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예멘의 후티 반군을 통해 홍해의 관문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하는 가운데,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촬영한 위성사진이 공개됐다. / 사진=로이터

미국·이란 간 분쟁 재발로 호르무즈 해협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예멘의 친이란 성향 반군인 후티가 우회 항로인 홍해를 봉쇄할 가능성까지 불거지면서 국내 산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원유 수급 100%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입장에서 중동 원유 수송의 핵심 공급망이 이중으로 마비될 경우 연쇄적인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취재진을 만나 후티가 홍해를 봉쇄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처리할 것"이라며 보복 대응 방침을 시사했다.


앞서 후티 반군은 전날 사우디아라비아를 겨냥해 홍해 봉쇄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홍해는 미국·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이후 한국이 중동산 원유를 공급받아온 우회로이다. 홍해 봉쇄가 현실화할 경우 원유 수급이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일단 당장의 원유 수급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가 불거진 이후 정부가 발빠르게 대체 항로를 확보, 원유를 들여왔기 때문이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7~8월 국내 도입 원유는 전년 평균의 110% 이상 확보했고 9월 도입 예정 물량도 전년 대비 90% 이상 확보한 상황이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에 더해 후티 반군의 참전으로 중동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되면 원유 수송 자체가 어려워지고 이미 확보한 원유도 예정된 기간에 국내에 들여오지 못할 가능성이 커서다.


지정학적 리스크 확산으로 글로벌 원유 수급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반등하는 점도 부담이다. 원유를 비싸게 들여오게 되면 국내 제조업 전반에 비용 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날 ICE 선물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91.01달러로 전장보다 2.01% 상승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도 배럴당 84.91달러로 전장보다 2.02% 올랐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원유 수송 차질이 길어지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정유업계는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유가 상승은 원유수급 차질로 이어져 수익성이 악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격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석유제품 소비를 줄이게 되면서 전반적인 수요 감소로 정제마진이 하락하고 결국 정유사업의 수익성이 둔화한다.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 지속으로 정유사의 손실이 누적되는 점도 부담이다. 당초 정부는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으로 국제유가가 내려가자 최고가격제를 단계적으로 인하해 국내 기름값을 전쟁 이전에 근접한 수준으로 떨어뜨린 뒤 제도를 종료시킨다는 구상이었다. 중동 리스크 확대로 국제유가가 뛰자 오히려 최고가격제를 더 강화해 지속하기로 했다.

정유업계는 최고가격제가 시행된 지난 6개월간 누적 손실이 4조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가 지속될 경우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란 관측이다.

원유를 정제할 때 생기는 나프타를 기초 원료로 사용하는 석유화학 업계도 국제유가가 상승할수록 원가부담이 커지게 된다. 9월 이후에도 공급망 불확실성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나프타분해설비(NCC) 가동률을 낮추거나 생산을 조절해야 할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항공업계는 항공유 가격 상승에 따른 연료비 부담 증가로 수익성에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항공유는 보통 항공사 영업비용의 30%가량을 차지해 유가 급등 시 실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국제유가가 오르면 국제선 유류할증료도 증가하는데 이 경우 해외여행 부담으로 여행 수요가 위축되며 수익성이 더욱 둔화될 수밖에 없다.

해운업계도 선박유 상승에 따른 부담이 증가하는 데다 선박이 호르무즈 혹은 홍해에 고립되거나 직접적인 피격 대상이 될 수 있어 사업차질이 우려된다.
가전업계는 물류비 급등에 따른 이익 감소로 실적이 크게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중동 지역 소비가 위축되는 점도 부담이다.
제조업계 전반에 걸친 타격도 우려된다. 산업연구원은 유가가 10% 오를 경우 제조업의 비용이 평균 0.71% 상승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중동발 리스크로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는 상황을 지속 모니터링하면서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홍해가 막히면 상황이 더 어려워지겠지만 아직 현실화한 것이 아니다"라며 "문제가 생기면 수에즈 운하 등 다른 대체 수단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