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 서울대 철학과 교수


대학 교육 현장에서는 이제 학부 입문 수준의 지식이라면 웬만한 강사나 교수보다 AI가 더 정확하고 균형 잡힌 설명을 제공한다는 감탄을 어렵지 않게 듣는다. 향후 AI의 발전이 지금과 같은 극적인 양상으로 계속될지 아니면 어느 정도 한계에 이를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대학 교육의 상당 부분에서 AI가 이미 인간 교사에 필적하는 수준의 교습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런데 지식과 기술의 전수에서 앞으로 AI가 맡게 될 역할을 논할 때 간과되기 쉬운 문제가 있다. 인류 문화와 지식의 발전에 있어서 인간 특유의 불완전함이 수행해 온 역할이 그것이다.

가령 필자의 전공인 불교철학의 역사를 보면, 한국을 포함한 한자문화권의 불교가 인도불교와 별개의 사상 전통을 형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도불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생긴 크고 작은 오역과 오독이 있었다. 원전에 대한 이해 부족과 번역상의 오류가 인도에서는 제기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의식을 낳았고, 그 결과 독창적인 철학적 논변들이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역된 경문에서 처음 사용된 불멸하는 정신이라는 개념이 그 예다. 불교의 무아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윤회전생을 설명하기 위해 주목된 이 개념은, 훗날 인간의 본성에 대한 중국 불교 특유의 이론의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잘못된 이해였지만, 바로 그 잘못이 새로운 사유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이처럼 지식 전승 과정에 수반되는 인간적인 불완전성이 혁신의 계기가 된 사례는 철학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류학의 문화진화론 역시 문화는 완벽한 복제가 아니라 불완전한 변형과 변이의 축적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한다고 설명한다. 만약 한 세대가 정답으로 여긴 사고방식이나 문제 해결법이 다음 세대에 완벽하게 전수된다면, 지식의 축적은 있을지언정 새로운 사유나 접근법이 등장할 가능성은 사라질 것이다.

이는 단지 심미적인 차원에서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 생명체가 수십억 년에 걸친 환경 변화 속에서 끊이없이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DNA가 복제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미세한 오류, 곧 돌연변이가 축적되어 다양한 종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듯이, 인류 공동체 역시 문화와 사고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AI는 이러한 창조적인 오류를 만들어내도록 설계된 존재가 아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객관적이고 타당한 답을 생성하도록 학습되며, 발전의 방향 또한 환각이라는 오류를 줄이고 일관성을 높이는 데 있다. 인간의 문화가 불완전한 복제를 통해 진화해 왔다면, AI는 가능한 한 완전한 복제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AI에 의존하는 작업이 결과물의 획일화를 가져온다는 점은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된 바가 있다.


AI는 앞으로도 훌륭한 교육 보조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교육은 정답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하나의 객관적이고 최적화된 답만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사회에서는 기존의 전제를 의심하는 새로운 질문이 등장하기 어렵고, 예상하지 못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공동체의 적응력 또한 약화될 수밖에 없다. 교육자는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인 동시에 자신의 삶과 경험을 통해 형성된 문제의식과 사고방식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교육자들의 서로 다른 해석과 관점이 교육 현장에서 적용될 때 사회는 다양한 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그 다양성이야말로 미래의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불완전하고 비효율적이더라도 인간이 교습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엽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초기 불교사상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불교철학과 불교사상사 권위자로 잘 알려져 있으며 대학에서의 연구 및 강의 뿐 아니라 방송 출연이나 칼럼 기고를 통해 불교 이야기를 깊이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소개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