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조원을 넘어선 퇴직연금 시장에 국민연금공단이 참여하는 방안을 놓고 찬반 논쟁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국민연금공단의 모습./사진=뉴스1


500조원을 넘어선 퇴직연금 시장에 국민연금공단이 참여하는 방안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대규모 기금 운용 경험을 활용하면 기존보다 낮은 수수료로 높은 수익률을 가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운용구조와 자금의 성격이 달라 기존 성과를 그대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위한 정부안 마련이 늦어지면서 국민연금의 시장 참여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위한 세부 제도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당초 7월까지 설계를 마칠 계획이었지만 제도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일정이 늦어졌다. 오는 2일 예정됐던 정부와 퇴직연금 사업자 간담회도 다시 연기됐다. 간담회에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해 은행장과 금융회사 대표이사 등 정부와 금융권 인사 15명 안팎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새로운 개최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출발점은 지난 2월6일 노사정 공동선언이다. 노사정은 퇴직급여를 회사 밖에 쌓도록 의무화하고 기금형 퇴직연금을 활성화하기로 뜻을 모았다. 지금의 계약형은 그대로 두되,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한데 모아 전문기관이 굴리는 기금형을 새 선택지로 더하는 구조다. 기금 형태로는 금융기관 개방형·비영리 연합형·공공기관 개방형 등 세 가지가 제시됐다. 국민연금 참여 문제는 노사정 테이블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아 국회 논의 과제로 넘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제도 개편의 배경에는 퇴직연금의 저조한 장기 수익률이 있다.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000억원으로 2020년(255조5000억원)의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적립금의 75.4%가 원리금보장상품에 집중돼 있고 최근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2.64%에 그쳤다. 적립금 규모는 빠르게 커졌지만 운용성과와 노후소득 보장 기능은 여전히 개선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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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메기 역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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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기금형 퇴직연금시장 참여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 6월 23일 기자설명회에서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시장에) 참여할 경우 기존 대비 3분의 1 정도 수수료와 3배 이상의 수익률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기금 운용 경험을 활용해 민간 금융회사 간 경쟁을 촉진하는 '메기'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공공기관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공공기관 개방형 모델에 참여하되 기존 국민연금기금과 분리된 별도 계정으로 운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국민연금 측이 내세우는 근거는 운용 성과와 비용이다. 지난해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은 6.47%로 국민연금 수익률(18.8%)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다만 국민연금의 운용 경험이 퇴직연금에서도 같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두고 반론이 제기됐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일 국회에서 열린 '퇴직연금 제도개선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국민연금공단의 퇴직연금시장 참여가 부적절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남 연구위원은 두 연금의 자금 원천과 급여 구조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성과와 개인의 연금급여가 직접 연결되지 않지만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은 운용수익률에 따라 가입자가 받을 퇴직급여가 달라진다.

운용에 필요한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남 연구위원은 "별도의 퇴직연금본부를 신설하게 되면 인력 충원은 물론 관련 시스템도 새로 구축해야 하는 만큼 비용 측면에서 손해"라고 덧붙였다.

민간 금융회사에 미칠 영향도 우려했다. 국민연금공단이 민간 금융기관보다 효율적이라는 이론적·실증적 근거가 부족하고 공공기관이 민간 운용사를 밀어내는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정책적 위험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남 연구위원은 "저조한 수익률의 원인은 민간 운용역량 부족이 아니라 전문성이 작동할 수 있는 기금운용 환경의 부재"라고 진단했다. 운용 주체를 바꾸기보다 기금의 독립적인 의사결정과 가입자 이익을 우선하는 수탁자책임을 제도화하고, 장기 운용성과와 비용·위험관리 수준에 따라 경쟁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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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근로복지공단 격상"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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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시장에 국민연금공단이 참여하는 방안을 놓고 찬반 논쟁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퇴직연금 제도개선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이건태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이 발언하는 모습. /사진=고희진 시대 기자


금융권 노동계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연금공단의 참여에 반대하면서 기존 공적 기금을 운영하는 근로복지공단의 역할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공단을 '준공적연금공단'으로 격상하고 국민연금이 참여를 희망하는 공공기관 퇴직연금부터 근로복지공단이 관리하도록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재진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은 국민연금공단의 퇴직연금시장 참여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운용 주체뿐 아니라 의사결정 구조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에 정부의 영향력이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위원장은 DC형 퇴직연금은 노동자의 자산인 만큼 노동자 측 추천 인사 등이 기금운용 의사결정에 참여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기존 공적 기금의 운영 경험도 근거로 들었다. 이 위원장은 국민연금법에는 퇴직연금 운용 근거가 없어 별도 법 개정이 필요한 반면 근로복지공단은 이미 관련 법적 근거와 운영 실적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푸른씨앗'이다. 지난해 총비용부담률은 0.078%로 은행권(0.451%)의 약 6분의 1 수준이다. 수익률은 2023년 6.97%, 2024년 6.52%, 2025년 8.67%를 기록했다. 올해 8월 기준 가입자는 19만명, 적립금은 1조9000억원 규모다. 노조는 국민연금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기존 공적 기금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저비용 운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푸른씨앗의 가입 대상을 단계적으로 300인 이하 사업장까지 확대하고 근로복지공단 내부에 가칭 '퇴직연금관리단'을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전문 운용인력과 자금운용 조직을 확충하고 퇴직연금 미도입 사업장에 대한 자동가입을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까지 적용 대상을 넓히고 장기적으로는 독립적인 퇴직연금관리공단으로 발전시키자는 구상도 밝혔다.

반면 국민연금을 참여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는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이 별도 제도로 운영되지만 모두 의무적 노후소득보장제도이며 자산시장에서 기금을 운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오 대표는 "기금운용의 전문성을 지닌 국민연금공단을 원천 배제하는 것이 오히려 비합리적"이라며 "각 기관이 자산운용에서 비교 경쟁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공단도 하나의 주체로 개방하는 게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역할을 확대하면서 국민연금에도 참여 기회를 열어두자는 취지다.

국민연금 참여 여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의 역할과 참여 범위는 향후 입법 과정에서도 논의될 전망이다. 토론회를 주최한 이건태 민주당 경기 부천시병 의원은 "지금이 바로 퇴직연금 제도의 틀을 바꿀 골든타임"이라며 "한 기관이 도맡기보다는 여러 주체가 건강하게 경쟁하며 수익률과 안정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무금융노조는 토론회 결과를 토대로 이 의원을 통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