쟁한 경험 자체가 향후 해외 잠수함 사업에서 중요한 레퍼런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