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세종청사 재정경제부. / 사진=뉴스1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가업상속공제 요건 강화와 '주가 누르기 방지' 방안이 담기면서 기업들의 승계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상속 과정에서 지켜야 할 요건은 늘어난 반면 재계가 요구해온 상속세율 하향 등 부담완화 방안은 담기지 않아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전날 공개한 세제개편안에는 가업상속공제 개편 내용이 담겼다. 최대 공제 한도는 기존 6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확대됐지만 이를 받기 위한 요건은 한층 까다로워졌다.


피상속인의 사전 경영기간 요건은 10년 이상에서 30년 이상으로 늘었고 대상 업종은 기존 1205개에서 727개로 축소됐다. 사후관리 기간은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됐다.

개편안에는 제3자 승계를 지원하기 위한 세제 특례도 신설한다. 제3자에게 기업을 승계할 경우 매도자의 주식·사업용 자산 양도소득세를 20% 낮추고 매수자의 소득세·법인세도 5년간 10% 감면한다. 자녀 승계에 국한됐던 기업 승계를 임직원이나 동종업계 인수합병(M&A)으로 확대한다. 후계자가 없는 장수기업의 단절을 막고 고용과 기술, 기업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취지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도 이번 세제개편안에 포함됐다.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가를 낮게 유지하는 관행을 막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6년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코스피 업종별 하위 25%, 코스닥 하위 10%에 해당하는 기업이 추정 대상이다. PBR이 낮은 기업이 아니어도 최근 1년간 중복상장 등 기업가치 훼손 행위가 있으면서 최근 3년간 시가에 비해 현행 주식 평가금액이 30% 이상 하락한 경우도 포함한다.


국세청 평가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주가 누르기가 확정되면 상속·증여세 산정 규모가 커진다. 현재는 상속·증여 전후 2개월씩 총 4개월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긴다.

개편안은 저PBR 요건에 적발된 경우 '최근 6개월~6년 6개월간 종가의 평균'과 '현행 평가 방법에 따른 시가의 1.3배' 중 더 큰 금액을 상속재산가액으로 결정한다. 기존보다 최소 30% 높은 금액을 기준으로 과세하게 되는 것이다. 주가 급락 요건에 해당하는 기업은 '최근 6개월~3년간 종가의 평균' 중 최대치를 과세 기준으로 적용받는다.

가업상속공제 요건 강화와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기업의 '꼼수 승계'를 차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대형 베이커리 카페, 주차장 등을 중심으로 편법 상속 관행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강하게 질타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번 가업상속공제 개편을 통해 혜택 제공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 역시 일부 상장기업의 최대주주가 중복상장이나 교환사채 발행 등으로 주가를 떨어뜨린 뒤 상속·증여세를 적게 내는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마련됐다.

재계에서는 정부의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기업 승계를 어렵게 만드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는 반응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고령화와 창업주 세대 은퇴에 대비해 가업상속공제 요건 완화를 꾸준히 요구해왔지만 이번 개편안은 적용 조건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저PBR을 이유로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치로 상속세를 매기면 최대주주의 세금 부담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지분을 매각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현행 국내 최대 상속세율은 50%이고 최대주주 할증평가를 적용하면 60%까지 늘어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규제 중심 정책이 더해질 경우 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창업자가 일군 기업을 다음 세대로 넘기는 과정에서 막대한 세 부담이 발생하면 매각이나 사업 축소를 선택하는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2025 중소기업 기업승계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 관계자 600명 중 80.0%가 기업승계 과정에서 겪었거나 예상되는 주된 어려움으로 '세금 부담'을 꼽았다. 상속세 부담 정도에 대해선 '투자 등 기업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라는 응답이 55.0%로 가장 높았고 '기업의 매각·폐업·해외 이전을 고려할 정도'라는 응답(27.3%)이 뒤를 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승계는 단순히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지분을 이전하는 문제가 아니라 고용과 투자, 산업 경쟁력, 나아가 국가 경제 성장과도 연결된 문제"라며 "기업의 원활한 승계를 통해 미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을 함께 살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