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지난해 10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내려온 가운데 향후 1300원대 진입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3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환전소에 원.달러를 비롯한 환율이 표시된 모습. /사진=뉴스1

원/달러 환율이 한 달 만에 130원 가까이 급락하며 지난해 10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내려왔다. 외국인 주식 순매도 완화와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자금 유입, 수출기업의 달러 매도 확대 등으로 수급이 개선돼 환율 하락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일본의 환율 공조와 한국의 외환시장 안정 기조도 맞물리며 원화 강세에 힘을 보탰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에선 최근 환율 하락이 펀더멘털보다 일시적인 수급 요인의 영향을 받은 만큼 1300원대 진입을 전망하면서도 대외 변수를 주목하고 있다.


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30원대에서 거래됐다. 지난달 초 1520원대 중반에서 출발한 환율은 중순 1490원대, 하순 1470원대를 거쳐 지난달 말 1420원대까지 떨어졌다. 지난달 31일 종가는 1424.0원으로 지난 6월 말(1549.4원)보다 125.4원 하락했다. 달러 대비 원화 절상률은 8.81%로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 변동성이 컸던 2009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최근 환율 하락의 가장 큰 배경으로 수급 개선이 지목된다. 상반기 환율 상승을 이끌었던 외국인 자금 유출의 압력이 완화된 데다 SK하이닉스 ADR 발행 자금이 국내로 유입되며 대규모 환전이 이뤄졌다. 주요 수출기업들이 보유 달러를 시장에 내놓으면서 달러 공급도 크게 늘었다. 국제유가가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급등세를 보이지 않은 점과 무역수지 흑자 확대도 원화 강세를 뒷받침했다.

최진호 우리은행 WM상품부 연구원은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초반으로 내려온 가장 큰 이유는 대외 변수보다 수급 개선 효과"라며 "SK하이닉스 ADR 자금 유입 이후 주요 수출기업들이 달러를 매도했고 다른 기업들도 보유 달러를 현물시장에 내놓으면서 환율 하락폭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도 "상반기에 외국인 주식 순매도가 환율 상승 요인이었지만 최근에는 순매도가 줄고 ADR 환전 물량이 나오면서 수급이 개선됐다"며 "예상보다 큰 무역수지 흑자와 국제유가 안정도 원화 강세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한·미·일 '삼각 공조'…"원화에 우호적"

최근 미국과 일본의 환율 안정 공조도 원화 강세 기대를 키우고 있다. 지난달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63엔을 넘어서며 약 40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지만 일본 정부가 엔화를 매입하고 달러를 매도하는 시장 개입에 나섰고, 미국도 이를 지원하면서 엔화 가치가 반등했다.

한국도 같은 시기 외환시장 모니터링과 시장 안정 조치를 강화했다. 한·일 당국은 외환시장 동향을 공유하며 협의를 이어갔다. 시장에선 미국을 포함한 3국의 정책 공조가 환율 안정 의지를 시장에 전달하는 신호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원화와 엔화는 아시아 대표 통화로서 동조하는 경향이 강해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 원화도 동반 강세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박 연구원은 "엔화 강세는 원화 강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과 일본의 정책 공조에 한국의 외환시장 안정 기조까지 더해진 점도 원화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엔화 강세가 과도해질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저금리 엔화를 빌려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 해외 투자자금이 일본으로 되돌아가면서 글로벌 증시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이후 엔 캐리 트레이드가 일부 청산되면서 한국과 미국 증시가 큰 폭의 조정을 받은 바 있다.

"1300원대 진입 가능성 열려있어"

향후 환율 전망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씨티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향후 6~12개월 원/달러 환율 전망치를 1430원으로 제시했다. 보고서는 최근 코스피 조정으로 외국인 주식 투자자의 자금 유출 압력이 완화되면서 외국인의 추가 환헤지(NDF 매수) 수요도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달 1일부터 17일까지 외국인 주식 자금 유출 규모는 81억달러로 6월(305억달러), 5월(279억달러)보다 크게 감소했다. 씨티은행은 강한 수출 흐름과 기업들의 달러 조달·환전, 외환 헤지, 당국의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 등이 원화 강세를 뒷받침할 것으로 봤다. 코스피가 연말로 갈수록 반등할 경우 외국인 자금 유출 압력이 다시 커질 수 있어 환율 하락 폭은 제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 연구원은 원화 강세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엔화가 추가 강세를 보이고 외국인 주식 순매수 전환이 이어지면 원/달러 환율의 1300원대 진입 가능성은 열려 있다"며 "이란 리스크 완화에 따른 국제유가 하락과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우려 완화가 맞물리면 달러 약세가 나타나면서 1300원대 진입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최 연구원은 "현재 환율 하락은 수급 요인의 영향이 크다"며 "수급 효과가 약해지면 결국 하반기 연준의 긴축 기조와 강달러 환경 등 대외 여건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